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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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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가볍기를
그곳이 어디건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 건물의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그 건물 전체는 물론 건물에서 하는 일까지 꺼림칙해 보입니다. 화장실이 깨끗하면 건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집니다. 화장실 안 어딘가 작은 꽃병에 꽃이 꽂혀 있다든지, 은은한 향이 퍼진다든지,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든지, 좋은 그림이나 사진이 걸려 있다든지, 화장지가 여유 있게 마련되어 있다든지, 그러면 화장실이 격조 있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정릉교회 예배당 건물 안에는 화장실이 몇 곳 있습니다. 화장실 안 변기 앞이나 문에는 엽서 크기의 액자가 붙어 있습니다. 예배당에 있는 화장실이기 때문이지요, 액자 안에는 성경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이번에 액자의 내용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누가 들으면 목사가 믿음 없다 핀잔할 수도 있겠다 싶은데, 동시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예배당 안 화장실에 동시를 걸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른 동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간다.
아가 키가
큰다. (문구멍, 신현득)
*별똥 떨어진 곳
마음에 두었다.
다음날 가 보려,
벼르다 벼르다
이젠 다 자랐소. (별똥, 정지용)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꽃, 권태응)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가셔요?"
"오오냐, 순인 집에 있나 보더라."
"아아뇨. 어디 가시느냐구요?"
"글쎄 가 보아라, 공부하나 보더라.” (귀머거리 할아버지, 한인현)
*엄만
내가 왜 좋아?
-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그냥 (그냥, 문삼석)
*나중에 아빠 늙으면
규연이가 아빠 업어 줘야 해?
그래 알았어
근데 아빠,
아빠는 할머니 몇 번이나 업어 줬어? (몇 번이나 업어 줬어?, 박성우)
*소가
아기 염소에게 그랬대요
“쬐끄만게
건방지게 수염은?
또 그 뿔은 뭐람?”
그러자아기염소가 뭐랬게요?
“쳇,아저씬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 덩치에 아직도 ‘엄마 엄마’게.” (소와 염소, 손동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1, 나태주)
*현숙이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오더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그래 무언데?
선생님, 있지요
이번에 나 청군 좀 시켜 주세요.
4학년 올라올 때까지 한 번도 청군을 못 해 봤어요. (할 말, 임길택)
문득 교우들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성경구절이 사라졌다고 서운해 할 교우들도 있겠지요. 그런가 하면 동시를 읽으며 반가워할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짤막한 동시를 읽고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혹 마음에 드는 동시가 있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수첩에 기록을 하거나 암기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를 합니다.
무릇 화장실이란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곳, 충분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교차로> ‘아름다운 사회’ 202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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