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샹송을 듣는 시간

임의진 | 2015.10.10 19:53:3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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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이 탄생하던 투표 날 귀국했으니까, 파리 외곽 시골 마을 도몽(Domont)에서 딱 한 달을 슬렁슬렁 지냈다. 지인의 소개로 무턱대고 찾아간 동네. 이방인에게 방을 한 칸 내준 할배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꽃길을 달렸지. 빵을 잘 굽는 집을 수소문하거나 낡은 성당에 앉아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완행열차를 타면 코앞인 고흐의 무덤 마을도 자주 갔다. 그림 속 별들이 대낮인데도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것 같았다.


서낭당 나무 속에 굴을 파고 사는 부엉이처럼 조용조용히 지내다가 가끔 파리 번화가에 나가곤 했다. 음반가게 프낙이나 버진에 들러 샹송 음반을 골랐다. 당신도 좋아하는 에디트 피아프나 이브 몽탕, 수염을 더부룩 기른 음유시인 조르주 무스타키가 부르는 ‘나의 자유’나 ‘나의 고독’은 반드시 들어야 할 노래. 샹송이란 ‘민중의 노래’라는 뜻. 우리네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가감 없이 스며든 주제가들. 가을엔 무조건 샹송이다. 마로니에 가로수길, 낙엽이 구르는 파리 시내. 그 길로 흐르는 잔잔한 노래들. 스펀지나 솜뭉치가 풀어져 궁둥이가 움푹 파인 소파에 앉아 샹송을 들어보라. 망가진 소파에서 망가지고 지친 인생도 잠시 기대어 위로를 얻는 순간.


선돌 위에 흙 묻은 신발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방에서 시름시름 앓던 날이 있었다. 마당 구석 약탕기에서 끓던 한약재 냄새. 낙엽으로 밑불을 지피고 그렇게 방에 들어오면 왠지 샹송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바다에 물이 저렇게 많건만 한 움큼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무수한 세월도 짜디짠 회한뿐. 낙엽이 떨어져 흩어지듯 사람 목숨도 천년만년 머물지 못한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초승달이 기우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샹송을 들으면 맘이 편안해진다. 이중 국적자처럼 갈팡질팡 인생, 한창 푸르던 미나리꽝 인생도 언젠가는 꽝꽝 언 얼음 땅이 되고야 말리라. 그날이 오기 전 친구와 다정히 샹송과 와인 한잔, 작은 내 소망이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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