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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사람들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6 추천 수 0 2022.09.04 20: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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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사람들
여러분을 처음 만난 그날은 9.11사태가 나고 열흘쯤이 지난 2001년 가을이었습니다. 안팎으로 어순선할 때였지요.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 독일로 가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이 찾아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첫 예배를 눈물로 드린 뒤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저는 참 만남과 헛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오래 만나도 서로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헛 만남, 아무리 짧게 만나도 서로의 비밀을 알고 그것을 사랑으로 나눌 때 참 만남, 어렵게 시작을 하지만 우리의 만남이 참 만남이 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참 만남은 제 당찬 꿈이었습니다. 눈물이 많았던 만큼 밝고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남보다 먼저 뛰어들기 원했던 그동안의 시간과 생각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기 자리를 들고 그 자리를 떠나갔던 베데스다처럼, 내면의 온전한 치유가 일어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일수록 마실 물이 귀하다 했으니 말없이 솟아 마침내 한강의 발원지가 되는 태백의 검용소처럼, 세상을 향해 맑은 물로 시원하게 흘러가는 교회를 꿈꾸고 싶었습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억지나 과장이나 숨김이 없어도, 애써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목마른 이들이 그리움으로 찾는 주님의 집, 마음의 집 하나를 이루고 싶었지요. 동네 어귀 깊은 그늘을 지닌 느티나무처럼 지친 이들을 언제라도 받아주는 넉넉한 품이 되었으면 싶었습니다.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고 싶은 당찬 꿈이었습니다.
그런지가 어느새 6년, 여섯 해가 흘렀습니다. 그동안 힘든 일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깊은 수렁에서 벗어난 지금, 이제쯤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지금 우리들 모습이 어떠한지 교우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먼저 부족한 사람을 만나 함께 신앙생활 하느라 마음고생들이 많았을 터인데,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준 분들께는 감사함을 묵묵히 인내해준 분들께는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며 틈나는 대로 읽어야지 싶어 가방에 넣어온 책 중에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이란 책이 있습니다. 평소에 ‘리더십’이란 말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서도 이 책을 따로 챙기게 되었던 것은 ‘사람을 살리는’이란 수식어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책을 지은이가 안셀름 그륀이었던 것도 책을 챙기게 된 한 이유였습니다. 이 시대의 영향력이 큰 저술가인 안셀름 그륀이란 이름이 여러분들에게도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그는 지금 독일 베네딕토 뮌스터슈바르차흐 대수도원의 수사로 있으니 이래저래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영성에 대해 그윽한 이야기를 하던 그가 리더십과 사람을 살리는 일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궁금했습니다.
신앙의 길을 걷다보면 같은 교우들끼리도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만 있으면 말이지요. 어쩌면 서로 다른 생각을 가까이 좁힐 수 있는 가능성을 책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교우들과 그 책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즐거운 경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은 어찌 보면 엉뚱하게 여겨질 수 있는 책입니다. 1,500년 전의 베네딕토 수도규칙에서 현대의 경영모델을 찾고 있으니 말이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경영의 원칙이나 방법은 그 무엇보다 앞서가며 변할 터, 그런데도 1,500년 전 세상의 질서와는 엄격하게 구별 되었을 수도원의 규칙에서 현대의 경영원리를 찾고 있으니, 세월의 간극을 무모한 억지나 설교조의 뻔한 이야기로 메우는 것은 아닐까 싶은 괜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안셀름 그륀이 현재 수도원의 재정관리자(당가)로 활동하고 있고, 동료들과 함께 여러 기업체의 경영책임을 맡아보며 독일 최고경영자들의 영적 고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소개를 대하고나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의구심은 신선한 기대로 바뀌게 됩니다.
책에서는 책임자의 자질, 경영방법, 봉사 관리, 사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인간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 경영 목표 등을 다루고 있는데, 현대의 경영에서 필요로 하는 그 모든 것들의 근거를 베네딕토의 수도규칙에서 찾고 있습니다. 베네딕토의 수도규칙 중에서도 아빠스(수도원 공동체 책임자)나 당가(집안일을 주관해 맡는 사람으로, 수도원 재정을 맡은 사람)가 지켜야 할 규칙 속에서 찾고 있지요.
