자유묵상나눔 › [윤용 묵상] 낯선 여정 앞에서 어떡해야 할까?

윤용 목사 | 2020.09.18 09:02:2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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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정 앞에서 어떡해야 할까?

(창세기 46:1-27)

1.

인생은 언제나 낯선 여정이다.
어느정도 노력하고 애를 써서
이젠 익숙하나 싶을 때가 되면
여지없이 낯선 길을 걸어야 하는 순간을 만난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 동안
사람은 누구나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각자 걸어가는 것이다.

이집트로 향하는 70명의 야곱 식구들을 통해서
낯선 인생길, 낯선 여정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 배운다.

낯선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까?

2.

첫번째는 '제사'다.

(창 46:1, 새번역) 이스라엘이 식구를 거느리고, 그의 모든 재산을 챙겨서 길을 떠났다. 브엘세바에 이르렀을 때에, 그는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렸다.

70명이나 되는 온 식구를 거느리고
야곱은 이집트라는 낯선 땅으로 가야 할지,
아니면 가나안 땅에 머물러야 할지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그러나 출발했고 희생제사를 드렸다.
낯선 여정에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낯선 인생길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제사' 즉 '예배'다.

3.

예배라고 하면 교회에 모여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만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예배는 공공예배와 개인예배가 있다.
그 둘은 불가분의 관계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예배당에 가서 드리는 공공예배만 예배라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 시대의 신자들은 코로나 19라는 낯선 손님을 맞이했다.

이 시대가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던
개인예배와 가정예배를 회복해야 할 때다.

그래야 낯선 손님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상의 흐름 속에서
올바른 걸음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4.

둘째, 주의 뜻을 알아가야 한다.

(창 46:3-4, 새번역) [3]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 곧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거기에서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내가 반드시 너를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겠다. 요셉이 너의 눈을 직접 감길 것이다."

야곱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임을.

낯선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길을 걸어갈 힘을 얻는 것이다.

먹고 살아가는 것만 중요하다 말하는 건 어리석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 힘써야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하게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5.

셋째, '변화를 향한 결단과 행동'이다.

(창 46:6, 새번역)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은, 집짐승과 가나안에서 모은 재산을 챙겨서, 이집트를 바라보며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간 것처럼,
야곱은 이제 그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낯선 땅인 이집트로 떠났다.

한번 약속의 땅은 영원한 약속의 땅이 아니다.
한번 교회가 영원한 교회가 아니다.
예배당 안에서 예배하던 관습을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따라 하나님의 뜻이 주어진다.
고정된 그 무엇이 하나님이 뜻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의 상황 속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면
그 뜻을 향해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결단도 행동도 없이
그저 해오던대로만 살겠다는 건,
그리고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는 건
신앙의 삶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불신앙적 삶일 것이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신자는, 그리고 교회는 결코 바뀌지 않겠다는 건
쓸데 없는 고집으로 망할 길을 선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6. 나는?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온라인 묵상 나눔 모임을
조금 있어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나는?'을 계속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9년 전에 나는 부산을 떠났다.
거의 평생을 살았던 곳이었음에도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말씀이 주는 도전을 받아들여서
나름 결단하고 행동했던 것이었다.

사실 나는 도전적인 성격이 전혀 되지 못한다.
나는 도전도바는 '복지부동, 무사안일'을 좋아했다.
가장 변화가 적은 삶을 원했다.

그러나 나의 삶은 나의 성격과 달리
매우 변화가 많을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일용직 노동자에 가까운 학원 강사라는 직업이었다.

당시에는 퇴직금도 없고
일을 하는만큼만 급여를 받고
일을 쉬는 순간 급여도 없어지는 직업이었다.

학원 일을 하는 중에 과외가 생기면
그만큼 수입이 늘었다가
과외가 중단되면 수입이 줄어들었다.
안정과는 거리가 먼 삶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그나마 학원 강사로서 먹고 살 기반을
어느 정도 잡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그 기반을 다 버리고 경기도로 올라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말씀 때문이었다.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있었기에
말씀의 도전을 받아
안정을 추구하는 나의 본성과 반대의 결단을 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교회를 개척하고 5년 반이 넘었다.
서울 천호동에 교회가 자리를 잡은지는 3년이 넘었다.
교회가 처음으로 아름답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 19라는 사태가 터졌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전환하는 것을
매우 빨리 했고,
6개월 이상을 거의 매주 온라인으로만 예배했다.

이렇게 빨리 결단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성도들의 성숙함 때문이었다.
나는 예배를 온라인으로 해야 할지 현장예배를 해야 할지
교인들 전체에게 물었다.

거의 모든 교인들이 온라인 예배를 하자고 하셨고
나는 그 의견에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온라인예배를 통해서
성도들의 신앙은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은 은혜를 누리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이렇게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성도들이 말씀을 묵상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성도들은 말씀을 통해 매일 개인예배를 드리고 계신다.

나는 매일 묵상하는 그 본문을 따라서 설교한다.
매일 묵상하며 고민하던 본문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은 고민과 묵상의 내용이 설교로 전해지기에
성도들은 온라인 예배임에도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온라인으로 예배하자는 결단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매일 예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중단된 외부의 묵상 세미나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온라인 묵상 세미나를 진행했고,
그리고 일대일제자양육 세미나도 진행했다.

이런 결정과 결단과 실행은
사실 나의 원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오래 생각하고 그리고도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고
원래 하던대로 변화 없이 하려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는 것에 삶을 걸었기에
말씀이 나의 삶을 인도하는 것 같다.
나는 거기에 순종할 뿐이다.

게다가 성도들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안일과 안정이 아니라 생명을 따라가려고 하신다.
나는 성도들과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서 한걸음씩 걸어갈 뿐인데
제법 도전적인 삶과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낯선 길을 걸어간다.
삶도 신앙도 교회의 운영도
전혀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낯선 길을 말씀과 함께 걸어갈 수 있어서 감사하고,
함께 말씀을 묵상하는 성도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어서 감사하고,
낯선 길을 두려움 속에서 보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최선을 다해 걸어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인생이라는 이 낯선 길을 걷는 동안
끝까지 말씀을 통해 주의 긍휼을 누려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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