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구렁덩덩 신선비

한희철 | 2023.09.29 13:37:3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3b2db892deb215454cf3aeee5fbd953f.jpg[한희철 목사] 구렁덩덩 신선비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민담 중에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목부터 범상치가 않은 구렁덩덩 신선비는 ‘구렁덩덩 서(徐)선비’, ‘뱀 신랑’ 등으로도 불리는데, 구비문학의 일종입니다. 구비문학은 口(입 구)에 碑(비석 비), 말로써 비석을 세운다는 뜻으로 문자로 전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구비문학의 특징 중의 하나가 허구성입니다.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꾸며낸 이야기의 성격을 지니는데,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오며 그 내용이 쌓이고 쌓이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이고 보편적 생각을 담아냅니다. 구렁덩덩 신선비도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전국적으로 널리 구전되는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이야기의 큰 틀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할머니가 자식을 기원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구렁이였습니다. 이웃집의 세 딸이 구경을 왔다가 구렁이를 보고는 기겁을 하였는데, 셋째 딸은 호감을 보였습니다. 구렁이가 자라 이웃집 셋째 딸과 혼인시켜 달라고 해서 어머니가 가서 청혼을 하니, 두 딸은 거절하고 셋째 딸이 좋다고 하여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날밤에 구렁이는 허물을 벗고 잘생긴 남자가 되었습니다. 신랑은 아내에게 자신이 벗은 허물을 주면서 남에게 절대로 보이면 안 된다고 당부를 했습니다. 신랑이 과거를 보러 떠난 사이에 동생이 멋진 남자와 결혼한 것을 시기한 두 언니가 동생 집에 놀러 갔다가 동생의 복주머니에서 뱀의 허물을 발견하고는 불타는 부뚜막 아궁이에다 던져버렸습니다. 

 

구렁이의 허물은 삽시간에 타들어가며 굴뚝 연기에 실려 사방으로 퍼져 날아갔습니다. 한편 한양에서 막 급제한 신랑은 부인을 보러 갈 마음에 부풀어 있다가 그만 바람에 실려온 자기 허물의 냄새를 맡고 말았습니다. 인연이 거기까지라 생각한 신랑은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접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길을 나선 셋째 딸은 밭을 가는 농부, 빨래하는 할머니, 구더기를 찾는 까마귀, 온 산의 드렁 칡을 원하는 멧돼지의 청을 힘겹게 들어주며 길을 물었고, 마침내 남편이 사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신랑은 큰 기와집에서 다른 여자와 혼인을 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룻밤을 그 집에서 묵게 된 셋째 딸은 어디선가 들려온 노래에 화답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달려온 신랑을 만나게 됩니다. 한 집에서 두 부인과 살 수가 없었던 신랑은 참새 내려앉은 가지를 참새가 모르게 꺾어올 것, 꽁꽁 언 호수에서 나막신을 신고 물동이에 물을 길어 오되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아야 할 것, 호랑이 눈썹 한 올 뽑아 올 것, 세 가지 내기를 걸었습니다. 내기에서 모두 이긴 셋째 딸은 신랑과 다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안팎에서 들려오는 이런저런 소식들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고 눅눅하게 만듭니다. 현실하고는 동떨어져 허무맹랑하게 여겨지는 구렁덩덩 신선비 이야기는 무엇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 마음을 추스르며 곱씹어 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차로 2023.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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