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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당당하렴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32 추천 수 0 2022.09.15 20: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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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당당하렴
너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할 때가 많단다. 고마운 순간에도 그렇고 미안한 순간에도 그래. 외진 시골에서 같은 학년이 서너 명뿐인 초등학교를 해맑게 다닐 때도 그랬고,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이어서 아무런 준비를 하지도 못한 채 훌쩍 떠나온 독일도 그랬지. 아빠의 결정을 따라 삶의 거처를 옮겨야 하는 너희들로서는 아빠가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 거야. 든든하게 내린 뿌리가 한 순간 뽑힌다는 생각이 너희들에게 왜 없었겠니. 너희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때나, 그런 너희들을 보면서도 딱히 도와줄 것이 없다 여겨질 때는 더욱 마음이 아릿하곤 했단다.
낯선 땅, 낯선 언어와 문화, 너희들이 독일에 온지 벌써 6년이 되었구나.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하기엔 그동안 너희들이 겪은 혼란과 어려움이 어디 만만한 것이었겠냐만, 그래도 이제 이곳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너희들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단다.
어려웠던 교회가 그동안 회복이 되었고 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 다시 떠날 때가 되었다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을 너희가 얼마나 헤아려줄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에겐 얼마든지 무심해 보일 수 있겠다 싶은 아빠의 마음을 말로 다 설명할 길이 없구나. 언젠가 너희들이 “아빠, 그 때 꼭 그래야만 했어요?” 물을 때쯤엔 서로 나눌 얘기가 있지 않을까 싶단다. 그 때가 오면 많은 얘길 하자꾸나.
우리를 찾아오신 손님이 있기도 했지만 또 한 번의 떠남을 앞두고 너희들과 같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즐겁고도 소중한 일이었어. 바로 눈앞에 아찔하게 솟아오른 웅장한 산과 산꼭대기에 얹힌 만년설, 쩔렁쩔렁 짤랑짤랑 이른 아침부터 골짜기에 울려 퍼지던 소와 양들의 투박하고도 정겨운 방울소리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단다. 같은 풍경과 같은 소리를 공유하는 것도 서로를 하나로 묶어주는 든든한 끈이 되는 거라면,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큰 것일 거야.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때 규민이와 규영이는 열심히 축구게임을 했지. 게임도 많이 달라져서 유명한 팀을 고르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들로 한 팀을 구성한 뒤 정말 실감나게 시합을 하더구나. 드리블과 패스도 그럴 듯 했고, 게임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관중들의 함성소리도 한층 현장감을 살려주어 구경을 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낄 정도였으니까.
너희가 게임을 즐기던 시간에 아빠는 주로 방에서 책을 읽곤 했지. 실핏줄 같은 물줄기가 까마득한 산꼭대기에서 산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가 앞에 앉아 책을 읽다가 경치를 보다가 경치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했어. 틈틈이 읽은 것이지만 그래도 이번 여행 중에 책 한 권을 읽었지. 너희의 기억 속에 남을 이번 여행의 시간 중에 쉬는 시간에 책을 읽던 아빠의 모습도 어렴풋 끼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책은 <사막별 여행자>라는 책이야. 너희들에게도 기꺼이 권해주고 싶은 책이란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사하라 사막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던 투아레그족의 무사 앗사리드라는 사람이지. 투아레그족은 사하라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베르베르인의 한 종족으로 여자들과 이방인들 앞에서 푸른 베일로 얼굴을 가리는 까닭에 ‘푸른 베일의 부족’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투아레그라는 말은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었어. 투아레그족은 자신들을 ‘이모하’라 부르는 걸 좋아하는데, ‘자유인’을 뜻하는 말이라고 해.
보이느니 모래 언덕밖에 없는 곳, 사람과 짐승과 식물 등 살아있는 모든 것이 생존하기에 가장 악조건을 가진 사막에서 살던 유목민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하지 않니?
