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오래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

한희철 | 2022.11.30 19:28:3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오래 가는 것에 대한 그리움

이태 전의 일로 기억을 합니다. 한 지인과 함께 화원 단지를 찾았습니다. 개업을 하는 이가 있어 축하 화분을 사려는 것이었습니다. 화원 단지를 찾는 일이 드문 저는 그날 깜짝 놀랐습니다. 제법 넓은 공간의 화원 단지가 여러 동, 무엇보다 규모가 놀라웠습니다. 화원 안에 놓인 꽃들도 놀라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전에 본 적이 없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꽃들이 빛깔과 자태를 뽐내며 화원 가득 피어 있었습니다.
화원을 찾았던 그날, 또 한 가지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던 것은 화원 단지를 찾은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꽃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꽃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꽃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마치 꽃이 거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꽃을 보며 화를 내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꽃처럼 환히 웃고 꽃처럼 감탄을 했습니다. 더러더러 얼굴을 가까이 대고 꽃향기를 맡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꽃들은 자신의 향기를 맡는 이들에게 그 마음까지를 물들이는 선물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난 화분을 산 지인이 같은 화분 하나를 내게도 선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알기에 끝까지 거절할 수가 없었는데, 대신 다른 화분을 고르기로 했습니다. 이곳저곳을 둘러본 끝에 선인장을 골랐습니다.
선인장은 난보다 값이 저렴했는데, 그것이 선인장을 고른 중요한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화려하게 핀 난이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은 더욱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피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화초를 제대로 돌볼 줄 모르는 사람이 화초에 대해서 갖는 큰 부담이 있습니다. 혹시 화초를 죽이는 것 아닐까 싶은 걱정입니다. 난을 돌보는 것보다는 사막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잘 견디는 선인장을 키우는 것이 화초를 죽이지 않는 더 좋은 선택으로 여겨졌습니다. 마치 아이가 기지개를 켜듯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선인장의 모습이 재미있게 여겨진 것도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요.
기대했던 대로 선인장은 저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언제 바라보아도 책상 한 쪽 편에서 두 팔을 들고 만세를 불러댔습니다. 하도 그 모습이 변함이 없어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금씩 자란 선인장의 키가 달라졌고, 위로 쳐들었던 두 팔이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아래로 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두 팔을 들고 벌을 서던 아이가 슬그머니 저린 손을 내린 것 같았습니다.
또 한 번 화초를 죽이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바닥까지 처진 가지여서 수명이 다했구나 했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기 몸이 닿은 바닥에 뿌리를 내린 가지가 마치 새로운 삶을 시작하듯 위쪽으로 가지를 뻗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화분을 처음 살 때 보았던 모습대로 힘찬 기지개를 켜며 다시 자라 오르기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것들이 쉽게 사라지는 세상에서 오래가는 것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때로 삶에 지쳐 몸과 마음이 바닥에 닿아도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희망의 표지입니다. 다시 기지개를 켜는 선인장을 보며 오래가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합니다.

 

한희철 <교차로>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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