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고구마 부자

임의진 | 2008.11.17 22:41:3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남녘은 벌써 나락들을 벤다. 그 틈에 나는 밭에 들어가 고구마를 캤다. 해마다 그렇지만, 올 겨울 군것질감도 고구마나 감자, 애지중지 아껴먹을 홍시와 곶감 정도. 멜라민이 묻은 과자는 입에 대본 적이 없다. 맵고 짜고 쓰고 단, 조미료 범벅한 음식은 바깥나들이를 해서야 맛보는 것이다. 라면도 쌓아두면 자꾸 밥해 먹는 게 귀찮아질까봐 비상식량으로 두어 개 정도만. 끼니 때 잡곡쌀 씻어서 밥 지어 먹고, 입이 궁금해지면 고구마를 굽거나 삶아 먹는다. 어떤 경우는 고구마가 주식이 되기도 한다. 밥 앉힐 때 고구마를 썰어 같이 넣으면 그게 고구마 밥이다.
올핸 맛이 어떠한지 한 개 씻어서 날것으로 먹어 보았다. 거름도 하지 않았는데 맛이 짱짱하게 잘 들었구나. 장하고 오지다. 정말 기쁘다. 뿌듯하다.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서민 주머니까지 그 여파가 몰려온다고들 걱정하는 이때, 나는 대관절 팔자가 펴서 고구마 부자가 되었구나.
가난뱅이 약자와 이방에 대한 싸늘한 무관심과 경멸, 끊임없는 탐욕과 소비를 통해 우쭐함을 얻고 계실 모든 세상의 부자들은 여기 고구마 부자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글·그림 | 임의진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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