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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 2022.07.20 18:45:3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인류 역사상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 중에서도 빠뜨릴 수 없는 대표적인 것을 대라면 나치의 만행을 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벌인 일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동물보다도 못한 만행이 아닐 수가 없었지요.
그 중심에는 히틀러가 있습니다. 그가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라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광기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진짜 모습을 사람들은 정말 몰랐던 것일까요? 어쩌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이뤄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히틀러는 예외적인 괴물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과 욕망이 합쳐진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히틀러의 조력자 중에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식별해내고 한 곳으로 집결시킨 뒤 그들을 집단수용소로 보내 죽음으로 몰아넣는, 유대인 대량학살을 뜻하는 '마지막 해결책'의 집행자 역할을 맡았습니다.
전쟁 후 아이히만은 미군에 붙잡혔으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 몇 년 동안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아르헨티나로 숨어듭니다. 큰 죄를 지은 누군가가 제아무리 세상 끝으로 도망을 쳐도 자신의 죄를 다 숨길 수는 없는 법, 마침내 그의 정체는 밝혀져 체포가 되고 극비리에 이스라엘로 이송되어 처형을 당하고 맙니다.
아이히만을 체포하고 연행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의 모습을 본 관계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치 친위대 간부로 유대인 학살계획을 지휘한 사람이었으니 그가 얼마나 짐승의 모습을 한 냉혹한 사람일까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무척 왜소한 덩치에 유순해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우리가 악에 대해서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 악은 무언가 이상하고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립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유대민족에 대한 증오심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출세하고자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그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다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을 그것을 의도한 주체가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악을 의도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저지르는 데에 악의 본질이 있다고 아렌트는 보았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아렌트의 유명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이 시작됩니다.
악은 지극히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악행은 끔찍한 괴물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해 시스템에 순응했던 평범한 사람에 의해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예외적인 악마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에 의해 만행은 저질러집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자기 본래의 모습을 감춘 채 숨어 있는, 악의 평범함입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202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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