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 베를린 천사의 시

임의진 | 2016.06.21 12:50:4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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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턴 청춘의 우상 본 회퍼 목사, 음악가 윤이상, 영화감독 빔 벤더스의 골목을 차근차근 걷고 있다. 아주 오래전 뜻하지 않게 베를린 동물원역 근처에서 잠시 지냈는데 이십여년 만에 다시 이곳 베를린을 찾은 거다. 유럽의 수도. 분단을 극복한 이 거리는 어디로 가나 확 트인 통행길. 왕래하던 길을 끊고 형제간에 편지조차 없이 잔인한 철조망을 친 내 조국은 비극의 땅이다. 동서독의 장벽을 허물고 나서 통일 독일은 왈패라 할 만큼 다시 강인해졌다. 다행히 이 나라 양심적 지식인들은 시퍼런 눈으로 살아 있고, 파리나 런던을 제치고 가장 핫한 예술가들의 안방이 되어 있다.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는 잊을 수 없는 영화 가운데 하나. 다니엘이 천사로 살던 장면은 흑백인데 서커스 곡예사 소녀 마리온을 사랑하고 인간이 되었을 때 영화는 순간 컬러로 바뀐다. 총천연색 인생, 살아 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사람으로 산다는 것, 참으로 큰 축복임을 그대도 알아야 한다. 공중곡예와 같은 이 진기하고 놀라운 삶.

해남 살 때 처음 서커스를 구경했다. 온 동네를 북을 치고 풍악을 울리며 서커스가 들어오면 교회당보다 서커스 극단 천막이 더 성황이었다. 아버지 목사님은 교인들과 같이 서커스 구경을 갔다. 나도 아버지 손을 잡고 그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피에로 아저씨는 굵은 눈물방울을 얼굴에 그려놓고도 배꼽이 빠지게 웃도록 만들었다. 공중곡예사 소녀는 베를린 천사처럼 하늘을 날았다. 세상은 많은 천사가 산다. 하지만 천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해. 왜냐면 사람은 뜨거운 피가 흐르고, 사람의 몸을 입어야만 사랑을 할 수 있지. 달콤한 사랑의 입맞춤이여.

공중곡예를 마치고 지상에 내려온 소녀를 향해 손바닥이 아플 만큼 박수를 쳤다. 당신의 삶도 박수를 받을 만큼 아름다워. 사람으로 살며 사랑하고 살자. ‘스톱 더 워(Stop the War).’ 광복 70주년, 휴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사람은 평화일 때 사람인 게다.

임의진 목사 시인 201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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