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칼럼수필 › 이웃을 기쁘게

강종수목사 | 2006.07.02 15:03:5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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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을 기쁘게(롬15:1-13)


바울은 특별히 이방인을 위한 사명자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불신 세계
에 대해서 남달리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반영하고자 하는 성도의 정서를 피
력하려고 합니다.

본 장 1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고 하며, 2절에는 대조어로 우리 각 사람이 이
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고 하면서 자기를
기쁘게가 아닌 이웃을 기쁘게의 삶을 지향하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성숙되어질 성도들의 공동체 의식의 정도는  이웃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하
심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 사랑과 위로와 소망의 사람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1.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3『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
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결국 그리스도 예수를 닮는 종교입니다.

5『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
이 같게 하여 주사』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라고 하는
본 받는다는 말은 예수의 '길을 따라서' 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를 하나의 종교 문화로 알거나 소위 복 받기 위해 교회 다니는 사람
이라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예수 닮는 것이라는 생각을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성경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받은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그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구해주신 은혜입니다.

요일 2:2『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9『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
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
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 11:30『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
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때문에 참 성도의 가슴속에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 깊은 체험을 안고 살
아가는 것이고 그 삶의 모본은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을 좇아 사는 것이라
고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주님의 외적인 거룩한 모습을 연
상하거나 단순히 십자가에 돌아가신  현장에 대해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위해 희생하신 그 삶의 인격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빌 2:4-5『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
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7『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
고』라고 했습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것은 방언을 하거나 기적을 행하는 일로 확정할 수 없습
니다. 성경을 보면 능력은 거짓  선지자들도 행사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봅
니다(마7:21-, 마24:24).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숙한 신자의 삶의  태도는 이웃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
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기본 정신이
없다 아직 그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전 10: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인생은 어디를 둘러봐도 불쌍하고 약점들이 많습니다. 우리 성도가 이들에
게 기쁨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처럼 우
리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헌신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권위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능력에 완전하시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보내시어 대속의 제물이 되게 하셨기에 당신
의 의지대로 사시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위해 우리에게 자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요 8:29『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
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저
버리고 사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들이 구원 얻는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2. 성도는 소망 있는 자들이기에 이웃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4『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
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고 했습
니다.
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
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 가장 큰 기쁨은  인생으로 태어나서 이제 천국
을 향해 살아갈 소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세상에 사는 자
는 엄격히 말해 소망이 없는 인생들입니다.

사단의 절망 가운데 노래하고 좌절하고 사후의 역사를 무시한 가운데 영혼
들은 방치된 상태입니다.  또한 실제적으로 세상은 사실 기쁨보다 매일 매
일 슬픈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날마다 서글픈 일과 고통의 역사가 계속되
고 있습니다. 지구촌 어디에나 제대로 안식할 곳이 없습니다.

근성적으로 좌절을 잘 하는  인간이기에  신자 안에서도 항상 믿음에 강한
자가 위로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소개하여 알게 하고 격려하는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불의와 어두움으로 쓰러져 가는 사회에 교회는 그들의 희망의 등대가 되어
야 하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이웃에게  참된 구원의  길의 안내자로서
그들을 만나 복음을 듣게 하거나  권면을 할 때 기쁨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최소한 성도의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아야 하고 은근히 이웃의
기대치가 되야 하고 사회에  주목받을 만큼 삶에 대해 소망이 넘치는 긍정
적인 사람으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좌절한 삶 가운데 사는 이가 그리스도인을 볼 때 겉으로만 봐도 희망을 걸
만큼의 소망에 찬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아니 속으로 분명히 소망에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내세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믿고 신앙으로 세
상을 이겨나가는 멋진 모습을 간직하고 전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열방들에게 모두 기뻐할 미래를 예언을 주셨기 때문에 우
리가 그 기쁨을 줘야 합니다

10『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하였으며,
12『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
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고  예언하였
습니다.

때문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했을 때,
행 13:48『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
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기쁨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은 복음, 즉 기쁜 소식을 통하여 이방에게 기쁨
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죽음의 신이 지배하기 때문에 참다운 기쁨이 없습니다.
코미디의 우스움처럼 우습다는 것과 기쁨이라는 말은 다릅니다.
우스운 것은 사람의 감정에 단순히 하하, 하고 웃고 싶은 것입니다.우스운
것은 조금 지나면 효력이 없어집니다.  그러나 삶의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진지하게 전 인격을 행복하게 책임지는 진지하고도  철학적인 요소로서 오
래도록 살아 남는 것입니다.

삶의 참다운 의미로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은 우습다는 감정 따위의 성질이
아닙니다.성경에는 예수께서 전도 3년의 생애 중에 제자와 혹은 스스로 단
한번도 웃으신 적이 없으신 데 요즘 말로 부정적인 사람같이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과연 주께서 부정적인 성품이어서 그럴까요?  결코 그것이 아닙
니다.

성도가 세상을 주의 심정으로 쳐다보면 웃을 일보다 눈물겹고 불쌍하고 안
타까운 일이 많아서 주님을 닮아  속으로는 영원한 삶의 기쁨이 있지만 밖
으로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아파하는 정신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기쁨을 안겨다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먼저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안에서 형제를 기쁘게 하는 삶의 의
식으로 살아야 합니다.교회 나오는 사람이 자기 잘되기만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잘못 믿는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지체 의식이 불분명한 사람은 타인
을 위해 기도할 줄도 모릅니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지체
라 하였기에 긍휼함을  입어야 할 상대를  더욱 행복하게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자라 했습니
다.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은 선택의 요소가 아닙니다. 이 교훈은 매우 의
무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본 장 1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
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할 때 마땅히 라는  말은 권고(should)
의 말이 아니고 해야한 한다(must)는  말로 꼭  행해야 한다는 의무형으로
쓰여졌습니다.

원어 헬라어 옵헤일로(ojfeivlw)라는 말은  채무자처럼 빚진 사람 마냥 아
주 당연히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우리는 13장에서 이미
사랑의 빚에 대한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그러한 맥락에서 본 장에서 권면
하고자 하는 뜻도 우리가 당연히  이웃에게 기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차
원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돌판에 새겼던 십계명만이 계명이 아닙니다.신약에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도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랑이 새 계명입니다.  당연한 성도의 정서이며
삶의 태도이고 의지입니다.그리스도인끼리의 공동체에 대한 의식의 정도이
고 나아가서 결국 세상을 향한 삶의 양식이기도 합니다.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성도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억지로 짐 지우
는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쁜  구원과 긍휼과 소망에 대한 반응입
니다.  아무쪼록 이웃을 많이 기쁘게 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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