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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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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몇 발짝이면 대방리 저수지가 있다. 언젠가 나만의 월든 호수라 얘기했던 곳. 나는 호수라 부르지만 정부는 저수지라 우기는 곳. “뭐가 중한디!” 그냥 그러시라 해주는 곳.
몇 해 전 이웃 동네 대전면 저수지에서는 엄마와 세 딸, 무려 4명이 죽어 있는 차량이 떠오르기도 했다. “경찰은 장씨가 평소 우울 증세를 보였고 실종 당시 남편에게 ‘잘살아라,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모를 남긴 점 등으로 미뤄 딸들과 함께 동반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화면 속 짙은 립스틱의 리포터는 무심하게 기사를 읽어내릴 뿐이었다.
저수지 뚝방에서 노는 개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신발을 물고 논다던가 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왜 이런 곳에 신발이 있담? 하이힐이거나 등산화일 때 가슴은 더 콩알만 해진다. 언젠가는 분홍빛깔 블라우스가 판자 조각을 타고 저수지 수면을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계곡물에 휩쓸려 내려온 것일까. 물놀이하면서 놓쳐버린 걸까. 아니아니 자꾸 딴생각이 들어 심장을 오그라들더라. 가득한 저수지로 풍년을 기약하던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숭하고 의뭉하고 등골 오싹한 ‘썬 오브 비치’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여자의 신발이 발견되었다고도 하고, 여자의 목걸이가 발견되었다고도 했다. 저수지를 향하던 여자의 발자국을 따라 풀이 눕기도 하고 그녀의 구두가 남긴 무늬를 따라 숲의 어둠이 들어섰다고도 했다. 아직 눈을 감지 못한 것인지, 지금도 여자는” 조동범 시인의 ‘저수지’라는 시는 두려움을 부채질한다. 당신은 쓱 지나치며 고요하게 느낄 농촌 풍경이 집을 두고 사는 주민들에겐 오만가지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현장이 된다. 굴뚝이나 나무는 한자리에 오래 서 있는 슬픔 빼고는 걱정이 없지.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 덫에 걸릴지 몰라. 새로 단청한 숲이 골짝물을 쏟아내면 큰 수조처럼 생긴 저수지는 물고기들의 산란 장소. 어린 물고기들을 품은 저수지는 깊고 푸르다. 한 끼 라면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 눈감은 어린 청년도 오늘 저수지 물빛처럼 한없이 한가롭고 고즈넉한 세상에서 눈을 떴겠구나.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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