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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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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불에 덴 상처
두어 주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랜만에 강원도에 있는 흙집을 찾았습니다. 오래전 외진 마을에 살며 마을 할아버지들과 지은 집이 용케 무너지지 않고 서 있습니다. 동네 어떤 집에 보일러를 놓기 위해 구들을 뜯어내면 뜯어낸 구들을 모으고, 집을 헐어 문짝이 나오면 문짝을 모으고, 흙은 근처에서 파오고, 그렇게 이것저것을 모아서 지은 집입니다. 새로 집을 지을 때부터 헌집을 지은 셈입니다.
화장실이라는 그럴듯한 말보다는 뒷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재래식 변소는 집 밖 구석에 있고, 샤워시설이 없어 씻기가 불편하고, 무엇보다 보일러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아궁이에 불을 때야 방안의 한기를 달랠 수 있는 불편한 집입니다. 그래도 마을 할아버지들과 함께 예로부터 살아온 방식의 집을 쉬엄쉬엄 지었으니 의미가 있다 싶습니다.
겨우내 찾지를 못해 방치를 했으니 밀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학교 교실을 리모델링하며 뜯어낸 것으로 만든 작은 마루에는 뽀얗게 먼지가 쌓였고, 언제 다녀간 것인지 박쥐 똥도 보였습니다. 막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튤립을 위해서는 겨우내 얼지 말라 덮어주었던 낙엽들을 거둬주어야 했습니다.
저녁에는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 몇 사람을 만나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시골에서 가장 먹기 쉽고 먹기 좋은 메뉴는 고기를 구워 먹는 일입니다. 어차피 방에 불을 때야 했으니, 숯을 만드는 일도 자연스러웠고요.
혹시라도 숯이 부족할까 싶어 나름대로의 꾀를 냈습니다. 예전에 사다 둔 중고 튀김기구를 꺼냈습니다. 튀김기구 안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숯을 담았고, 숯을 담은 튀김기구를 불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숯 사이로 불이 번져 손쉽게 숯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지인들이 일찍 올라왔고, 고기를 얼른 굽기 위해서는 숯 만드는 일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화력을 높이기 위해 아궁이에 장작을 더 넣으려는 순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장작 위에 위태하게 놓여 있던 튀김기구가 새로 집어넣는 장작으로 인해 중심을 잃으며 기우뚱했는데, 하필이면 그동안 뜨거워진 손잡이 부분이 내 손목 위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잠깐 사이였지만 손목은 적지 않은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괜히 수선을 피우면 손님들이 걱정할까 싶어 걷었던 옷소매를 내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뒤 약을 바르기 위해 살폈더니, 화상 부위가 제법 컸습니다.
그날의 일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고기를 굽는 동안 아궁이에서 숯을 몇 번 더 가져와야 했는데, 불에 덴 상처는 불을 가까이할 때마다 즉각 반응을 했습니다. 마치 화상을 입은 이유가 불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듯, 대번 통증을 일으켰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며 크게 걱정이 되는 것이 고통 불감증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한 채 너무 쉽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을 저지르고는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를 불을 가까이할 때마다 새로운 통증으로 반응을 하는 화상을 통해 새롭게 깨닫습니다.
<교차로>20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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