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대방리 어린왕자

임의진 | 2008.11.17 22:46:1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우리 동네는 대방리(里)다. 그래서 택호도 대방 양반. 대방 영감, 대방 아재, 대방 아짐, 대방 댁 뭐 이렇게 부르게 된다. 대방 댁은 요쪽말로 “대방떡” 이렇게 발음한다. 먹는 떡이 아니니 주의바람. 대방 아재와 대방 아짐들이 가을걷이 하느라 ‘참말로 겁나게 대빵(대방)’ 바쁘신 요즘.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일하다가 이마와 목에 흐르는 땀을 닦기도 하고, 아예 목에 감기도 한다. 그걸 보고 있자니 파마머리 어린왕자 생각이 났다. 머플러를 날리며 은하세계의 별에서 날아온 어린왕자 말이다.

어린왕자가 뭐 별것인가. 그냥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오면 여기 사는 법대로 사는 것이다. 농사짓는 마을에 불시착했으니 장미꽃을 가꾸듯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얀 똥개들도 마치 사막여우 같다. 멀리서 집식구 일하는 거 보고 언제 일 끝내고 집에 와서 밥줄 것인지 애타는 얼굴들이다. 어린왕자 머플러, 아니 당고모 칠순 잔치 수건으로 흙먼지 묻은 옷을 탈탈 털고 집에 돌아오면 하늘엔 별들이 총총. 가로등도 별이 되고 싶어 까치발로 서서 총총.

나도 대방리에 불시착한 어린왕자다. 비행기 대신 차를 몰고 서울에 가서 그림전시회를 연다. 나도 추수하는 거다. 목에 수건을 걸치고 땀 흘려 그림을 그린 끝에, 이 가을 생애 첫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글·그림 | 임의진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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