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임의진 › [시골편지] 연탄검댕이

임의진 | 2015.10.18 07:52:1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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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에선 빨리빨리를 ‘싸게싸게’라고 부른다. 천천히 하라는 말은 ‘싸목싸목’이라 하고. 싸게싸게와 싸목싸목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니지. 싸게싸게 난로 곁으로 장작개비를 옮기던 중, 새끼발가락이 문턱 사이에 끼여 뼈에 금이 가는 줄 알았다. 기와지붕이 날아갈 만큼 오매! 비명을 질렀지. 다행히 목숨 대신 단풍잎 하나가 눈앞에 떨어지더군. 눈을 드니 온 산에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어라. “오매! 단풍 들겄네….”


집 주변은 재미없고 멀리 단풍놀이를 가야 하는데, 나도 단풍놀이 갈 줄 아는데…. 누가 주말에 해남에서 보자고, 일지암 법인 스님이랑 산보나 하자고. 예전엔 툭하면 만났던 인연들. 지금은 일년에 한 번도 못 보고 산다. 대개의 인간관계가 그렇게 흐르고 있다. “오래된 인연들을 버리지 마라. 새로 사귄 친구는 옛 친구만 못하다. 새 친구도 오래되어야 제 맛이 우러난다.”(구약외경 집회서) 남자들은 무조건 새 여자를 좋아한다는데, 농이 아니라 우리는 시방 너무들 새로운 시대에 취해 오래된 미래를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거 같아.


“칠습 평상 살믄서 낭구 안 꼬실리고(태우고) 살게 된 거이 얼마 안됐재. 낭구(나무) 할라믄 가을이 겁나 바빴재. 시상이 채(훨씬) 좋아져 부렀재. 부삭(부엌)에 광이 딸려 있었는디 아조 망하태(안 좋아).” “불이 날까봐서요?” “큼매 그란단말요. 초가집에 불이 많이도 났재.” “후다닥 끄믄 되재라우.” “요새가치 물 호스가 집집마다 어디 있었간디? 살림을 홀라당 태워묵고도 잘 살었재. 가진 게 없으니께. 흐흐.” 나도 겨울채비로 불쏘시개 나무를 좀 더 해둬야 하는데, 날이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을 떨어야 해. 아니면 연탄이나 태양광으로 바꾸던가. 낮에 뵌 할매는 기름 때시다가 무서워 연탄보일러로 바꾸시고 내게도 적극 추천. 보수적인 교인들이 나를 빨갱이 사탄이라고 그런다던데 그렇다면 연탄이 아니라 사탄보일러가 필요해. 연탄검댕이가 묻었나 검고 순한 눈빛들. 추위가 겁나지 않아. 연탄사람들 곁이라 마음만은 활활 연탄불이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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