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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2007.12.28 13:09:0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오늘의 예화(5)

▣ 약함이 곧 통로다

자폐아 판정과 함께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장애 증세를 보인 아이가 있었다. 세살 때 검사했더니 지능이 12개월도 안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세상의 선입견을 아는 엄마는 직접 교육하기로 결심하고, 눈물로 아이를 껴안고 가르쳤다.
우여곡절 끝에 증세가 완화되어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말도 잘 못하고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힘든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중 수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음을 발견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17 대 1의 경쟁을 뚫고 과학고에 합격하는 영예를 얻었다. 세상의 놀림감이던 그 아이가 부모의 눈물어린 교육과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에게 자랑과 기쁨이 된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다 불완전하고 약한 존재일 뿐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통로는 바로 우리의 약함이다.
/정삼지<제자교회 목사>

▣ 행복의 열쇠

감사는 ‘내가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먼저 나는 오늘 하루를 살 수 있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인사할 수 있는 가족들과 긴 밤 동안 잠들 수 있는 집을 받았습니다. 또 일하러 갈 수 있는 일터와 기분 좋게 인사할 수많은 사람들을 받았습니다. 내게는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 무언가를 들어올릴 수 있는 손, 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움직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하지만 때로 나는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아니 그럴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안다면, 내 삶 속에서 ‘감사’가 사라질 때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스펄전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달빛을 주실 것이다. 달빛을 보고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햇빛을 주실 것이다. 햇빛을 보고 감사하라. 그러면 하나님은 일곱 날의 빛을 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열쇠는 감사입니다. 내 삶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고 또한 다른 사람에게 있어 내가 감사거리가 되면 그만큼 행복한 일도 없습니다.
- 「행복한 습관」/ 김학중

▣ 피난처(Shelter)

사람은 누구나 안락한 자리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노력하는 만큼 과연 우리에게 편안한 자리는 보장되어 있는 것일까? 세상은 변하는데 안전한 자리란 가능한 것일까?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20세기 후반까지 가장 철통 같은 영공을 보유한 국가는 러시아였다고 한다. 최첨단 레이더 장치와 적기를 정확히 격추시킬 수 있는 미사일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 청년이 경비행기를 타고 덴마크를 출발, 소련연방으로 들어와 크렘린궁 상공을 돌다가 붉은 광장에 착륙했을 때 전 세계는 웃고 말았다. 러시아의 철통 같은 영공이 한 청년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혼율 급증은 가장 신뢰할 만한 제도인 가정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안전한가? 교회 성장이라는 신화를 일구어낸 한국 교회지만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해준다고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 철통 같은 신앙구호가 선포되는 교회 안에서도 마음이 안 맞으면 시기와 험담으로 서로의 마음을 너무 쉽게 무너뜨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신앙의 힘이란 무엇일까?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비로소 안전한 자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다. 소년시절부터 골리앗과의 싸움을 비롯하여 생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신앙으로 무장된 다윗이다. 그러나 다윗도 이제는 편안하다고 여길 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한 여인을 강탈하는 죄를 저지르고 만다. 신분이 안전해도 심령은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는 사건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이었는가?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시 도피생활을 떠난다. 바로 이 때 다윗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산 속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형통한 왕궁에서가 아니라 고난의 두려운 밤을 지내며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라는 신앙고백을 잉태한 것이다. 가장 안전한 자리는 권력의 자리도, 왕궁도, 부의 지위도 아닌 하나님 안에 있다는 발견, 바로 이것이 참된 신앙의 힘이 아닐까?
자리나 건물을 지키려 하지 말고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심중을 곱씹어야 할 때다. 하나님 안에 붙어 있으려 몸부림치는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오늘도 가정과 민족과 교회를 세워가신다.
/박신일 <벤쿠버 그레이스 한인교회 목사>

▣ 피난처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상처받습니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은 죽습니다 중압감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연약투성이인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시편 46편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찰스 스윈돌의 ‘지혜’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아픔을 주는 관계는 형식적으로 맺어진 업무적 관계나 잠깐 스쳐가는 타인이 아닌 가장 가깝다고 느꼈던 이들로부터 오게 됩니다. 신뢰의 깨어짐, 그리고 깊은 실망감 속에서 우리는 쉽게 상처받고 넘어집니다. 피할 곳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하는 그 때 우리는 내내 외면해왔거나 혹은 쉽게 잊고 또 지나쳐버렸던 온전한 피난처, 하나님아버지의 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변치 않는 주님, 그 사랑의 품에서 다시 일어서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벽종소리

*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단 하나의 확실한 피난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편 18:30)이십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8) 보호자 되신 예수님이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 겸손

겸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짓된 겸손과 참된 겸손입니다. 거짓된 겸손은 존경과 명예를 멀리함으로써 겸손한 사람이라고 여김을 받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악한가를 스스로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비참함을 잘 알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을 철저히 무시합니다. 이것은 위장된 겸손 곧 은밀하게 감춰진 교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겸손은 겸손을 겸손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인내를 가지고 행동하고 하나님 안에서 살고 또 죽습니다. 그들은 자신이나 피조된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조롱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며, 멸시를 받으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애쓰지 않으며, 오로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합니다. 참된 겸손은 내면에 속한 것으로서 외적 행동과 상관이 없습니다. 낮은 자리에 앉는 일, 검소한 옷차림, 고분고분한 말투, 이런 당신을 보고 하나님이 겸손하다고 인정하실 까요? 이런 것은 지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참된 겸손을 위해 반드시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당신의 영혼에 스며든 타락의 엄청남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만이 완전한 선하심으로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깊은 영성 체험하기」/ 진 에드워즈 편

