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2942.
담쟁이넝쿨
아파트 후문을 들어서다 만난 허름한 담벼락
뭔가 기다란 것이 붙어 있다
아이의 낙서 같기도 하고
벽에 간 금 같기도 한데
유심히 보니 바짝 마른 담쟁이넝쿨이었다
담을 타고 오르다 만 줄기 하나
밑동이 잘린 채로 벽에 붙어 겨울을 나는 것은
어디까지 자랐는지를 잊지 않으려는 것일까
어디까지 자랐는지
얼마쯤이었는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잊어도 상관없다 여기던
어디에도 표시한 적 없는 비쩍 마른 삶이 너무도 뻔해
허름한 담벼락 앞에서 발목을 붙잡힌다. ⓒ한희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