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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빛, 비밀스런 손길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7 추천 수 0 2022.08.31 06:5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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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빛, 비밀스런 손길
새벽예배를 마치자마자 공항으로 달려갔고, 주차를 하자마자 목사님 내외분을 만났으니 그런 만남도 흔하지는 않겠다 싶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변함없는 모습 변함없는 마음이어서 반갑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것보다는 한결같은 것이 훨씬 어렵고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이제쯤엔 들기 때문입니다.
먼저 목회직에서 은퇴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은퇴가 축하받을 일인지 위로받을 일인지 아직 저는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축하를 드리는 것은 은퇴를 감사로 새기시는 두 분의 모습이 귀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63세의 자원은퇴, 쉬운 결정은 아니라 여겨집니다. 법이 허용하는 한, 때로는 법을 고쳐서라도 목회를 연장하려는 세태 속에서, 개척하여 내 몸처럼 사랑하였던 교회를 훌쩍 떠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것도 여느 주일과 다름없이 교우들과 예배를 드림으로, 거창하거나 특별한 행사 없이 물러나셨으니 그만큼 교회를 사랑하신 분이라는 생각에 감동이 됩니다.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교우들에게 그동안 미안했고 고맙다 인사를 했다 하셨지요. 쉽고 편안한 넓은 길보다는 고민하며 걸어야 할 불편하고 좁은 길에 대해 고집스레 가르쳐 온 것이 한편은 미안하고 그래도 묵묵히 따라준 교우들이 고마웠다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목사님을 보내드리는 교우들은 마음 깊이 감사하지 않았을까요? 분명 좁은 길을 걷는 것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바른 신앙을 가르쳐준, 그리고 그것을 몸소 보여주신 목사님과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온 시간을 두고서는 두고두고 행복해하리라 여겨집니다. 더없이 홀가분한 목사님의 뒷모습이 더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그날 벚꽃이 만개한 여의도 윤중로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줄은요. 덕분에 저도 말로만 듣던 윤중로를 처음으로 찾았답니다.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벚꽃을 보며 저는 그날 목사님께 김지하의 시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벚꽃과 푸른 솔, 세상과 교회와 신앙에 관한 이야기들, 피어난 벚꽃만큼이나 많은 인파 속을 걸으며 우리가 나눈 얘기도 그런 것이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내로라하는 교회들이 벤치마킹을 하고 있는 미국의 대형교회, ‘신앙의 폭은 1마일이지만 깊이는 1인치’였다 고백한 윌로우크릭 교회의 보고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어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전하여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윌로우크릭 교회의 자기반성이 한국교회에서 어떤 반향으로 나타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신앙이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상품처럼 변질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하셨지요. 내 성공을 뒷받침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해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셨습니다. 신앙 안에 감추어져 있는 값진 보물을 하찮은 것으로 대체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따뜻하지 못하고, 타인에 대해 무례하고, 삶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지 못하고..... 눈부시게 핀 벚꽃은 아름다웠고 꽃을 즐기는 이들의 걸음과 표정은 가볍고 환했지만,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꽃처럼 사람들의 표정처럼 가볍거나 환하지를 못했습니다.
목사님, 혹시 ‘밀양’이란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이 만들었고 배우 전도연이 국제 영화제에서 큰 상을 타 제법 알려지게 된 영화지요.
‘밀양’이란 영화는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벌레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용서에 관하여 더없이 깊고 고통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는데, 자칫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허울뿐이기 쉬운지를 용서라는 주제를 통하여 아프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벌레 이야기’를 읽은 뒤로는 성경공부를 하다가 용서에 대한 주제를 만나게 되면 교우들에게 꼭 소개를 하고 있지요.
‘벌레 이야기’라는 제목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처럼 ‘밀양’이란 제목도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밀양’(密陽)은 영화 속의 주인공인 종찬이 신애에게 말하듯이 ‘경기가 엉망이고, 한나라당 도시고, 부산이 가까워 말씨도 부산 말씨고, 급하고, 인구가 많이 준’ 지도상의 한 지명으로서가 아니라, ‘비밀햇볕’이란 숨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영화의 주제를 ‘밀양’이란 지명에서 찾아낸 것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뛰어난 안목이라 여겨집니다.
‘밀양’이란 영화를 보고 답답하고 불편하고 괴로운 마음이 들어 ‘영화관에 가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4회를 연속으로 설교를 하고, 설교를 마친 뒤에도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어 책으로 엮어낸 이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살고 계신 곳의 반대편인 미국 동부의 워싱턴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김영봉 목사님입니다.
