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 소쇄원 달밤

임의진 | 2016.07.30 14:16:4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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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는 걸까. 외딴 집을 보면 그런 궁금한 생각이 든다. 산새와 고양이, 동네 개가 한번쯤 안부나 물어줄까. 인기척은 아예 없고 지붕에서 톡하니 흙덩어리가 떨어지는 집. 벽은 검댕이 슬어 까맣고, 새들이 물어온 나뭇가지로 지붕은 덮이고, 밤마다 듬성듬성 별이 박히면 집도 기운이 다해 혼령이 빠져나가버리겠지.

지난 봄날 강물 위로 노을이 눈물짓던 강변마을, 금방 쓰러질 듯 가련한 슬레이트 지붕을 보았다. 아무도 살지 않는 거 같아 기웃거려 보았는데 중년의 한 사내가 폐병 걸린 듯 퀭한 눈을 하고선 방문을 열었다. 깜짝 놀라 돌아섰지. 잠깐 엿본 방은 캄캄했고 마당에 홀로 핀 하얀 앵두꽃은 가난의 정도와 시름을 짐작하게 했다. 깊은 산골은 한 집 건너 그런 집들이 늘고 있으나 대도시 주변은 대궐 별장이 날로 생겨나고 있어.
여행에서 돌아와 집밥을 해먹고 친구들과 골짝물에 발 담그며 복숭아와 옥수수, 수박을 맛나게 먹었다. 건넛마을엔 소쇄원이 있는데 서울에서 친구들이 내려와 하루는 가이드를 하기도 했다. 강진 살 때는 손님 오시면 다산초당을 하루에 두세 차례 가기도 했지. 외지 손님들 덕분에 휴가철엔 더욱 그랬다. 의미 깊은 곳이라 고달픔보다는 감사로 삼았지. 담양에선 소쇄원을 자주 가게 된다.

대숲을 돌아 소쇄원이 보이자 누가 그랬다. “저게 소쇄원이야? 아무도 안 살아?” 과연 아무도 살지 않는 걸까. 선비는 여태 대청마루에서 시를 짓고 밤에는 달님이 불을 밝혀주고…. 낙향선비 양산보가 시를 짓던 마루에 동네 할머니는 빨간 고추를 널기도 한다. 한동안은 상사화가 어찌나 붉던지 대낮에 길을 잃을 뻔도 했어. 옛사람은 죽었으나 선비의 정신이 여태 살아있는 곳. 소쇄원에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정신이 죽고 없다면 집도 같이 명을 다할 것이리라. 조선 중기 잘 지었을 대갓집은 모두 사라졌으나 이 유배자의 정원은 남아있구나. 과연 지금 짓는 저 많은 주택들은 얼마나 오래갈까. 후세에 누가 그를 기리며 집을 찾아줄까.

임의진 | 목사·시인 2015.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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