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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나비를 잡는 아이처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28 추천 수 0 2022.09.16 21: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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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를 잡는 아이처럼
어렵게 준비된 잔치가 아름답다고 했던 생텍쥐페리의 말을 일상 속에서 확인하는 것은 언제라도 즐겁고 흐뭇한 일입니다. 이번 여름 ‘기쁨의 집’에서 주최한 <독서캠프>가 그랬지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생각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여 2박3일간 함께 보낸 시간은 일정과 진행이 빡빡하지도 엄격하지도 않아 더없이 허술해 보였는데, 허술함은 이내 편안함으로 다가왔고, 편안함은 어느새 간절함으로 자리를 잡아갔지요. 그런 모임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마음이 훈훈하여 희망의 불씨를 지켜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별 소용이 없는 것 같은데도 질화로의 불씨를 아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 세월이 벌써 10년, 마음으로부터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싶어 먼 길을 기꺼이 달려갔답니다.
경상북도 영주는 익숙한 듯 하면서도 막상 찾은 기억은 없는 곳인데, 독서캠프가 열린 문수교회는 영주시로부터도 얼마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드물게 기차가 지나가는 철로 옆 화단에 상사화가 무리지어 핀 문수역은 영화 속 간이역을 닮았고, 면사무소, 우체국, 경찰서 등이 모여 있으면서도 찻집이 하나도 없는 면내를 두고 저만치 언덕위에 자리 잡은 문수교회는 그런대로 규모를 갖추고 있어 아마도 동네에서 제일 큰 건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산에서 대형버스를 대절하여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지만, 대전, 인천, 울산, 수원, 성남, 원주, 서울 등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도 적지가 않았지요. 새롭게 조성된 조지훈 문학관, 화려함 대신 수수함으로 남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건물이란 찬사를 얻은 부석사, 강아지똥처럼 이 땅 구석구석 외롭고 서럽게 버려진 것들을 지극하게 사랑하다가 얼마 전 영원한 사랑의 품에 안긴 권정생 선생님 생가 등 주변 유적지를 둘러보던 시간은 지금도 즐거운 소풍으로 남아있습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흙벽에 달라붙어 있는 두꺼비집, 그 아래 빛이 바랜 채 놓인 짤순이, 주인과 정들었던 생쥐들의 양식으로 남은 듯한 마른 옥수수, 종이에다 조금 굵게 글씨를 쓴 뒤 비닐로 감싸 양쪽에 못 두 개를 박아 문패를 대신한 이름 석 자, 이곳이 정말 주옥같은 동화를 썼던 그 분이 살던 곳인가, 그 아름다운 동화가 이곳에서 써졌단 말인가 싶던 권정생 생가는 지난여름 다녀온 안데르센의 고향 오덴세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습니다. 허름한 흙벽돌집을 둘러볼 때 마음이 베이듯 아릿하고 아뜩한 아픔이 지났습니다. 그곳을 다녀와서 쓴 우병녀 선생님의 시가 그나마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전 언
-권정생 생가를 다녀와서
살았대나 살았었대나
굳게 잠긴 출입문 속내를 감추고
주인없는 마당엔 무성한 풀들만 키대로 자라
때늦은 방문객들의 바지자락을 적신다.
오갈이 없는 빈집이지만
매미는 울어 여름을 지키고
뒷마당 호박은 여물어 따 줄 이를 기다리고 있다.
하나님, 하나님
우리들의 하나님!
말씀 좀 전해주세요.
앞마당엔 은행알이 주렁주렁 매달렸다고
‘좋은날 풍경’의 잔잔한 노래와 비가 그친 여름밤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성글게 돋아난 별 아래 느티나무 주변에서 열린 홍순관의 음악회, 가장 편한 자세로 나누었던 ‘어정쩡함과 사랑’ 이야기 등 마음에 두고 싶은 시간들이 제법이어서 덕분에 헤어지는 시간은 길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지요. 내년의 만남을 약속하는 모습들이 성급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독서캠프에 참석했던 여러분들의 얼굴과 우리가 함께 보냈던 시간을 그리움으로 떠올리며 책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인데, 우리가 보낸 시간과도 많은 부분이 닿아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문장가인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니, 책의 제목이 논술 시험을 염두에 둔 것처럼 직설적으로 들려 참고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쓴 글쓰기에 관하여 좋은 도전과 도움을 주고 있는 책이랍니다.
김지문이라는 가공의 인물을 등장시켜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방법론을 소설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흥미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연암의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게 되니 기발한 착상이라 여겨집니다. 소설의 구성이나 서술에 있어서 철저히 ‘연암 따르기’를 시도했다 밝히는 지은이의 후기가 연암의 삶이나 글처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글이 곧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 모두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만큼이나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이 있지요. 살아있는 글, 숨을 쉬는 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글, 독서캠프에 참석했던 이들에겐 그런 바람이 더욱 크게 자리를 잡고 있을 것 같고요. 그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면 연암의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싶은데,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6가지로 연암의 글쓰기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정밀하게 독서하라, 관찰하고 통찰하라,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여 뜻을 전달하라, ‘사이’의 통합적 관점을 만들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글을 쓰라, 분발심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짧게 말하면 그 속내를 짐작하기가 어려울 듯 싶습니다. 충분히 읽고 새길 만한 내용이니까 여러분이 찬찬이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섯 가지 가르침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마음에 와 닿는 몇 가지 대목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글쓰기의 시작을 읽기에서 찾고 있는 것이 좋은 지적으로 여겨집니다. 그것도 천천히, 꼼꼼하게 읽는데 있다는 것이지요. 느리게 읽기, 오래 씹기, 되새김의 중요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는 이유당 이덕수 선생의 말엔 저도 밑줄을 그었답니다.