영화 한 편을 네 주일의 설교로 다루고 있다는 점도, 못 다한 이야기가 있어 책으로 엮어 낸다는 것도 평범한 일은 아니겠지요. 무엇보다 열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겠다 싶습니다. 자신은 영화 비평에 문외한이며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보긴 처음이라 밝히고 있으니, 이 모든 작업이 고통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외면할 수 없는 작업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 구원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는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신에게 참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상처받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도울 수 있을까,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등이 질문이 자신을 괴롭혔다고 책의 저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우리 교회에는 신애가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많은 신애들이 실망하면서 우리 교회를 떠났을까?’ ‘어떻게 하면 교회가 신애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을까?’를 묻는 있는, 영화라고 하는 일상의 문화를 통해 우리들 신앙인의 자화상을 아프도록 깊이 성찰하는 진지함과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영화 ‘밀양’에는 영화의 주인공인 신애 못지않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이가 신애 주변에 있습니다. 물론 신앙을 접하게 되는 신애의 모습 속에는 한국교회 안에 문화처럼 자리를 잡은 조급성과 피상성이 있고, 자신이 살해한 아이의 어머니를 만나기도 전에 하나님을 통해 용서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박도섭의 모습 속에는 거짓된 회개, 습관적인 회개, 교리적인 회개를 은총으로 생각하는, 그리하여 용서를 값싼 자판기쯤으로 생각하는 신앙인의 위선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들의 한계를 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싶지만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도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은 알량하게 드러납니다.
신애에게 복음을 전하는 은혜약국의 김집사가 그 중 하나입니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전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일하는 곳을 선교지로 생각하는, 열심 있는 신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집사가 전도하는 모습은 틀에 박힌 모습에서 벗어나 있고 어느 정도 예의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집사의 모습은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데, 김집사의 모습 속에 오늘의 신앙인과 교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무엇 하나 틀리지 않는데 뭔가 겉도는, 모두 맞는 것 같은데 아무런 공감이나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모습 말입니다.
김집사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를 책에서는 몇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김집사는 신애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함부로 단정하고 있다, 김집사는 자신은 진리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이며 신애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말하는 오만한 느낌을 준다, 제기된 질문의 깊이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 채 너무나도 단순하고 일차적인 말을 즉답처럼 제시한다, 신애의 감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앞세운다, 고난 받는 사람 앞에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태도를 보인다 등입니다.
타자의 아픔에 대해 같이 공감하고 아파하는 것, 겸손하게 다가가는 것, 스스로 깨닫고 돌아서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 말하기보다는 귀 기울여 듣는 것, 소박하고 인간적인 태도를 지키는 것,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은 김집사만이 아니라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리함과 무례함을 무엇보다 싫어하시는 목사님도 늘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복음을 전하라. 필요하면 말을 하라’는 프란시스의 말은 얼마나 바르고 정확한 지적인지요. ‘누군가에게 예수 믿으세요 하고 말하는 것은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지적도 마찬가지고요.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동의하지도 않는 정답을 훈계조로 듣는 이들의 불편함에 대해 너무나도 모른 채, 다만 전하는 것이 사명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우리의 한계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한 영혼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감수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아홉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옳고 당연하되 뭔가 겉도는, 삶의 아픔과 진실에는 끝내 닿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를 은혜약국 김집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주는 이가 또 한 명 있습니다. 좋은 믿음의 모범처럼 보이는 김집사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입니다. 뛰어난 연기 때문이었을까요, 영화 속 종찬이라는 이름보다는 배우의 이름인 송강호로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그의 믿음은 한 마디로 날라리 같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가는 이유는 ‘안 나가면 섭섭하고, 나가면 쪼금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에게서는 어디 한 구석 진지한 데도 찾아보기 힘들고 도덕적인 면도 찾아보기가 힘든, 신애의 말대로 ‘속물’ 인생입니다. 자신의 무식함과 교양 없음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애를 끝까지 지켜주는 이는 종찬입니다. 큰 아픔을 겪은 신애가 신앙과 교회 사이에서 방황하며 또 다른 상처를 입고 있을 때, 종찬은 바보처럼 신애 주변에 머물며 신애를 지켜줍니다.
교회가 만든 기준으로 보자면 분명 김집사의 신앙이 모범적이며 훌륭합니다. 종찬의 신앙은 신앙이랄 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모습이지요. 그러나 비밀스러운 빛을 끝까지 신애에게 비춰주는 이는 김집사가 아니라 종찬입니다. 김집사가 신앙을 이유로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함부로 뛰어들었다면, 종찬은 가만 곁에 설 뿐입니다. 그러나 치유는 종찬을 통해 찾아듭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거울 앞에 선 신애가 거울을 보며 자신의 머리를 자를 때, 언제나 그랬듯이 신애 주변에 머물던 종찬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선 신애 앞에 거울을 들어주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신애에게 희망과 회복의 빛을 전하는 진정한 사랑은 김집사의 틀림이 없는 말 속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종찬과 같은 말없이 아픔을 나누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행위 속에 담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생기도 감동도 없이 반복되고 있는 허울뿐인 우리의 신앙, 그래서 신앙마저도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로 보이는 세상, 그 메마른 틈새를 여전히 주님은 비밀스러운 빛으로 찾아오시겠지요. 그 비밀스런 빛 비밀스런 손길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목사님, 목회직에서 물러난 그 한적함과 자유로움으로 우리에게 나직이 가르쳐 주시기를 새삼 기대합니다. 새로운 빛과 손길이 목사님의 앞길을 선하게 인도하시기를 빕니다.
<숨어 계신 하나님>을 읽고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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