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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1 추천 수 0 2022.09.11 22: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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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면 드문 시간이었다 싶어.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 함께 신학의 문에 들어섰던 우리들이 어느덧 중견 목회자가 되어 모교를 찾아 입학 30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고, 은사님을 모시고 2박3일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야.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졌던 우리가 희끗희끗 머리에 서리가 내린 모습으로 만났지만 다시 만나니 이내 시간은 도로 그 때, 서로 부르는 이름이 자연스러웠고 엊그제 만났다 다시 만난 듯 마음속 묻혀있던 기억도 새록새록 새로우니 그동안 세월의 강이 어디로 흐른 것인가 싶었지.
신학에 입문한 갓 우리들의 자세야 더없이 진지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영락없는 코흘리개 시절이었어. 도대체 우리들이 믿어왔던 ‘하나님’은 누구고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누군지, 마치 나무 위에 우리를 올려놓고 나무를 마구 흔들어대는 것처럼 느껴졌지. 처음 대하는 신학이 어찌나 혼란스럽고 어지러운지 이러다 신앙마저 다 까먹는 것 아닌가 싶은 두려움에 ‘신학이란 인간이 쌓아놓은 헛된 바벨탑’이라 낙서처럼 휘갈겨 쓴 신학노트를 덮어놓고는 도망치듯 강의실을 빠져나와 공원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던 일이 생각이 나서 웃기도 했으니 말이야.
30년 만에 만난 우리들의 모습은 의외로 한결같았지. 유난스레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친구가 따로 없이 서로들 고만고만한 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왜 그리 정겹고 좋던지. 누가 알아주는 일도 아닌데 외진 농촌에서 20여 년 뿌리를 내리고 있는 친구들도 있어 미더운 마음이 컸어. 내로라하는 목회자가 되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졌으니까.
애향원, 소록도 등 신앙유적지를 둘러보며 신학의 길에 들어설 때의 첫 마음가짐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 것도 좋았지만, 다함께 버스를 타고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도 그에 못지않게 좋은 시간으로 남아있어. 30년이 지나도록 잘 몰랐던 서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 학생 때는 어려워서 감히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교수님과 마음속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시인으로 등단한 친구가 여행 중 쓴 시를 읽어줄 땐 우리의 시간이 더욱 그윽해졌고. 저 친구에게 저런 면이 있었구나, 서로를 새롭게 만나는 순간이 적지 않아 신학교에서의 첫 만남과는 다른, 우리가 길벗임을 깨닫는 시간 시간들이었지. 아름다운 동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의 마음에 자리한 복된 시간이었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광고와 독백이 가득한 세상일지도 몰라. 요란하고 화려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한 속셈을 감추고 다가서는, 말하는 자는 있지만 귀 기울여 듣는 자가 없는, 인터넷과 핸드폰 등 촘촘한 그물망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가깝게 묶여있다 싶으면서도 결국은 소외와 격리의 세상, 그런 세상 아닐까 몰라. 서로의 이름을 불러 서로가 꽃이 되는 대신 그저 서로가 몸짓에 지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 쓸쓸하고 허전한 삶이 아닐 수 없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이야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각자 각자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서로가 그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이 땅이 잃어버린 구원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 아닐까 싶은 것이지. 엘리 비젤은 <숲으로 난 문들>에서 이야기가 갖는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더라고.
「위대한 랍비 이스라엘 바알 셈-토브는 유대 민족을 위협하는 불운의 조짐을 보면 어떤 숲으로 들어가 명상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곳에서 그가 불을 피우고 특수한 기도를 올리면 기적이 일어나 불운을 피하게 되곤 했다.
그 후 그의 제자인 고명한 메즈리츠의 마기드는 같은 이유로 하늘에다 상의할 일이 생기면 선생이 갔던 숲에 들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주 만물의 주님이시여, 들으소서! 나는 어떻게 불을 피우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기도문은 아직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기적이 일어나곤 했다.
그 후 사소브의 랍비 모세-레입은 또 다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숲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불을 피우는지 모릅니다. 기도문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장소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불운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리즈인의 랍비 이스라엘에게 떨어졌다. 그는 자기 팔걸이의자에 앉아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는 이렇게 신에게 말했다.
“나는 불을 피우지 못합니다. 기도문도 모릅니다. 숲속의 그 장소 또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했다.
신은 이야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만드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야기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라는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니?
최근에 장병용 목사님이 쓴 <마음병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다시 한 번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했어. 이 책을 쓴 장목사님은 우리와 비슷한 연배의 목사님이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장애와 예술과 영성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숨 쉬는 공간 ‘에이블 아트센서’를 세우는 꿈을 이뤄가고 있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친구들도 있을 거야.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한 이는 아마 도스토예프스키였을 거야. 처음 그 말을 대했을 때 얼마나 낯설고 향긋하고 아름답던지. 독특한 빛깔을 가진 드물게 아름다운 경치처럼 흔하지 않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말이었어.