무사가 사막을 떠나 프랑스로 가고 거기서 책을 쓰게 된 계기도 재미있는데, 어느 날 파리-다카르 자동차 경주를 취재하러 온 여기자가 투아레그족의 야영지에 나타나게 돼. 기자가 어깨에 멨던 가방에서 책 한 권이 떨어지고, 한 소년이 달려가 그 책을 집어주지. 그런 소년을 귀엽게 여긴 여기자가 그 책을 소년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 글과 그림이 담긴 그 책을 꼭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긴 소년은 아버지를 졸라 날마다 30킬로미터를 걸어 학교에 다니게 되고 마침내 소년은 그 책을 읽게 되는데, 그 책이 바로 <어린왕자>였단다.
소년은 어린 왕자가 죽는 책의 결말 부분을 읽고는 어린 왕자의 형제가 아직 사막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생텍쥐페리가 살고 있는 프랑스로 가게 돼. 이미 생텍쥐페리가 세상을 떠난 것도 모르고 말이야.
짐작했겠지만 그 소년이 바로 무사였단다. 무사가 <어린왕자>라는 책을 선물로 받은 때가 열세 살, 마침내 그는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파리에 도착을 하여 꿈을 이루게 되지.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쉽지도 짧지도 않았지만(쉽고 편하게 이루어지는 꿈이라면 누가 꿈을 꾸지 않겠니? 누가 꿈을 꾸겠니?) 사막에서 별을 좇아 방향을 정하듯 무사는 자신의 꿈을 좇아 마침내 꿈의 나라인 파리에 도착을 했어.
“어린 왕자는 내 영혼에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의 별을 시야에서 놓친 적이 한 번도 없다.”
생각해보면 무사의 삶을 바꾼 것은 책 한 권이었어. 아주 우연한 일 하나가, 우연히 펼친 한 권의 책이 얼마든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무사를 통해 확인하게 된단다. 파스칼은 <팡세>라는 책에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선택인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이라고 했지.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한 사람의 인생길을 결정하게 되는 경우가 많단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소한 일 속에도 하나님의 구체적인 손길이 담겨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이지만 말이야.
여행 중 게임을 하는 너희들에게 다음에 여행을 떠날 때는 책 몇 권도 함께 챙기면 좋을 것 같다고 했던 아빠 말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단다. 게임을 즐길 나이긴 하다만 책 읽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책 속에는 수많은 길이 있어 책에서 만난 한 구절이 얼마든지 몰랐던 꿈과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니까.
프랑스에 도착한 무사가 둘러본 세상은 그야말로 마술과 같은 세상이었어. 사하라와 파리는 극과 극이겠지. 사막에선 그렇게도 찾기가 힘들었던 물이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무한정 나오는 것도, 빛이 밝아옴으로써가 아니라 자명종을 울림으로 잠에서 깨는 것도, 가만히 닫혀 있다가 다가가기만 하면 갑자기 열리는 도깨비 같은 자동문도,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알지 못하는 엘리베이터, 방 전체를 녹일 듯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헤어드라이어, 먹을 것이 잔뜩 쌓인 대형마트, 낙타의 걸음으로 지나가는 시간과 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총알과 같은 속도로 단숨에 내달리는 테제베....., 무사에게 파리라는 문명세계는 한없이 경이롭고 황홀하게 펼쳐졌지만 무사는 그곳이 또 하나의 사막이라고 하는 것을 이내 깨닫게 돼.
파리를 또 하나의 사막이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구나. 사막은 지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있는 거란다.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사실은 텅 비어있는 곳, 어깨를 맞부딪치며 살아가지만 서로가 외톨이가 되어 까마득히 떨어져 있는 곳,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화려함을 좇지만 그럴수록 더욱 외로운 곳, 안락한 삶을 추구하지만 지쳐있는 곳, 사회보장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세대와 세대가 단절된 곳, 속도가 세상을 지배하지만 여유와 평온은 사라지고 조급함에 쫓기는 곳, 많은 것을 갖고도 감사하기는커녕 원망하고 자족하기는커녕 불안해하는, 아무 것도 없어 풀 한 포기에도 감사하는 사막과는 달리 모든 것이 풍요롭지만 파리는 분명 사막이었어.
