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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채식주의자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63 추천 수 0 2018.06.05 18: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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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으론 파고 호미로 긁고 낫으로는 친다. 녹음방초 우거진 뒷산. 사방이 짙은 푸름으로 덮여있어 귀신이랑 숨바꼭질해도 내가 이길 듯. 호미와 낫으로 길을 내고 꽃을 심어놓으니 사람 오가는 길임이 뚜렷해졌다. 이런 길을 걸으며 살고 싶었다.
기계영농의 시대에 나는 삽과 호미와 낫이 전부다. 욕심만 버리면 세월이 즐겁다. 죽으면 그만인 인생 왜들 그리 우당탕탕인지. 고요한 산막에 마음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간다.
꽃집 하는 후배 덕에 벼라별 꽃들을 불러다가 꽃밭을 채웠다. 밭에는 딸기를 몇 포기 심었는데 새들처럼 쪼아 먹고 있다. 열무 배추는 최참판 나리처럼 인심을 써가며 나눠 먹는 일이 재밌다. 채식주의자 정도가 아니라 채식보급자. 해 질 녘이면 삽과 호미와 낫을 깨끗이 도랑물에 씻어 대문에 기대어 둔다. 삽은 집을 지키는 장승만 같아라. 요새 대나무는 죽순을 밀어올리고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아이들처럼 우쑥부쑥 자라서 오지고 장하다. 죽순을 꺾어다가 삶아 먹기도 한다. 초장에 찍어먹으면 동동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오윤의 판화에서처럼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 한가지. 도동동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두세 사람 모이다가 ‘여럿’이 되고 ‘다 함께’가 된다. 그렇다고 날마다 시끄러운 건 아니다. 어제는 밭에서 산토끼를 만났다. 똥구멍으로 숨 쉬고 죽은 체해서 살았다는 나무꾼처럼 정말 숨도 안 내쉬고 날 훔쳐보더라. 토끼는 잘 먹고 잘사셔~ 하고는 병풍산 제 숲으로 달아났다. 토끼탕 파는 식당이 고개 넘어 가까운데, 그쪽으론 가지 말거라.
어영부영 놀다 보니 금방 밥 때. 옷과 밥과 집은 만드는 게 아니라 짓는다고 한다. 글도 쓰는 게 아니라 짓는 일, 글짓기라 하지. 허구한 날 풀때기 채식이고 팔자마저 채식주의자. 고기가 당기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은 벗들이 바쁘고 나는 뒷전. 채소 반찬에다 밥 짓고 글 짓는 저녁. 올드 팝 ‘문 라이트 플라워’가 달빛을 불러온다.
임의진|목사·시인


댓글 '1'

나무

2018.06.05 18:15:01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 한가지. 도동동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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