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2222.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

한희철 | 2005.12.17 20:19:4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서재에 앉았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다. 드는 생각이 있어 겉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간다. 빗자루와 호미와 전지가위, 그리고 잡쓰레기를 버리는 쓰레기통을 챙겼다. 이번 주일에는 교회학교 주최로 벼룩시장을 연다. 이웃들도 오라고 교회 담벼락에 포스터를 붙였는데, 오가는 사람들 중에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 주변에 사는 이웃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을 듯 싶다.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마당에는 길 건너편 커다란 나무에서 한동안 폭설처럼 쏟아낸 꽃가루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보도블록과 나무 사이에는 민들레를 비롯한 잡초들이 고개를 내밀어 지저분했다.
비로 구석구석을 쓸어보지만 이미 엉겨붙은 꽃가루는 쉽게 쓸리지 않는다. 구석에 박인 놈들은 더욱 그러하여 천상 손이 비를 대신할 수밖에 없다. 꽃가루를 만지다보니 마음이 그런 것인지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는다. 몇 몇 생각들이 지나간다. 며칠 전 가졌던 임원회 생각이 난다. 부족한 재무현황, 예배당 건물을 지키기 위한 상환금이 매달 700여 만원, 그러면서 교회 살림을 꾸리기엔 아무래도 벅차다.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강요는커녕 강조할 줄도 모르는 내 성품으로는 뻔한 한계가 된다.
농촌에서 지내던 시간이 떠오른다. 교회마당에 풀이 나는 것이 죄스러워 바쁜 농사철에도 남이 쉬는 한낮 예배당을 찾아 풀을 뽑고, 제단을 청소하는 일을 예배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던 분들, 마음만큼 드릴 것이 없는 송구함을 그렇게 달랬던 분들이었다.
많은 이들이 우리 건물을 가진 교회가 있어 좋다고 한다. 냄새 걱정 안 하고 맘대로 밥 먹고 시간 구애 안 받고 모여 시간 보내고, 정말로 좋은 것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좋은 것과 그 좋은 것을 지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좋은 게 많은 교회를 아직 교우들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목사인 내 탓이다. 내 스스로가 본이 되지 못한 탓이다. '교사불여졸성'(巧詐不如拙誠)이라 했다. 그럴듯한 말보다는 부족한 정성이 낫다는 뜻이다. 그럴듯한 말이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정성이! 풀을 뽑는 마음이 쉽지 않다.
어느새 스며든 빗물이 몸에 닿는다. 일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아내가 하필 비 오는 날 일을 하냐고 한다. 먼지가 안 나 좋다고 대답을 한다. 목이 가라앉아 행여 주변의 염려를 살까 걱정인데 도지지는 말아야 할텐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잠깐 책상에 앉아 몇 자 적는다. 흙물 풀물 밴 손, 맘이 편하다. 거친 손이 주는 위로를 오랜만에 맛본다. 사택에 있는 온수기는 고장 중, 지하에 온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문득 따뜻함에 대한 그리움. 2005.6.18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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