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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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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형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눈곱이 심하게 끼고 금방 천당에 갈 것 같았는데 살아남아 연년생인 나랑 쌍둥이처럼 자랐다. 호적도 생일도 들쑥날쑥 엉망인 유년기. 아버지의 목회는 장애인 아이의 존재로 무지한 촌로들에게 외면당했다. 누나들은 일찍 도회지로 도망 나갔고, 나는 장애인 형의 도우미요 단짝 동무로 남게 되었다.
일원상 부처님을 모신 원불교 교무님 아들도 아닌데 형은 동그라미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는 학기 초마다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들춰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형은 그 틈을 이용해 교과서에다 색연필 볼펜 크레용으로 동그라미를 빼곡히 채워 넣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냉큼 종아리를 걷으라 호통을 치셨다. 형 이야기를 꺼냈다간 동무들이 또 ‘병신 집구석’ 어쩌고 놀릴 게 뻔해서 때리시는 대로 그냥 맞았다.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님은 목사관 곳곳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동그라미를 목격했다. 벽지에도 그려진 수많은 동그라미. 선생님은 내 방에 웅크리고 있던 동그라미 화가를 만났다. 선생님은 내게 곧바로 사과하셨고 나는 그제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인척 중 한 분이 왜 이런 이야길 책에 쓰냐며, 무슨 가문의 자랑이라고 그런 소릴 바깥으로 내뱉느냐고 정색하셨다. 그 맘도 헤아리지만, 내가 오늘 순례자가 되고, 슬픈 사연들을 짐작하는 작가가 되어 있으니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인 게다. 더 사랑해주지 못하고 작별한 후회와 반성뿐. 제 자랑에 치우친 교과서로는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형의 동그라미들.
수레바퀴 같은 사람의 진실과 사랑의 역사. 누구네 집구석 자랑을 하려고 급하게 쓴 국정 역사교과서엔 그런 진실과 연민, 자성 반성 같은 게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목적이 애초 그런 것인데 어떻게 선의라며 받아들이라 말하는가.
임의진 목사·시인
2017.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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