‘울고 싶은 그대를 위한’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누군가의 고뇌하는 마음에 한줄기 청신한 바람이 될 수 있길, 한 모금 차가운 샘물이 될 수 있기를 희구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울음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기를, 켜켜이 쌓인 상처를 꺼내놓고 마음껏 떠들고 함께 부둥켜안고 펑펑 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들의 모음이야.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을 믿는 마음으로 작고 눈물겨운 것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들이 담겨 있지.
작은 시골마을 자연의 품에서 약육강식의 동물적인 삶이 아니라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공생하는 식물적인 삶을 꿈꾸며 마을사람들과 신명나게 살아가는 화가 류연복의 판화가 갈피갈피 어울리고 있어. 생각보다 오래가는 종소리의 긴 여운처럼 말이야. 글이 담고 있는 내용을 그림의 여백으로 넉넉하게 받아 어색함 없이 어울리니 이미 두 사람은 글과 그림만으로도 좋은 ‘지음’(知音)이다 싶어.
일찍 세상을 버린 장애인 친구가 남긴 한과 아픔이 장목사님 가슴에 남았기 때문일까, 친구의 눈물과 한을 끌어안게 된 것이 자신에게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짐 지워진 운명과 같았다고 고백하는 장목사님은 작고 보잘 것 없고 여린 것들에게 손길과 마음과 눈물을 주고 있었어.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가장 높은 곳에 선 자가 가장 멀리 볼 수 있고, 그것이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게 해주는 비결이라 믿는 이들이 내남없이 남을 밟고서라도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기를 쓰는 세상이지만, 어쩌면 가장 멀리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자리는 가장 낮은 곳일지도 몰라. 사물과 사람을 사랑으로,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은 가장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일 거야. 하나님의 아드님이 사람의 몸을 입어 이 땅에 찾아오신 것도 마찬가지 뜻이었을 테고.
장목사님의 시선에 따뜻함과 연민이 담겨있는 것은 그가 낮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어. 필시 크고 거창한 것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은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외롭고 서러운 것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 여리고 눈물겨운 것들, 그러나 참으로 아름다운 것들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오래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낮은 곳에 머문 자 만이 누릴 수 있는 은총일 테니까.
감을 딸 때 가지를 꺾어 감을 따다보면 가지마다 상처를 입게 되고, 그 상처 속으로 빗물 같은 것이 스며들면 검은 멍 자국이 생기는데, 바로 그것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먹감나무 무늬라고 해. 장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소개하며 “상처야말로 인생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는 물감이다. 상처가 있기에 더욱 깊은 사랑을 하게 되고, 상처 때문에 따뜻하고 정직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상처로 한층 더 고결한 영혼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 얘기는 먹감나무를 거울로 한 자신의 이야기였을 거야. ‘상처가 제 속에서 깊어지면 빛나는 사랑이 된다’고 스스로의 마음에 새기고 있으니 말이야.
책을 읽은 내게는 장목사님이 신문에서 보았다는 이라크 여인의 말이 그림처럼 인상 깊게 남아있어.
“폭격이 끝나자마자 나는 정원으로 나가 꽃을 심었습니다. 그것이 내게 큰 위로가 되거든요. 어젯밤 공중폭격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갑자기 꽃을 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이웃 화원에서 꽃을 사다가 정원에 심었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던 지요….”
야만적인 폭격으로 갈가리 찢겨져 폐허가 된 땅에 꽃을 심고 있는 여인을 두고 장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지.
“나는 인간의 따뜻한 가슴과 영혼의 진실, 사랑의 힘이 무기의 힘과 전쟁의 광기를 몰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평화의 꽃씨를 품고 그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면 이미 그 기다림 속에 평화는 와 있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 아닐까. 급류에 휩쓸리듯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 내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자기 이야기를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땅에 한 송이 꽃을 심는 것과 같은 그런 일일 거야. 아주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일, 가장 작은 몸짓과 가장 낮은 목소리로 세상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 말이지.
‘어떠한 슬픔도 그대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 이야기를 남과 나누면 이겨낼 수 있다.’ 했던 아이작 디네젠의 말이 생각나네.
답답하고 괴롭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목회의 길을 걷는 우리들이지만 가장 낮은 곳에 서서 작고 여린 것, 불쌍하고 못난 것, 쓰러지고 무너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슬픔을 이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메마른 세상 한복판 한없이 낮은 곳에서 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잿빛 세상을 향해 희망과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일임을 다함께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단다. 길벗인 친구들아!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마음병원>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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