▣ 형제 사랑

찰스 램은 그의 생애 중에서 여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낀 적이 있었으나 자신의 가족에게 자신이 더욱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혼 을 포기했습니다. 아들로서, 형제로서 그리고 남편과 같은 존재로서, 그는 자신의 가족, 특히 가끔 정신발작을 일으키는 누이 매리를 위해 서 가정을 지키는 천사가 되었습니다. 미쳐버린 그의 누이가 그의 어머니를 찌른 후로 그는 누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다윗을 위해 요나단이 희생했듯이, 38년간 그는 지극한 정성으로 그녀를 돌보았던 것입니다. 한 친구는 램과 그의 누이가 손을 잡고 집에서 나와 다시 정신병원으로 걸어 가면서 눈물을 흘리던 일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참으로 슬픈 이야기지만 숭고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와같이 램이 집안에 있음으로써, 그의 집은 공허한 장소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은 어느 곳이든 천국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02).

▣ 구두가 문제야!

어떤 교회에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한 형제가 있었다. 이 형제는 목사님의 설교 도중 감동이 되면 언제나 큰 소리로 “할렐루야” “아멘”을 외쳤다. 이 소리 때문에 힘들어하던 목사님은 어느날 형제를 불러 아무리 설교가 감동적이어도 속으로만 “아멘”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번번이 허사가 되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 형제를 불러 “다음 주일 조용히 예배를 드려주면 구두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던 이 형제는 심각하게 고민하더니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다음 주일 예배 시간 설교를 통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증거되자 교회당 전체에 우렁찬 소리가 울려퍼졌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구두가 문제야! 나, 구두 필요 없어! 할렐루∼야!” 그렇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와 닿는다면 구두가 문제이겠는가.
/김은호 목사(오륜교회)

▣ 끝나지 않은 달음박질

믿음은 여행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믿음은 여행의 시작일 뿐이고 승리의 날을 누워서 기다릴 수 있는 침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믿는다는 것은 단번에 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영감을 받아 자신의 십자가를 지게 하고, 주님이 어느 곳으로 가시든지 따라갈 수 있게 하는 마음의 태도다.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한쪽은 소망 없이 홀로 고통 당하는 길이라면, 다른 쪽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 당하지만 그런 중에도 주님의 위로와 내적 지원을 힘입어 환난조차 즐거워할 수 있는 기쁨의 길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두 번째 길을 걸었던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임을 충분히 알면서도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섰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부터 생명과 자유를 위협받는 ‘미운 소수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오순절 이후 며칠이 못 돼 몇몇 사람은 옥에 갇혔고 어떤 사람은 공개적으로 죽임을 당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재산을 빼앗겼고 많은 사람이 외국으로 피신하는 환난을 겪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부인만 했어도 이런 핍박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편에 굳게 서서 ‘계속해’ 믿음을 확증해 나간 사람들이었다.
「능력」/ A. W. 토저

* 기도: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알기를 삶의 푯대로 삼게 하소서. 가장 미천한 일을 할 때에도 주님과의 관계를 인식하며 행하기를 원합니다.
/생명의 삶

▣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본문: 시편 6 장 6 절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하나님은 성도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는가? 눈물로 호소하는 탄식을 알고 계신가? 고난의 현장에 과연 하나님은 성도들과 함께 계시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사도행전 9장에 있는 사울의 다메섹 길 위 회심 장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계속하여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은 그날도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사울은 강렬한 빛과 함께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여기서 예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을 향해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핍박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1세기에 고난받던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며 친히 고통받으셨다는 것을 잘 말해 줍니다.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귀를 크게 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 기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의로운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

▣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라

본문: 시편 65 장 4 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65:4)

전쟁이 끝난 후 독일의 폐허는 너무나 비참했다고 합니다. 콜로그라고 하는 도시에는 커다란 교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붕은 새고 아치는 무너지고 창문은 다 깨어지고 기둥은 기우뚱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절망과 어려움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쓰러져가는 그 교회의 창립 700주년을 기념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소식은 퍼져나갔고 기념식날 폐허가 된 교회에는 3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힘차게 울리기 시작한 찬양과 함께 하나님을 향해 오랫동안 막혀 있던 그들의 마음은 감사와 찬양으로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700년 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 용기를 내어 그 교회를 다시 세우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그들은 믿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폐허가 되었던 교회는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다음으로 그들은 집을 지었으며, 학교를 짓고, 회사를 지어갔습니다.

폐허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려고 하는 마음에 새로운 부흥의 시작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전을 사모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망과 실패가 소망과 성공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게 하소서.
/시편을 통한 매일 묵상집

▣ 하나님의 은총

본문: 시편 65 장 10 절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아침 식탁에 올라온 밥은 농부가 한 해 동안 뿌린 땀의 결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볍씨를 모판에 뿌려 모종을 길러내고, 이것을 다시 논에 심고, 농약을 뿌리고, 잡초를 솎아내고, 새들을 쫓아내고, 거둔 다음에 타작하여 정미합니다. 농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100% 농부의 공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를 주시고 길러 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열심을 다한다 해도 가뭄이 계속되거나 물난리가 나면, 농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불치의 병을 기적적으로 낫게 하거나, 불가능한 일을 기적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것만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의사의 손길을 통해서 병이 치유되는 것도, 농부의 손길을 통하여 식료품을 공급받게 되는 것도, 내가 수고한 만큼 대가를 받게 되는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신앙인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 기도: 햇볕과 비를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시편을 통한 매일묵상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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