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413.소나기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413.소나기


“후둑 후둑 후두둑...”
예고가 없는 것이 소나기라 하지만 정말 뜻밖의 소나기가 갑작스레 내렸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쨍쨍해가 났었는데, 구름 낀다 싶더니 이내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저만치 산자락으로부터 허연 비구름이 덮치듯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잠깐 교회에 내려왔던 규성이 엄마가 소나기를 보더니 발을 동동 구른다. 마당에 고추와 깨를 널어놓고 왔다는 것이었다.
잽싸게 오토바이를 타고선 냅다 작실로 내달렸다.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가 아팠고, 얼마나 쏟아 붓는지 앞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한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람 손가락 사이로 앞을 보며 계속 달렸다.
규성이네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뜻밖에도 집안엔 속장님이 계셨다.
“아니, 목사님이 왠일이세유? 이 비를 다 맞구?” 속장님은 놀라 물었다.
“고추는 어떻게 됐어요?” 대뜸 고추 사정부터 물었다.
“다 거둬 들였어유. 요 앞에 일 갔다가 비가 오기에 얼른...” 얘길 들으며 보니 자루에 담긴 고추가 한쪽 벽 비를 피해 나란히 서 있었다. 고추 걱정을 했던, 며느리인 규성이 엄마 얘길 그제서야 했다.
서로를 걱정하는 왠지 흐뭇한 만남, 몸은 온통 젖었지만 내려오는 길 마음은 상쾌했다.
다 내려오기도 전 비는 거짓말처럼 그쳐버렸다. 소나기란 그런 것이었다.(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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