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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식 기자 | 2014.09.05 13:21:2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책과 삶]우린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정원식 기자 

 

▲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지음·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1408쪽 | 6만원


올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1차 대전은 종전의 전쟁과는 달리 전선과 후방이 없는 총력전이었던 탓에 사망자만 1500만명이나 됐다. 불과 20여년 뒤에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는 그 몇 배에 달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서도 살육은 끊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최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상대로 벌인 50일간의 군사작전에서는 2143명이 살해당하고 1만1000여명이 부상했다. 인간의 역사는 그 규모와 강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전쟁의 역사이고 인간은 본래부터 구제불능으로 호전적인 생명체인 걸까.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폭력이 감소해 왔고, 어쩌면 현재 우리는 종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핑커는 과거가 현재보다 훨씬 폭력적이었다는 점을 입증하기에 앞서 몇 가지 고고학적 발견과 문헌을 끌어들여 과거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에 충격을 가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1991년 발견된 2000년 전 남자의 시신에는 화살에 맞은 상처가 있었다. 영국 북부에서 발견된 또 다른 2000년 된 두개골은 신체에서 인위적으로 절단된 것이었다. 지금까지 발굴된 선사시대 유해에서 폭행의 흔적이 없는 것은 없었다.

문자로 기록된 역사에서는 어떨까. 핑커는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남긴 호메로스의 묘사가 정확하다면 고대 그리스의 전쟁은 “현대의 어떤 전쟁 못지않게 총력전이었다”고 본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기록한 구약성서도 끔찍하게 폭력적이었던 과거의 세상을 보여준다. “성경에 묘사된 세상은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혼비백산할 만큼 야만스럽다. 사람들은 친족을 노예로 부리고 겁탈하고 죽였다. 군사 지도자들은 아이를 포함해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여자들은 성노리개처럼 거래되거나 강탈되었다.”

책에는 다양한 통계가 등장한다. 이 수치들은 고고학적·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획득한 자료와 분명한 기록이 남아 있는 시대의 자료들을 종합해 선행 연구자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먼저 국가와 사법제도의 성립이다. 국가와 사법제도는 복수 충동을 억제한다. 유럽의 경우 법제도가 정비되자 살인율은 30분의 1로 줄었다. 다음으로 상업의 발달이다. 상업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는 타인을 악마화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다. 실제로 상업이 팽창한 중세 이후 폭력에 의한 사망률이 감소했다. 문화가 전반적으로 여성화한 것도 폭력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이동성이 증가하고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서 타인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확대된 것, 그리고 헛된 폭력의 악순환을 멀리하려는 이성적 사고의 확산도 폭력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핑커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감소는 분명 우리가 음미할 업적”이라며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든 문명과 계몽의 힘들을, 우리는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 하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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