함께 한 시간을 통해 이미 충분히 경험했겠습니다만, 저는 교회 성장론자가 아닙니다. 성장이 믿음의 결과라면 감사한 일이지만 목표가 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이 책을 통해 눈여겨보게 되는 점은 경영의 방법이 아니라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삶의 자리가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치와 규범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에는 아빠스와 당가가 지켜야 할 태도와 자질을 소개하며 그것이 경영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맞는 재해석인 셈인데, 관점과 깊이가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나 이득을 남기는 비법이 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그보다 우선되거나 잃어버려서는 안 될 근본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까요.
저는 책을 읽으며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이 수도자들이나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겠다는,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꼭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귀담아 듣고 배웠으면 싶은 내용이 적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업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식하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당가가 업무를 통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듯이, 하나님의 집에 대한 이미지를 이 세상 안으로 옮기게 되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존중하게 되는 새로운 기업문화가 형성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윤의 극대화라는 기업의 목표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은 ‘쾌활함과 영감과 사랑을 나누는 터전이고, 누구나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며, 영혼이 감동을 받고 고무되는 곳’으로 ‘하나의 장소라기보다는 영혼을 활짝 꽃피울 수 있는 정신상태’를 의미합니다. 미국의 기업고문인 시크리턴은 영혼이 활력을 얻는 공간, 창의적인 기업문화, 자발성, 역동성, 재미, 유머, 좌절과 불안감에서 벗어남, 격려가 되는 자극, 서로에 대한 호의와 세련된 교류가 분위기를 결정하는 기업이 될 때, 기업은 성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조차 기업을 성전으로 생각하여 기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추구한다면 교회야 말로 그 맨 앞에 서야 한다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더욱 명확하게 다가왔답니다.
경영자가 가져야 할 온전한 성품에 대한 가르침이 마음에 닿습니다. 책 내용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안셀름 그륀은 베네딕토의 가르침을 통해서 책임자가 지녀야 할 인품과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신앙인들에게는 신앙과 인격, 혹은 믿음과 성품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신앙이 가장 높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나머지 것들은 하찮거나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인격적인 결함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면서도 그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마치 내 신앙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희생쯤으로 정당화 하지요. 때로는 자신을 통해 상처를 입은 자들을 믿음이 없거나 부족하다며 경멸하기까지 합니다. 성격과 인격의 한계가 신앙의 한계가 되는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그 중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당가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자질 중에는 성숙함이 있습니다. ‘성숙한’이란 독일어 ‘reif'는 익어서 수확해도 되는 과일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여물지 않은 쓴맛이나 신맛이 아니라 잘 익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취하지 않은, 정신이 말짱한, 쾌락에 빠지지 않은, 합리적인, 신중한’의 뜻을 가진 객관적인 사고방식(sobrius)은 성숙한 인간이 갖는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리를 걸칠 수 있는 겉옷처럼 내밀어야지, 젖은 수건으로 귀를 싸매듯이 남에게 덮어씌우지 마라.’는 말은 재미있고도 의미 있게 들립니다.
사물을 다루는데 섬세함을 요구한 베네딕토는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겸손을 요구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거나 환심을 사려고 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겸손(humilitas)은 자신의 인간성과 대지에 발을 붙이고 사는 토착화에 응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합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존재라고 하는 자기 존재의 심연을 알고 있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 위에 군림을 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지 않고, 자신이 유일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남의 행동에 시비를 따지지 않습니다. 상대를 화나게 하거나 과도한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거나 의심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영혼을 격려하며 생명을 불어넣어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알고 인정하며 진실을 마주합니다.
신앙은 인격이나 성품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세함과 겸손 등 인품이나 태도를 통해 향기처럼 배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온전한 성품을 갖추지 못하면 소중한 것들을 너무도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지적이 귀하게 다가옵니다. 하물며 기업이 그렇다면 교회는 더욱 그러해야 할 터, 책에 소개되고 있는 다음의 질문 앞에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인가? 정말 그럴까? 내가 하는 이 일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고려하는 것일까?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의 인격과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 있는가? 나한테서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오는가? 나는 사랑을 더 많이 퍼뜨리는가, 아니면 불안을 퍼뜨리는가?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가, 아니면 적대감과 경쟁심을 일으키는가?>
‘나는 사랑을 더 많이 퍼뜨리는가, 아니면 불안을 퍼뜨리는가?’ 하는 질문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愛之欲其生)는 논어의 한 구절과 겹쳐 다가옵니다.
교회 안이건 밖이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이자 초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마음을 지키는 것에 우리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열쇠가 있는 게 아닐까요?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이름이 되기를 빕니다.
<사람을 살리는 리더십>을 읽고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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