무사가 새로 만난 세상을 경험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더없이 좋은 거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단다. 마치 때 묻지 않은 원시(原始)가 덕지덕지 때가 낀 문명(文明)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돌아보게 되지. 사막에 살던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얘기들이 책에는 가득하단다.
가족들과 떨어져 양로원에서 쓸쓸하게 지내는 노인들의 모습이 무사의 눈에는 더없이 낯설었어. 왜냐하면 사막에서 노인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내기 때문이었어. 노인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혜를 지닌 성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이지.
“아프리카에서 한 노인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
무사는 아마두 함파테 바의 말을 인용하며 현대의 문명을 ‘사람과 사람 사이가 너무 멀다’는 것으로 보고 있어.
화장실의 낙서를 통해서 사랑을 구하고 아무 곳에서나 스스럼없이 애정을 표현하지만 첫 눈길의 순수함과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연주를 계속하는 진정한 사랑은 사라져 욕망만이 남아 있는 것도, 편안한 집은 있지만 가족과 대화가 사라진 것도, 먹을 것이 넘치지만 나눔이 없는 것도(무사는 넘쳐나는 음식을 결핍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의 표시로 보고 있더구나), 시간과 일에 쫓겨 지금이라는 이 순간을 살지 못하는 것도, 나이 드는 것의 성스러움을 망각한 채 나이를 숫자로 인식하며 얼굴을 변형시켜 영혼을 바꾸려 하는 것도, 일과 휴가(축제)가 분리되어 있는 것도, 외로움에 지친 이들이 병원을 찾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도, 컴퓨터와 메일과 게임으로 제각기 외로운 섬에 갇혀 있다는 것도, 나침반을 손에 들고 있을 뿐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도, 사막에서 살던 무사에게는 모두 낯설고 당황스러운 모습들이었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든 게 당연하여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도 말이야. 그런 점에서 무사의 이야기들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보는 좋은 거울이 되어주고 있다 싶구나.
사막에서 살아온 경험 때문이었겠지, 무사는 낯선 사막으로 다가온 프랑스에서 투아레그족의 정신과 전통을 지키며 또 한 번 자신에게 허락된 사막을 사랑하며 살아간단다. 아빠는 그 점이 참 아름답고도 소중해 보였어.
“어디로 가야 할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를 기억해 내야 한다. 자신이 온 곳이 어디인지를 잊지 않는다면 길을 잃을 까닭이 없다.”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잊지 않는 것이 새로운 사막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지. 너희들의 삶의 자리가 너희가 생각하지 못한 낯선 땅이라 할지라도 너희가 어디서 온 누구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얼마든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고, 그 땅을 사랑할 수 있을 거야. 허리가 잘려있는 조국, 너희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것과,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낯선 땅일수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는 너희의 별을 따라가렴. 꿈을 이루기 위해 낯선 길을 걷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일 거야. 때로는 길을 잃을 때도 있을 거고. 그렇지만 잊지 말렴. 모든 길은 아름답단다. 꿈을 이루어가는 걸음걸음이 이미 아름다운 길이란다. 믿음과 용기를 가져야 해. 책에 나오는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별을 따라가라’는 말도, ‘바람은 같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말도 모두 너희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란다.
책 얘기와 함께 아빠가 너희에게 꼭 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따뜻하고 당당하렴. 따뜻함을 잃어서는 안 돼. 따뜻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거란다. 따뜻하되 당당하렴.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는, 긴 사막도 지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해. 따뜻함과 당당함을 지닌다면 너희는 분명 너희의 길을 사랑으로 걸을 수가 있을 거란다.
사막에서 보낸 시간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며 따뜻한 메시지를 전해준 ‘사막별 여행자’ 무사처럼, 너희들도 너희만의 따뜻하고 당당한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고 넉넉하게 품을 수 있게 되기를 빈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너희를 사랑한다. 아빠가 줄 수 없었던 사랑을 주님이 주시기를, 주님의 사랑이 내내 너희의 길을 인도할 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단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사막별 여행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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