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위로 극장, 위로 공단

임의진 | 2016.07.30 14:21:1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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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렸을 적엔 읍 단위마다 극장이 있었다. 극장에선 영화를 하루 두 편씩 상영했는데, 어른들은 읍내 나갈 일이 없어도 역뿌러(일부러) 극장을 가고는 했다. 오이장아찌, 무장아찌 맛이 다르듯 영화마다 맛이 달라. 연애의 대부분을 극장에서 했다. 영화 보다가 손을 잡은 것이 사랑이었고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은 작별이었다. 지금도 매일 밤마다 영화를 한 편씩 틀어놓고 눕는다. 영화가 좋으면 끝까지 보고, 아니면 중간에 잠이 들지. 꿈에서 나는 많은 스타들을 만난다. 영화는 결국 한 편의 꿈자리며 별자리.
촌에 살다보면 개봉영화 보기가 간단치 않다. 천만이 드는 흥행 영화야 개봉관 수가 많으니 아무 때고 대처 나가서 보면 그만인데, 별종이라서 보고 싶은 영화도 유별나지. 영화를 찾아 아주 먼 길을 나서는 경우도 있다. 엊그제는 <위로 공단>을 정말 어렵사리 보았다. 영화는 뜨겁고 차가웠으며 맵고 짜고 쓰다가 다시 달았다. 처음 경험하는 맛이었다. 영화는 여성 노동자들의 눈을 통해 지난 세월을 바라본다. 어떤 기독교 기업은 여성노동자들의 손바닥만 한 휴게실을 없애고 그곳에 예배실을 차린 뒤 실적 성과를 높이게 해달라며 기도를 바쳤단다. 탐욕, 망상, 미신적 신앙이 빚어낸 웃지 못할 코미디. 강남의 금싸라기땅 대형교회 별관 외벽에 그려져 있던 금발머리 미국사람 예수. 장발의 디캐프리오를 좀 닮은 거 같기도 하던 그 예수라면 그런 장로님 사업주의 기도를 들어줄 것 같기도 해.
공단이 그 난리일 때 농촌은 황폐하게 무너져갔다. 농토는 버려지거나 농약에 중독되고 있었다. 그래도 여성 노동자들, 여성 농민들이 있어 지켜온 이 땅 이 세계. 큰돈을 잃고 실의에 빠진 사장님이 수도원에 쉬러 왔는데 한숨만 쉬다가 돌아갔다지. 밭 매다 수도원장은 수도사들에게 한마디 변을 남겼다. “마루에서 자는 사람들은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린 밭이나 잘 매고 삽시다들….” 나이키 신발 신고 싶다던 그 어린 소녀 노동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시방 위로 극장에서 위로 공단을 감상하고 있을까.

임의진 | 목사·시인  2015.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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