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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 2022.05.10 20:25:4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그런 얘기 고만해요

 

이젠 저도 그만한 나이가 된 것일까요, 한 지인이 보내준 <우리가 마지막 세대>라는 글에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세대를 일컬어서 컴맹의 마지막 세대

검정 고무신에 책 보따리를 메고 달리던 마지막 세대

굶주림이란 질병을 아는 마지막 세대

보릿고개의 마지막 세대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

성묘를 다니는 마지막 세대

제사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

부자유친 아비와 자식은 친함에 있다고 교육받았던 마지막 세대

자녀들로부터 독립 만세를 불러야 하는 서글픈 첫 세대

좌우지간 귀신이 된 후에도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하는 첫 세대’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고 있는 세태를 이야기하던 자리, 문득 이야기 하나가 떠올라 충청북도 옥천군에 있는 식장산(食蔣山) 이야기를 했습니다. 옛날 산기슭에 젊은 부부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딸과 살고 있었습니다. 살림이 얼마나 가난한지 먹을 것이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효성이 지극하여 늙은 홀어머니만큼은 끼니를 거르게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독한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때가 되면 겨우겨우 죽을 끓여 어머니께 드리는데, 어린 딸이 배고파 우니 어머니가 혼자서 먹을 수가 없었지요.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아무래도 우리가 결심을 해야겠구려. 어머니를 살리든지 아이를 살리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지 이러다가는 둘 다 잃겠소. 이렇게 합시다. 아직 우리가 젊으니 자식은 다시 낳을 수도 있지만 어머니는 한 번 가시면 다시 모실 수 없잖아요? 그러니 어머니를 위해 자식을 버리도록 합시다.”

차마 못 할 짓이지만 부부는 딸을 업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땅을 파고 딸을 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땅을 파던 남편이 한쪽에서 울고 있는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이리 와서 이걸 좀 봐요. 이상한 물건이 묻혀 있소.” 

아내가 급히 달려가서 보니 괭이 끝에 웬 그릇 하나가 달려 나오는데, 보통 그릇 같지가 않았습니다. 자식을 묻으려는 자리에서 나온 그릇, 어쩌면 자식을 살리려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부부는 딸을 데리고 그릇을 챙겨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릇에 무엇을 담아두면 이내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었습니다. 쌀 한 줌을 넣어두면 쌀이 가득 차고, 콩 서너 알을 넣으면 콩이 가득 차고, 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리면 기름이 가득 찼습니다. 

그릇 덕분에 흉년을 잘 넘긴 뒤 농사를 다시 짓게 되었을 때,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이 그릇은 하늘이 우리의 효성을 보고 주신 것이니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까지만 쓰고 그 뒤에는 다시 산에 묻어 놓읍시다.” 남편도 그 말을 좋게 여겨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날로 그릇을 산에 묻었습니다. 그런 뒤로 사람들은 그 산을 식장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한 지인이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이젠 그런 얘기 고만해요.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거예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장산에 묻힌 그릇처럼 이젠 이런 이야기조차 기억 속에 묻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인지, 마음이 씁쓸했답니다.​ 

 

한희철 목사 <교차로> 2022.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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