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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락 대표 | 2014.07.01 13:42:5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김종락의 마포스캔들]함께하면 힘이 세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1. 우리 동네에 새로 지은 교회는, 적어도 입지만으로는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나지막한 산을 등진 교회의 남쪽 정면은 연못이 있는 생태공원이다. 좌우에는 축구와 족구, 농구, 배드민턴, 게이트볼 등이 가능한 체육 시설이 있고, 연못가에는 문화마당이 조성되고 있다. 주택과도 거리가 떨어져 소음 민원에서도 자유롭다.

입지가 좋다보니 이 교회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린다. 얼마 전 주말, 이 교회에 버스와 승용차 수백 대가 몰려들었다. 교회 정면에 연합 어린이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겉만 보던 교회의 건축이 궁금하던 차에 들렀다가 마음이 복잡해졌다. 마침 성경시험을 치르는 예배당을 둘러보다 진행자가 전하는 주의사항을 듣고서였다.

“시험 중에 고개를 들지 마세요. 남의 시험지를 보다 들키면 퇴장시킵니다. 남의 시험지를 보는 행위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짓입니다. 커닝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죄….”

이 땅에서 학교에 다녔으면 누구나 수없이 들었을 시험 전 긴장된 시간의 주의사항. 그런데 교회에서, 주말에, 경연대회라는 이름으로, 죄까지 거론하며 아이를 경쟁시키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일등 한 사람을 뽑기 위해 수많은 아이들을 경쟁시킨 뒤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게 하나님이 원하는 일일까. 이렇게 일등을 뽑기보다 아이들이 서로 도와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걸 하나님은 더 기뻐하시지 않을까. 돌아보면 이런 경쟁은 여기뿐 아니다. 우리의 삶과 일 모든 것이 경쟁의 연속이다. 승리하는 이는 언제나 소수이고, 대부분은 패배자다. 우리는 낙오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2. 간혹, 내가 하는 일이 별스럽게 힘들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꾸준히 드나들며 사람들과 어울려 공동체의 기둥으로 여겨지던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출입을 끊을 때다. 이들이 공동체에 나오지 않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참여하는 공부 모임이 끝나는 경우도 있고 일이 바빠지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도 사람이 어울리다보니 인간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이 없을 리 없다. 무엇보다 공동체는 학위를 주는 학교도, 자격증을 주는 학원도, 돈을 주는 직장도 아니다. 일에 밀리고, 약속에 밀리고, 피곤함에 밀린다. 조금만 싫증나도 참기 어렵다. 이곳에서의 공부가 즐겁거나 보람차지 않으면 굳이 나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얼마 전, 내가 속한 공부 모임의 한 참여자가 불참을 통보해 왔다. 함께하던 공부를 그만두겠다는 선언이었지만 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쓸쓸하게, 그리하시라고 답할 수밖에. 그런데 몇 시간 뒤 그 참여자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다른 참여자의 간곡한 설득에 못 이겨 불참을 번복했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공부, 여러 가지로 돕겠다며 함께하자는데 차마 거절을 못하겠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소 쑥스러워 보이는 그 메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다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아, 마음이 여린 그는 공부가 힘들었다기보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자신의 공부만 챙기며 제각기 살길을 도모하는 그 분위기가 싫어서 이곳을 벗어나려 했구나. 이 일을 계기로 작은 회의를 열고 모임을 재정비했다. 서로 도움 주고, 도움 받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공부는 외롭게 해야 하는 것이겠지만, 할 수 있으면 함께하기 위해 애쓰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웃으며, 끝까지 가자는 것이었다. 

3. 조금씩 공동체의 이력이 쌓이면서 새삼스럽게 깨닫는 게 있다. 역시 공부는 쉬운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인내가 필요한 공부 모임엔 함부로 참여를 권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대안 철학 대학원 과정이다. 기왕 하는 공부, 유행 따라 흔들리지 말고 좀 더 체계적으로 깊이 있게 하자는 것이 이 과정의 취지다. 그래서 직장인이든, 문화예술 종사자든, 주부든 인문학적 베이스를 든든하게 연마하고, 자신의 삶과 일을 고양시키자는 것이다. 공동체로서는 대학이 포기한, 학문 연구와 교수의 자유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핵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당한 기간 동안, 매주 두세 차례씩 이곳에 나와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건 쉽지 않다. 사유의 즐거움, 공부의 기쁨이 몸에 익는 것에도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 공부를 생활의 우선순위로 놓기 위해서는 마음 만들기, 몸만들기가 필요하다. 몸과 마음이 공부를 즐기고, 좋아해야 하는 것이다. 그 전제는 열심히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진 상승, 또는 도약을 즐겁게 경험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리되는 건 아니다. 최근 이 대학원에 온 몇몇 입문자에게 책 읽고 글 쓰고 토론하는 강좌의 참여부터 권한 이유다. 이는 그동안 멀리했던 공부와 친해지며 자연스럽게 내공을 기르자는 것이지만, 내심 바라는 게 하나 더 있다. 좋은 길동무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닥쳐올 고비들을 함께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공동체는,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것이 낫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함께하면, 힘이 세다.

<김종락 |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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