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홍승표 › [박몽구] 선인장

홍승표 | 2002.09.30 11:14:2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선인장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네 벼르고 벼른 무기들 앞에
악처를 다루듯 무섭기만 하더니
그 날카로운 못들을 헤치고
기특한 꽃들이 오밀조밀 돋아나
메마른 집안을 향기로 뒤덮던 날
우리는 얼마나 부끄럽더냐
난공불락의 성채 같은 가파른 몸에 비해
너무도 가냘퍼 터질 듯 앙징스런 너를 보면서
눈길 속으로는 닿지 못하고
매양 겉만 섞다마는 우리들의 사랑이
썩어 가는 꼴 잘도 보였다
한여름에 가시관을 쓰고 지내는 친구야
너를 서슬푸른 나라로 보낸 뒤에야
비로소 읽어 본 네 책 속에는
나비 한 마리 철책도 무섭지 않게
남북을 마음껏 날며 선인장 향기를 옮기더라
지금은 차가운 얼음속이지만
네 앞길 네 노래가 몰래몰래 퍼져
갈라진 땅을 붙이는 걸 보았다
흩어진 사랑들을 한마당으로 모으는 걸 보았다. (박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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