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 소설가의 집

임의진 | 2019.08.16 23:44:3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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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룹뚜룹 귀뚜리 우는 가을. 드디어 찬 공기가 떠돈다. 동네 밭들은 배추나 무 농사를 서두르고 언제부턴가 일손을 놓은 나는 그저 풀이나 베면서 빈터를 즐긴다. 노순자의 단편 <소설가의 집>을 보면 소설가인 이모부가 등장하는데, 이모부는 헛간 움막에 들어가 소설을 쓰곤 한다. 그 이모부가 죽자 잡지엔 ‘소설가의 집 요절한 아무개’ 하면서 무광, 김장광, 배추광이었던 방공호에 볏섬으로 거적문을 단 작은 움막이 소개된다. 그딴 데서 소설이 너무 단순하게(?) 제작된 건 아니었나, 이모부는 얼마나 마음이 맑은 영혼이었나 따위, 사람들은 가난한 소설가를 그리워한다. 이사 가기 전, 무광의 독에서 차곡차곡 개어진 소설 원고를 발견하게 된 가족들. 이모부의 영혼이 서린 움막을 지켰어야 한다며 후회를 한다. 그때 엄마가 이런 말을 한다. “뭘 그래요. 움막집이야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데요. 소설가의 집은 영혼의 집인걸요.”
내 아버지도 움막을 지어 농기구와 채전걷이들을 보관하곤 했다. 아버지 호는 안뜰이란 뜻의 내원이었으나 사실은 뒤뜰을 좋아한 후원이었어야 옳았다. 뒤꼍에 가보면 닭장, 토끼장, 그리고 독들을 모두 땅에 묻고 볏짚을 엮어 지붕을 올린 움막이 있었다. 이 움막은 내 놀이터였다. 움막을 아지트 삼아 소년소녀 전집들을 가져다가 읽었고, 성냥과 양초로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해보기도 했다. 누룩뱀이나 생쥐가 나타나기도 했고, 손톱만 한 도롱뇽이 살림을 차려 살았고, 들어오지 말랬더니 삐진 개는 일부러 문 앞에다가 똥을 싸지르곤 했다. 는개가 종일 내리면 움막의 비닐 안으로 몸이 따뜻한 새들이 피신을 왔다. 새들이 조잘대는 알 듯 모를 듯 한 외계어들을 엿듣고는 했는데, 내용이 길어 시는 분명 아니고 소설임을 눈치챘다. 새들의 소설은 책으로 묶이지는 않으나 달달 외워서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그린벨트를 풀고 신도심을 만들고 주택을 다량 보급하고,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아파트촌. 영혼의 거점이었던 움막은 헐리고, 소설가는 쫓겨나가는 황막한 지상도시. 집은 많으나 소설가의 집은 찾기 어렵고, 시간과 돈은 있으나 소설책을 사서 읽을 여유를 잃어버린 저 행렬들.

임의진 목사·시인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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