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80.여름마을(농촌) 축제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80.여름마을(농촌) 축제


주렁주렁, 길쭉한 조롱박이 제단 휘장 양쪽에 달렸고, 나팔꽃 긴 줄기가 제단을 가로질러 늘어져 있었다.
제단 옆 화분대는 작은 항아리가 화분대를 대신해 들국화와 갈대를 가득 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썩 잘 어울렸다. 벽돌색 종이로 제단에 써 붙인대로 ‘제1회 문학의 밤’(여름 마을 축제)이 열리는 날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것 투성이라 그런 행사를 준비한다는 것이 만용이다싶었지만, 학생들의 의욕은 내 생각을 저만큼 앞서가기만 했다.
믿음도, 경험도, 같이 머리 맞대 상의할 회원도 부족한 학생들. 몇날 며칠 밤을 늦게까지 남아 내태웠지만, 턱없이 막연한 구멍들은 쉬 메워지지 않았다. 실수를 경험하는 것도 좋은 교육이겠다 싶어 억지로 내 의견을 고집하진 않았다.
단 한번의 총연습도 없이 막이 올랐다. 가끔씩 실수를 해야 또 실수할까 긴장도 할텐데 처음부터 실수의 연속인지라 오히려 모두들 마음이 편했다. 한쪽 구석에서 일을 도우며 실수할 때마다 모두들 그러했듯 편하게 웃었지만, 마음은 아팠다. 몹시 아팠다. 백여 명. 문학의 밤을 구경하러 와 예배당을 가득 매운 학생들.
문화적인 공간이나 문화적인 시간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농촌에 사는 학생들. 그들이 기대를 가지고 가까이서 멀리서 예배당에 가득 모였는데, 준비한 건 어설프고 초라한 것. 시낭송, 노래, 인형극, 연극, 무용등 조금만 더 알차게 준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두 함께 서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또다시 고개를 드는 교사 한 명에 대한 절실한 아쉬움. 이 아이들 -단강교회 뿐만 아니라, 단강 근방에 사는 모든 학생들 -과 어울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생각해 줄 사람, 단 한 명의 교사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그러나 결국은 내가 견뎌야 할 것. 한 군데로 관심을 모을 순 없다 해도 시간 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웃고 돌아간, 생각보다 훨씬 많이 참석한 학생들. 다시 한번 그들과의 만남을 생각해 본다. 좀 더 넉넉하고, 솔직하게 공감하고, 낯설게 닫힌 마음이 편하게 열리는 그런 만남을.
“어렵게 준비된 잔치일수록 더 아름다운 법이다.”던 생떽쥐베리의 말을 기억하며 (1988)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