약(約)과 오(悟)의 이치가 새로웠습니다.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책, 그런데도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약(約)의 이치, 약을 알고 난 뒤 넓고 깊게 반복하다 보면 불현듯 통찰의 순간이 오는데 그것이 바로 오(悟)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관찰이 없으면 통찰도 없다는 말이 명쾌합니다.
제자들 간 글을 겨루는 장면에서 좋은 글을 썼음에도 글보다도 승부에 관심이 있었던 제자를 꾸짖는 장면에선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 위해 모범답안을 배우듯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 요즘의 세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다섯 자 글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생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시구(詩句)를 요즘의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명(耳鳴)과 코골이 얘기는 이내 공감이 되었습니다. 자기만 알고 남들은 모르는 것이 이명이고, 자기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것이 코골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글을 잘 썼다 해도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내 뜻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옛 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아는 것과, 변통하되 바른 기준을 지킬 줄 아는 창조적인 변통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은 ‘사마천과 반고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결코 그들을 배우지 않으리라’는 말 속에 잘 담겨 있다고 보입니다.
‘사이’의 통합적 관점을 만들라는 지적은 글쓰기를 넘어 우리의 신앙까지를 돌아보게 해줍니다. 양쪽의 중간인 이쪽저쪽을 꿰뚫는 사이의 묘를 깨닫지 못하고 쓴 글은 헛것, 양쪽을 고려하되 새로운 시각을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굳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구별과 대립을 포섭하는 동시에 그 단계를 넘어서는 자리가 필요한데도 우리가 갖는 사유의 틀이 너무도 견고하여 깨트릴 마음이나 능력이 없기에 대개의 경우 우리는 한쪽에만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기에 ‘사이’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을 잃어버릴 때가 많은 것이지요.
술을 좋아하는 당대 최고의 풍류시인이었던 백호 임제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하루는 임제가 잔뜩 취해 한쪽에는 나무신을 다른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말에 올라탔습니다. 짝짝이 신을 본 하인이 많이 취하셨나 보라고 하자 임제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길 오른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나무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요, 길 왼쪽에서 보는 사람은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상관할 게 무어냐?”
진실을 보려면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정면에서 보아야 하는데, 그 정면이 바로 ‘사이’입니다. 신앙이란 이름으로 최소한의 객관성조차 갖지 못하는 경박함을 ‘사이’는 꾸짖고 있다고 보입니다.
글을 쓸 때 분발심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도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의 힘을 믿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을 합니다. 세속의 명예나 이익을 좇는 거짓된 글이 아니라 진심으로 쓰는 글이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믿는 것이지요.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저술할 때의 마음을 나비를 잡는 아이의 모습에서 찾고 있는 것이 뜻밖이었습니다. 꽃에 내려앉은 나비를 잡기 위해 아이 하나가 살금살금 발꿈치를 든 채 다가갑니다. 마침내 아이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집게처럼 벌리고 나비를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나비는 아이의 모든 동작을 꿰뚫고 있었다는 듯 두 개의 손가락이 하나로 합해지기 직전, 그 아찔한 틈을 놓치지 않고 사뿐 날아오릅니다. 그러면 나비를 놓친 아이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던 다른 아이들을 향해 웃는데, 그 웃음 속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미묘한 분노가 함께 깃들어 있지요. 궁형의 수모를 당하면서도 사기를 기록한 사마천의 마음은 안타까움과 아쉬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 진심으로 쓰는 글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음을 믿는 분발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발심과 관련하여 한 가지 보태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나비를 놓친 아이에게 어찌 안타까움과 아쉬움, 분노 밖에 없을까 싶습니다. 나비가 달아나서 다행이라는, 나비를 잡지 못해서 오히려 잘 됐다는 마음이 얼마든지 아이에겐 있지 않을까요?
나비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설렘, 손가락을 벌린 마지막 순간의 떨림, 잡았다 싶은 순간 눈앞에서 사뿐 날아오른 나비에 대한 아쉬움과 분노, 그런 것들도 분명 뭔가를 쓰게 하는 분발심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글쓰기에 잡지 못한 나비에 대한 다행스러움과 고마움이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이 분발심이 될 때 우리가 쓰는 글이 살아있는 글, 숨 쉬는 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함께 모여 시간을 나눈 우리들이 세상을 향해 나비를 잡는 아이처럼 다가가되 얼마든지 내 손을 벗어난 나비를 좋아할 수 있는 사랑의 바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독서캠프를 기쁨으로 이끌어가는 큰 바보, 기쁨지기처럼 말이지요.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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