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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수도원이지요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8 추천 수 0 2022.09.12 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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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수도원이지요
송형만 선생님, 우리는 지난 가을 처음으로 만났지요.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도서 박람회에 참석하러 왔다 일정 중에 만났으니 정말 잠깐의 만남일 뿐이었습니다. 만남에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고, 목회의 길이란 더욱 그런 것이어서 만남이 일상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특한 빛깔과 의미로 남는 만남들이 있어 마음을 윤택하게 해주는 은총을 누리기도 한답니다.
짧은 만남을 되새기며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책 한 권을 꺼내들었는데 이야기를 나누기 전 먼저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이란 호칭입니다. 그 때 동행했던 두 분이 사용한 '선생님'이란 호칭을 그냥 저도 쓰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호칭이라고 하는 것이 관계의 표지나 접촉점 혹은 만남이 다져준 마음의 결과라고 할 때, 우리의 만남은 잠깐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동행한 두 분이 사용하던 선생님이란 호칭 속에 존경과 신뢰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꼈던 터라 저도 흔쾌한 마음으로 그 호칭을 따르려 합니다. 과례(過禮)는 비례(非禮)라는데, 마음을 어색하게 하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Bad Ems 다녀오던 길, 생각나시는지요? 때마침 열렸던 청년부 수련회에 격려 차 들렀다가 한 교우의 뜻하지 않은 호의로 다녀오게 된 작은 도시가 있었지요. 유난히 단풍이 아름다운 길이라며 아우토반 3번을 벗어나 Bad Ems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싶어 나선 길이었지만 아쉽게도 조금 이른 철, 녹색의 기운이 막 기울기 시작할 뿐 기대했던 단풍 구경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시간이 기억에 남는 것은 그 길을 오가며 나눈 이야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 이전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왔던 놀랍고 풍성한 영적인 유산을 왜 오늘날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일까, 오늘 우리의 신앙이 요란할지는 몰라도 천박해진 이유가 그런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가벼운 여행길에 무거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야기 중 송선생님이 "가톨릭을 실제로 움직이는 힘은 교황청이나 추기경처럼 겉으로 드러난 기구나 직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없이 기도하는 실천하는 수도원의 수사들에 있다"고 하였을 때, 단언하듯 강조해서 그 말을 하였을 때, 그 말은 뜻밖이었고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가톨릭과 무관한 이가 그렇게 말했다면 무심하고 쉬운 비난으로 들렸을지 모르지만, 선생님이 프란치스코회 수사로서의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그 삶과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을 짧은 만남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은 경험과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고백으로 마음에 와 닿았고 그만큼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영적 유산을 지켜가는 힘이 그나마 가톨릭에는 수도원과 수도자에게 있다면 개신교엔 무엇이 있는 걸까, 우리의 얇음이 보이는 것 같아 막막해지기도 했었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꺼내든 책은 일전에 읽은 <행복을 꿈꾸는 수도원>이라는 책입니다. 원제가 <IN THE SPIRIT OF HAPPINESS>이고, '뉴스케테 수도승들이 말하는 행복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인데, 오랜만에 독서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읽었답니다.
책을 보니 뉴스케테 수도승들은 원래 비잔틴 전례를 따르는 프란치스코회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동방 정교 전통에 매혹을 느낀 그들은 고대 사막 교부들이 보여준 수도생활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1960년대 새로운 공동체를 시작합니다. 서방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에 가교를 놓듯 시작한 그들은 거창한 사제복 대신 평복을 입고서 이 세상의 모든 이웃들과 함께 온 세계가 그 자체로서 경외롭고 경이로운 수도원임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세상의 물질을 포기하고, 순결을 지키며, 독신으로 살고, 규칙을 준수하며, 회헌(會憲)과 장상(長上)에게 순명하는 수도승의 삶은 그 자체가 고결하면 고결할수록 세상과 단절된 채 엄격하고 어둡고 가혹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여기기가 쉬웠는데, 이 책을 통해서 수도원과 수도승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치 동네 뒷산에 있는 맑은 샘이라고나 할까요, 잘 눈에 뜨지 않지만 끊임없이 솟아나 동네에 맑은 물을 내려보내는 샘처럼 우리 삶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영적인 힘을 공급하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을 이끌어 나가는 실제적인 힘이 수도원과 수사들에게 있다고 한 선생님의 말을 다분히 공감하게 됩니다.
책은 한 구도자가 수도원을 찾아 그곳에 머무르며 로렌스 신부를 비롯한 수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생활하며 거룩하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글의 방식이 그럴 뿐 실은 뉴스케테 수도원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한 행복이 이 땅에서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책입니다. 깊은 묵상으로 길어 올린 맑고 시원한 샘물을 가장 편한 잔에 나누어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수도승이란 무엇인가, 거짓 자아를 넘어, 영적 수련은 기교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거룩한 독서와 실천, 쉼 없는 기도, 전례로의 초대, 사랑은 무엇과 같은가, 용서의 힘 등 책 속에는 마치 내가 수도원에 들은 듯 마음을 기울여 읽어야 할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 제게는 크게 두 가지 부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굳어짐에 대한 것과, 생활의 성화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두 가지는 그 날 우리가 여행길에 나눴던 대화의 연장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듭니다.
