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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 | 2021.11.07 21:43:3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시골편지] 미나리밭


꽃들이 피니 마당이 환해지네. 꽃가게에 가보라. 봄꽃 싱그러운 식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꽃이 집을 꽉 차게 만들리라.
한 스승이 있었는데 제자들에게 이 방을 한번 가득하게 채워보라 명했다. 첫째 제자는 오리털 잠바를 뜯어 깃털을 쏟았는데 방을 채우진 못함. 둘째 제자는 지푸라기 한 짐을 지고 와설랑 펼쳤으나 마찬가지 방을 못 채웠다. 셋째 제자는 양초 한 개와 꽃다발을 들고 오더니 빛과 향으로 방을 가득 채움. 스승은 기뻐 웃으며 그 방의 열쇠를 셋째에게 안겨주었단다.
천주교 황창연 신부는 훈훈한 인생을 살려면 몇 가지를 유념하라더군. “운동해라. 감사해라.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사귀라. 텔레비전을 거실에서 치워라. 공부해라. 웃어라. 자신에게 잘 대해 주어라.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라. 외로움을 즐기라. 하느님께 기대라.” 이런 조언. 봄꽃처럼 웃음을 머금고 생을 관조할 줄 알아야 한다.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피는 꽃은 웃음꽃인데, 혹시 요즘 당신 찡그리고 계시는지…. 적당한 외로움은 즐기되 오래 고립되면 병들게 된다.
마침 ‘시노래모임 나팔꽃’ 홍순관 형이 산골집에 놀러와 읍내엘 둘이 나갔다. 외국인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할머니 뼈다귀탕(?) 건너편, 봄미나리 향이 들큼한 계절 음식점. 우리 동네는 밥공기 추가 계산 같은 거 없다. 또 반찬을 남기면 주인이 입맛에 안 맞냐며 자책을 한다. 불잉걸에 팔팔 끓는 미나리. 밥집을 찾아가던 길가엔 미나리밭이 푸르동동. 밑천을 날린 꼴뚜기 장사라도 미나리 한 단쯤 덥석 인심을 쓰는 단골식당이다.
물찌똥을 쌀 지경까지 먹었다. 봄보로 봄봄, 고기보다 미나리를 배나 먹고 혀꼬부랑이 되어 귀가한 봄밤. 온몸에 독소가 빠져나간 듯 가벼웠어. 돈독 오른 독종들도 미나리나 먹으렴. 택지 개발 예정지구 다 물리치고 미나리밭을 일궜으면 좋겠어.
임의진 목사·시인
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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