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명아주 지팡이

한희철 | 2002.04.18 13:50:3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1876. 명아주 지팡이  

이웃마을 귀래면 소재지에 작은 약방이 하나 있습니다. 귀래면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가 약방 또한 주변의 이발소나 음식점, 정육점, 철물점 등의 가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약방입니다. 누구나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와선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래도 부담이 없는 그런 곳입니다.
며칠 전 약방에 들렀다가 약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주변에 사는 노인들을 극진히 모시는 분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노인들을 당신 차에 태워 바깥바람을 쏘일 수 있는 기회를 드리니 어찌 그 일이 쉽다고 하겠습니까. 점심을 손수 준비하여 노인들을 모시고는 주변의 유적지나 경관이 좋은 곳을 찾기도 하고, 혹은 훌륭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가 좋은 이야기도 듣고 하니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마음이 여간 흐믓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이라고 피하는 법이 없어, 덥석 당신 등에 업고 옮겨드리니 자식이 그보다 더하기도 어려울 듯 합니다.
이따금씩은 노인들을 위한 운동회도 열어 노인분들이 나이를 잊고 하루를 즐겁게 지낼 수 있게 해드리니 이래저래 노인들을 향한 마음이 곱고도 지극한 분이 아닐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바라보니 약품이 쌓여있는 유리창 쪽의 종이박스 안에 웬 지팡이 같은 것들이 여러 개 꽂혀 있었습니다. 긴 기역(ㄱ)자 모양으로 생긴, 나무가 아니라 무슨 식물의 줄기 같았습니다.
궁금해서 여쭤보니 역시 지팡이였습니다. "이게 바로 율곡 선생님이 짚었다는 청려장이에요.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지요." 꽂혀있는 지팡이 중의 하나를 꺼내보니 금방 꺾일 것처럼 약해 보이던 것과는 달리 명아주 대공은 가볍지만 탄력이 있어 단단하기만 했습니다. 명아주의 실뿌리를 불로 그을려 손으로 잡는 부분엔 꺼실꺼실한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짚을 때 지압효과가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용도가 궁금하여 이것도 약방에서 파는 것이냐 여쭸더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가 사람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밭에다 명아주를 갈았어요. 300여평에다 심었더니 1000여개는 난 것 같아요. 지팡이를 만들면 최소한 500개는 만들 수 있겠지요. 면내에 계신 80세 이상 되신 노인들께 선물로 드릴려구요. 잘 되나 시범으로 만들어 본 거예요."
일부러 밭에 명아주를 심고,  그것을 캐내어 다듬고 불로 그을리고, 그리고는 니스까지 칠해서 지팡이를 만들어 면내에 사는 노인들게 선물로 전하겠다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여간한 마음으론 마음먹기도 쉽지 않은 일로 여겨졌습니다.
머쟎아 면내에 계신 어르신들께서는 누구나 할 것없이 명아주 지팡이를 짚게 되겠지요. 지극한 사랑으로 만들어진, 어른을 지극한 사랑으로 공경하는, 세상에 그보다 좋은 지팡이가 또 어디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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