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364. 경계석을 끌어안을 사람

한희철 | 2007.12.09 19:30:1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여기 저기 담벼락에 포스터가 붙고, 거리 곳곳에서 유세가 벌어지고, 이제 정말 대선이 다가왔음을 곳곳에서 느끼게 됩니다. 후보가 많은 것에 비해 유권자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딱히 이 사람이다 싶은 후보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유권자들이 갖는 무관심의 이유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어서 배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전에 <신도 버린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불가촉천민, 그들이 섬기며 따르는 고대의 힌두경전인 <마누법전>에는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망각하고 고매한 진리에 접근하려는 불가촉천민을 처벌하는 구체적인 규칙도 들어 있었습니다.
‘베다를 들으면 귀에 납물을 부을 것이요,
베다를 암송하면 그 혀를 자를 것이며,
베다를 기억하면 몸뚱이를 둘로 가를 것이다.’

책에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마침내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된, 인도의 최상위 대학인 푸네 대학의 총장으로 일하며 장차 인도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자다브와 그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자다브의 일화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자다브가 판다르푸르의 이름 높은 사원에 있는 비토바 신당을 처음 찾았을 때, 그를 맞기 위해 사원의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이 총동원이 됩니다. 불가촉천민 출신이었지만 자다브는 사회적으로 모두가 공인하는 VIP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원의 운영회장과 대사제가 친히 자다브를 맞았고, 많은 사제들이 자다브가 제를 올리는 것을 서로 도와주고 싶어 했습니다.
자다브가 선 비토바 신당은 불가촉천민인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머니가 대대로 얼씬 조차 하지 못했던, 그림자조차도 가까이 할 수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림자를 신전에 드리우는 것만으로도 신전이 더렵혀진다고 여겼기 때문에 신전 안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 신당을 불가촉천민의 자식인 자다브가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자다브는 신분의 경계를 넘은 것이었습니다. 수천 년 이어온 제도를 마침내 눌러 이기는 순간이었습니다.
지성소에서 눈물로 제를 올리던 자다브에게 사원 바깥에 있는 커다란 돌이 눈에 들어왔고, 자다브는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달려가 두 손에 멍이 들도록 그 거친 돌을 힘껏 끌어안은 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매달립니다. 자다브가 끌어안은 그 돌은 불가촉천민이 접근할 수 있는 한계를 표시하는 경계석이었습니다. 커다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던 신분의 경계가 자다브를 통해 녹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방법이나 과정이야 어떻든지 우리나라를 부자로 만들겠다고 장담하며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사람보다는, 지역과 빈부의 차이 등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온갖 경계석을 멍이 들도록 끌어안아 녹여낼 사람이 누구일지를 살펴보는 것은 어떨지요. 그런 사람이 이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경계석을 끌어안을 사람, 그런 지도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2007.12.03 ⓒ한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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