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 백조의 호수 빵집

임의진 | 2019.04.17 23:39:4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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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에 프랑스 사람 무슈 달로와요는 제 살던 동네에 처음 빵집을 열었는데 이제는 전 세계에 빵집이 생겨났다. 이름값을 할라치면 달로 와요 달로 오시랑께요, 달나라까지 뻗어나갈 기세렷다. 이름이 예쁜 빵집엔 시선이 먼저 모아진다. 아이들처럼 빵을 좋아한다. 요샌 무화과 쨈이 제철이고, 봄여름엔 딸기 쨈. 구운 식빵에 쨈을 발라 커피나 생과일 주스랑 먹으면 허기가 가시고 금세 배가 빵빵 남산이다. 즐겁고 간단한 요기에 이만한 먹거리가 또 없다.
읍내나 대도시로 나가야 빵 구경을 할 수가 있다. 면소재지엔 없는 게 많은데, 그중에 빵집도 하나. 유기농 재료로 구워 만든 건강한 빵을 맛보려면 더 멀리 도전해야 한다. 좋은 빵은 은수자나 된 것처럼 숨어 있다. 백조가 사는 호수마다 푸드 트럭, 간이 빵집이 있어 햄버거 핫도그 도넛 여름엔 아이스크림, 그리고 음료를 사먹을 수 있던 곳. 지난여름 영국 각지를 여행하면서 백조의 호수 빵집들이 부러웠다. 호숫가 의자에 앉아 빵을 나눠 먹는 연인들. 두려움을 잊은 백조는 부스러기라도 뭐 없나 뭍으로 성큼 올라오기도 했다. 은하수 모든 별들도 호수에 같이 살고 있었는데, 배때기가 뚱뚱한 백조가 물북을 치며 뛰어들면 새까만 밑바닥으로 몸들을 숨겼다. 한반도를 수시로 선회비행하며 검은 죽음의 폭탄을 뽐내고 있는 죽음의 백조 폭격기. 미군 폭격기 별명을 ‘죽음의 백조(swan of death)’라 누가 처음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백조들이 노니는 평화로운 호숫가 공원의 풍경을 아는 사람들에겐 정말 치를 떨게 하는 이름이라 싶다. 도대체 어떤 세력들이 부추기고 원하길래 이 푸른 가을 하늘에다 시꺼먼 폭격기를 그려 넣는 걸까. 백조는 다 어디로 가고 저 시꺼먼 악령들이 부리를 쪼으며 설쳐대는 걸까.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을 보는 일이다.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극장에 앉아 발레리나의 백조 춤을 감상하는 밤을 꿈꾼다. 백조의 호수 빵집에 앉아 늘 보던 진짜 백조들의 춤. 그와 사뭇 다른 풍경일 게다. 익숙한 음악도 흐를 테고 말이다. 손을 잡고서, 당신과 함께라면 좋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20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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