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동네 한 바퀴를 돌다보면

한희철 | 2022.06.01 09:27:3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동네 한 바퀴를 돌다보면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으면 매일 반복하는 일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입니다.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서 천천히 동네를 지나 정릉천까지 다녀옵니다.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가벼운 산책길이지요.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누리게 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요즘은 정릉천에서 오리 가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새끼 열두 마리와 열한 마리를 각각 거느린 어미가 새끼들을 데리고 물 위를 오갑니다.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감탄사를 쏟아놓습니다. 조그마한 새끼들이 줄을 맞춰 어미를 따르는 모습이 여간 앙증맞질 않습니다. 새끼가 몇 마리인지를 헤아려 열한 마리를 거느린 가족이 있고, 열두 마리를 거느린 가족이 있다는 것도 서로에게 일러줍니다.
요 며칠 사이에 발견한 또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골목 곳곳에 몇 가지 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처음 만난 글은 좁은 골목을 지날 때였습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쓴 글이었는데, ‘화분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세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글 아래 괄호 안에는 한 마디가 더 있었는데, ‘경찰에 증거자료 있습니다’였습니다.
글을 읽고 생각하니, 누군가가 화분을 가져간 듯했습니다. 집 앞에 둔 화분이 없어졌으니 속상했겠지요. 화분 하나가 없어져서 보다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속상하고 걱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CCTV일까요, 경찰에 증거자료가 있다니 화분을 가져간 사람으로서는 큰 고민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곳을 지나 얼마 가지 않았을 때 또 하나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가져가세요’라는 글이 붉은 색 둥근 상에 붙여져 있었습니다. 가져가라는 글을 보고는 누구든지 상이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뜻인가 싶었지만 아니었습니다. 상 한쪽이 깨진 것도 그러했지만, 가져가라는 글 아래 ‘양심을 버리지 마세요’라는 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못 쓰게 된 상을 누군가가 슬그머니 갖다 버린 것이 분명했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간 뒤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 평소에 잘 다니지 않던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또 하나의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후미진 자리에 놓인 샌드위치판넬 위에 쓴 글이었습니다. ‘개똥을 버리지 마세요. 아무데나 개똥을 버리는 건 개 같은 짓!’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개 같은 짓’이라는 말이 글자는 흐릿했지만 큰 함성처럼 들렸습니다.
골목길을 지나며 만난 몇 가지 글들이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가져간 것을 도로 가져오라는 내용도 있고,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는 내용도 있었으니 말이지요. 서로 상반된 내용은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런 일 하나하나가 모여 우리 삶의 풍경이 됩니다. 그런 것이 모여 동네가 되고 이웃이 되니까요. 이왕이라면 좋을 일을 보태면 좋겠습니다. 작아도 좋은 모습을 보태면 내가 사는 동네가 사람 살만한 동네가 되고, 좋은 마음을 보태면 즐거운 이웃이 되는 것이니까요. 오늘은 좀 더 멋진 글을 기대하며 길을 나서볼까 합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2022.6.1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