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성냥불

임의진 | 2020.03.30 23:55:2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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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 큰 산불 소식. 우리 동네도 몇 해 전 가정집에 불이 나서 홀라당 다 태웠다. 힘내시라고 성금도 드리고 그랬었다. 아직도 그 집 마당엔 불에 탄 흔적들이 보인다. 다행히 헬기로 물을 뿌려 뒷산으로 번지는 걸 막았다. 산으로 불이 옮았다면 내 거처도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냇가에 살면 홍수가 무섭고 산골에 살면 산불이 걱정된다.
사형수 세 명이 간곡하게 기도하자 하느님은 각자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기로 했다. 한 명은 여자를 구해 달라고 했다. 얼마 못 가 뼈만 앙상한 채로 죽었다. 다른 한 명은 술을 달라고 했다. 주정만 부리다가 죽었다. 나머지 한 명은 담배를 원했다. 그런데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간수가 궁금해서 묻자 죄수는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담배만 달랑 주고 성냥불은 안 주셨는데요.”
성냥불 하나, 담뱃불 하나로 큰불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상여를 태우다가 산불이 나고, 논두렁 밭두렁 태우다가도 산불이 났다. 아주 어렸을 적에 잠깐 초가집에서 살아도 봤다. 목사관 임시 거처가 초가집이었다. 그즈음 장애인 형이 불장난에 재미를 붙였는데, 나뭇광에 불을 붙이려고 번번이 시도하다가 내게 딱 걸리곤 했다. 장작 아궁이에서 놀다가 손을 데더니만 그 재미와 작별하더라. 집이 타버릴 뻔했다.
“저녁노을 지고 달빛 흐를 때, 작은 불꽃으로 내 마음을 날려 봐. 저 들판 사이로 가면 내 마음의 창을 열고, 두 팔을 벌려서 돌면 야! 불이 춤춘다. 불놀이야.” 명절 때면 깡통에 구멍을 뚫고 불놀이를 하기도 했다. 까딱 잘못했다간 산불로 번지는 위험천만한 놀이였다. 예전엔 불이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양동이를 들고 뛰쳐나왔다. 합심하여 불을 껐다. 뜬금없이 교회에서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부흥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 나는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떠올렸다. 불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모두 위험한 무엇이렷다. 이상 저온으로 밤기온이 차다. 잔솔가지 그러모아 난로에 불을 모으고 산다. 날마다 불을 보면서 지내는데, 재를 버릴 때도 그렇고, 꺼진 불도 다시 본다. 자나 깨나 산불조심.

임의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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