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4. 동생들아, 용서하렴

한희철 | 2002.01.02 21:19: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한희철4. 동생들아, 용서하렴


요즘은 팀 스피리트 훈련이 한창이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태극기와 성조기가 거리마다 휘날리는 이 나라의 묘한 풍경.
들에 나갔다 오는 길이었다. 저수지를 지나 동네로 들어서다 보니 동네 오른쪽 언덕 밭뙈기에 몇 안 되는 미군들이 차량과 함께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동네 꼬마 아이들이 사탕을 얻어먹고 있는 것이었다.
미군 병사는 짚차에 올라타 앉아 사탕을 던지며 자비(?)를 베풀고 있었고, 코흘리개 아이들은 떨어진 사탕을 먼저 잡으려고 바로 그들 발 앞에서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사탕을 다 집으면 아들은 또다시 고개를 들었고 - 모이 쪼는 병아리였을까 - 그 미군 병사는 씩 웃으며 다시 사탕을 던지는 것이었다.
확 얼굴이 달아 올랐다. 속에선 불덩이가 일어 목구멍을 막았고 눈이 흐렸다. 그런데도 왜 난 불끈 쥐었던 주먹을 풀고 못본 체 풀이 죽어 그냥 내려왔을까.
왜 고추같이 매운 맛을 그들에게 보이지 못했을까? 코흘리개 어린 내 동생들이 철모르고 당하는 내 나라의 수치와 아픔을 왜 모르는 척 외면했을까.
그래, 부끄러웠단다. 차라리 모르고 당하는 너희들보단 알고도 돌아섰던 내가 부끄럽고 싫었단다. 아이들아, 아이들아, 이땅의 아이들아, 내 동생들아. 너나 할 것 없이 허리 반쪽 잘린 내 동생들아, 용서하렴.
<저 아이들에게 넌 사탕 준 적 없잖아> 하는 속 소리에 그만 지고 말았어. (얘기마을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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