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한희철 › 호미 씻으면 김이 무성하다

한희철 | 2023.08.23 21:32:1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3b2db892deb215454cf3aeee5fbd953f.jpg[한희철 목사] 호미 씻으면 김이 무성하다

 

오래전 강원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며 보았던 인상적인 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이른 아침 산간 밭으로 일을 하러 가는 할머니 머리 위에서도 보았고, 저녁 무렵 김을 매고 돌아오는 할머니 머리 위에서도 보았습니다.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의 머리 위에는 작은 양은 그릇이 얹혀 있곤 했습니다. 

 

머리 위에 얹은 작은 그릇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거렸는데, 용케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줄로 칭칭 붙잡아매기라도 한 듯, 할머니 머리 위에서 가부좌를 틀기라도 한 것처럼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분명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인데도 세상 어떤 운동선수보다 중심을 더 잘 잡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머리 위에 올라탄 그릇 안에는 옥수수 알, 콩알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논둑 밭둑 등 놀리기 아까운 땅에 씨앗을 심기 위해서였습니다. 씨앗 때문이었겠지요, 할머니 머리 위에서 춤을 추는 그릇 안에는 호미가 담겨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얼마나 일을 많이 하신 것인지 호미 날이 닳은 것은 가뜩이나 작은 호미를 더 작아 보이게 했습니다. 날이 줄어든 호미는 마음을 경건하게 했습니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일구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눈부신 아침 햇살이든 저녁의 순한 햇살이든 호미 날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것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성실히 가꾸고 있는지를 살피게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호미는 다른 도구에 비하면 아주 작지만, 하는 일은 참으로 고됩니다. 꼬박 땅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대신하여 반복해서 일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호미는 참 정직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손길 한 번에 큰일을 하려고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작고 성실한 손길로 밭과 곡식을 가꿔갈 뿐입니다.  

 

잡초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보기 좋은 밭은 호미 덕입니다. 끝이 아득한 밭고랑에서 곡식들이 잘 자라는 것도 호미 덕입니다. 돌멩이도 많고 딱딱하기도 한 척박한 밭을 무얼 심어도 잘 자라는 옥토로 일궈낸 것도 할머니 손에 들린 호미였습니다. 

 

우리 속담 중에 호미와 관련된 속담이 있습니다. ‘호미 씻으면 김이 무성하다'는 속담입니다. 이 속담은 호미는 깨끗이 씻어두면 안 되고 언제나 김을 매야 한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김’이란 논밭에 난 농작물에게 해를 주는 잡풀을 의미하고, ‘김매기’란 논밭의 잡풀을 뽑는 일을 말합니다. 호미를 깨끗이 씻어둔 채 보관만 하고 있으면 좋아할 건 김밖에 없습니다. 호미가 닿지 않는 밭에는 잡풀만 무성해지기 마련입니다. 

 

논밭에 잡풀 무성해지듯 마음속에 잡생각이 무성해지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마땅히 사용해야 할 호미를 곱게 모셔둔다면 누구라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마음속 잡풀을 없앨 호미가 내겐 있는지, 있다면 호미 날이 닳도록 사용을 하고 있는지, 마음속에 곱게 간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속 호미를 살필 일입니다.  

 

 교차로 2023.8.23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