"역설적이게도 '신앙적인' 사람들이 변화에 대해 가장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변화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메마른 땅에 떨어진 씨와도 같다."
변화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해야 할 신앙인들이 오히려 변화에 대해 가장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음을 책에서는 나직하지만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미 변화했다고 믿기 때문에 변화에 대해 완강히 저항하는 역설이라니요. 하느님께서는 이미 제 자신으로 가득 채운 사람을 채우실 수는 없는 법인데도, 많은 신앙인들이 실제로는 막 출발을 하면서도 이미 도착했다고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줄 사람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도장을 찍어줄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려 하고 있고, 그들의 단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언제까지 여러분은 자기 의견만을 쳐들고 흔들어댈 겁니까? 모르시겠어요?.....정말 문제입니다.....거짓 제자들의 문제예요. 가짜 제자는 아주 낡아서 거덜나버린 마른 스펀지와 같아요. 온갖 더러운 먼지와 때에 절어서 이리저리 나뒹굴지요. 그걸 욕조에 던져보세요. 물 한 방울 흡수하지 않고 그저 둥둥 떠 있을 뿐이지요! 물을 전혀 빨아들이지 않아요."
책을 읽다말고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한참동안 먹먹했습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으면서 물 한 방울 빨아들이지 않는, 낡을대로 낡아 거덜나버린 마른 스펀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이따금씩 보았던 모습이지요. 생각해보니 그 마른 스펀지의 형상은 영락없이 우리의 자화상이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채 아무 것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온갖 더러운 먼지와 때에 절어서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이 없는, 아프지만 그게 바로 오늘 우리들의 내면세계였습니다.
유행처럼 영성에 대해 말하지만 영성을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이완된 기분 사이를 오가며 그네 타기를 하기 위한 피로회복제로 사용하며, 영적 테크닉을 거룩한 은사인 양 가르치고 배우며, 오직 일인분의 식탁을 차리는 유해한 개인주의에 빠져 어느새 젖어버린 성냥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옳다는 메마른 신념에 붙잡혀 형제와 자매를 정의라는 제단에서 희생을 시킵니다. 그런 점에서 다음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동시에 아프기도 했습니다.
<전에 수도승 두 명이 그들의 사부와 함께 앉아 수도원 생활에 대해 의논한 적이 있었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한 수도승은 늘 장황하게 지껄이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기 좋아했다. 또 한 수도승은 그저 더없이 어질기만 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그 날도 공부를 많이 한 수도승은 특유의 논리와 논법을 기술적으로 사용하여, 형제를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 묶으며 공박했다. 그러나 수도원 전통은 토론에서 이겨 만족해하는 것을 결코 승리라고 보지 않으며, 그런 사람을 수재라고 보지도 않는다.
토론이 계속되는 동안 침묵을 지키며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사부가 마침내 토론에서 이겨 의기양양해하는 그 승리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여, 그대는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네. 토론에서 이기려고 좋은 말을 많이 늘어놓았지만, 그대의 독선 때문에 형제를 잃지 않도록 기도하시게.">
독선으로 형제를 잃는 일을 두고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일이라고 한 말은 여러 가지로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진정한 영적 전쟁은 외면한 채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작은 전투에 목숨을 거는 듯한 모습을 요즘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세상을 향해 강물처럼 사랑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굳게 문이 닫힌 성처럼 고립되어 가는 오늘 교회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심각한 굳어짐이 별 통증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몹시 두렵기도 합니다. 깊이 침잠한 자만이 발견할 수 있는 우리 내면의 굳어짐에 대해 이 책은 상처를 어루만지듯 따뜻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굳어진 우리 자신을 살피는 일과 함께 이 책이 전해준 또 하나의 유익함은 생활의 성화와 관련된 것입니다. 외관상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생활의 사소한 것들이 사실은 의미 있는 것들이며, 우리는 바로 그런 것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야 하며, 진정한 행복 또한 그런 사소한 일상을 통해 누릴 수 있는 것임을 곳곳에서 일러주고 있습니다. 마음에 담아 묵상하고 싶은 정결한 말들이 많습니다.
"너는 하느님을 향하고 있거나 돌아서 있을 수는 있지만, 하느님 없이 있을 수는 없다."( 한 러시아인) "수도원의 부엌 세간과 헛간의 연장을 다루는 것은 제단의 제구를 다루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느니라."(성 베네딕토)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가까워질수록 하느님과 가까워진다."(도로테오) "낙원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갖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하느님과 관계를 가져야 할 곳은 지옥입니다."(로렌스)
뉴스케테 수도원을 이끌고 있는 로렌스 신부가 설교 중에 한 아래 말에는 밑줄 두 개를 그었습니다.
"행복이 하늘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할 때, 지옥은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선생님의 삶을 멀리서 마음으로 존경하며 격려합니다. 마음에 따라 세상이 바로 수도원임을, 하느님의 은총을 묵상하고 그 은총을 샘처럼 나누는 복된 자리임을 허락하신 일터에서 행복하게 누리시며, 멀리서 바라보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넌지시 일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끊겨졌다 생각했던 영적 유산에 살아있는 손길로 닿는 것임을 믿고 싶습니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행복을 꿈꾸는 수도원>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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