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이현주 › 여무는 인생

이현주 | 2021.03.24 22:06:5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이현주2770.<사랑 아니면 두려움/분도>


77.여무는 인생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지 처음엔 몰랐고 나중에 알았다. 반세기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다. 하지만 그 얼굴을 마주 대하지는 않았다. 아직 아버지 안에 있는 모양이다. 그분 안에 있으니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은 간단하다. 서로 안에 있기 때문이다. 혹 내가 죽으면 아버지를 눈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인 생이란 더디게 진행되는 임신 과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렇다면 아무는 지금 아버지이신 어머니 태중에 있는 거다. 그래서 이렇게 그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지만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분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머리가 시켜도 몸이 그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있더군요."
"몸이 마비되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어서 그런 거다."
"생각은 누구를 비난하고 싶지만 입이 그것을 밖으로 내지는 않더라고요."
"그런 때가 지나면 생각으로도 누구를 비난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 맞아요. 이젠 특별하게 누가 밉거나 역겹거나 하지 않아요. 그저 모두가 짠하고 고맙고 그럴 뿐이지요."
“하늘은 사사로이 덮지 않고 땅은 사사로이 싣지 않는다 하지 않더냐? 네가 잘 여물어 주어서 고맙다. 때 되면 우리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될 것이다. 시간 없는 곳으로 태어나려면 시간 좀 걸려야 한다. 기다려라.”
예, 아버지.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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