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말라기 ›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서 받겠느냐.

궁극이 | 2015.01.02 14:34:4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말1:10-14
설교자
김경형 목사
참고
2000년대 설교

1장 10절-14


기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으니 그 말씀을 저희들은 믿습니다. 먼저 저희들이 죄악에 묶여있거나, 죄악에 포로 되어 있거나, 마음이 세상적으로 나가 있거나, 소원 목적이, 인간 삶의 자기 목적이 세상적으로 되어 있거나,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확하고 바르지 못한 모든 것은 죄적이요 육적이요 세상적이요 마귀적이요 사망적이요 포로적이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줄 압니다.

 

이 시간에 당신의 진리의 말씀으로 저희들의 마음을 샅샅이 다 살피시고 저희들이 죄에서 자유롭게, 세상에서 자유롭게 모든 고통스런 곳에서부터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생명의 말씀으로 저희들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10절: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성전 문을 닫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을 안 믿으면 되고, 하나님 앞에 안 나오면 되고, 진리의 말씀을 안 들으면 되고, 세상을 붙잡고 살면 되는 거고, 죄만 지으면서 살면 되고, 이룰구원 성화구원을 안 이루면 되고, 교회 안 나오면 되고. 이렇게 하면 성전 문을 닫게 되는데, 물론 인간 편에서 보면 자기가 성전 문을 닫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나오기 싫으냐, 그래, 내가 성전 문을 닫아주마’ 하고 성전 문을 닫을 군대를 보내주게 됩니다.

 

군대가 온다고 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나는 거지요? 앞에 말한 것처럼 그렇게 믿으면 전쟁이 안 일어난다고 하는 보장이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성전에 올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고, 교인들은 죽고 포로로 잡혀 가는 것이니까요. 과거의 역사가 그랬으니까 그 말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성전 문을 닫을 사건을 보내줍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교회 못 나오게 일거리를 보내주고, 사건을 보내줍니다. 그것은 사람이 병이 드는 것이라든지, 또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라든지, 누가 이사를 간다는 등등 주일날인데 교회 못 나오게 되는 하나의 요인이 되는 거지요. 그런 일들이 생긴다 그 말입니다.

 

예수 믿기는 믿어야 되겠는데 어떤 때는 주일날 나오는 게 참 귀찮지요. 안 그래요? 집에 손님이나 찾아오고, 먹을 거나 많고, 돈 꽤나 있게 되면 교회 나오는 게 귀찮지 않아요? 그런데 차나 없고 그래 봐요. 그러면 ‘변명 붙을 것이 없나’ 하고 찾고 있던 차에 변명하기 제일 좋은 것은 주일날 손님이 찾아왔을 때에 ‘얼씨구나 좋다’ 한단 말이요. 그런 때 없었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는 주일날 자기 집에 세든 사람이 이사를 간다든지, 자기 집으로 세를 얻으러 온다든지 하면 교회 못 나오게 되는데, 말하자면 교회 못 나오는 그 부담성이 굉장히 커지는 거지요. 그 일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그 말이요. 그럴 때 ‘얼씨구나 좋다’고 그러지요?

 

또 세 번째는 주일날 직장 따라서 멀리 이사를 갈 때 ‘얼씨구나 좋다’고 그런단 말이요. 교회 나오는 게 귀찮을 테니까!

그러다가 자기가 몸에 병이 들면 더 교회 못 가는 자신이 생긴다 그 말이요. 교회 가는 자신이 생기는 게 아니라 몸에 병이 드니 못 가는 자신이 생긴다. 말하기 떳떳하다 그 말이요. 말하기가 좋다 그 말이요.

 

또 어떤 사람은 목사님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해 놓고는 딴 짓하는 사람이 있지요? 돈도 있겠다, 건강도 있겠다, 자가용도 있겠다 하니까 아프다고 그래놓고는 보면 어디로 날랐거든. 주일날 놀러가는 그 사람을 위해서 목사님이 무엇이라고 기도를 하겠느냐? 그 사람을 건져서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하겠느냐, 아니면 때려달라고 기도를 하겠느냐, 아니면 기도를 안 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두들겨 패려고 하고 있는데 목사님이 기도를 안 하는 게 좋을까요, 그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게 좋을까요? 하나님 앞에! 그러니까 목사님이 기도를 하긴 해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기도를 시킨다 그 말이요. 막막하게 한단 말이요. 기도 부탁한 자기는 딴 짓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이런 사람을 볼 수 있지요? ‘교회 가면 맨날 돈 타령만 하더라’. 그런 사람 우리가 종종 만날 수가 있어요. ‘그러면 돈 타령 안 하는 교회로 가자’ 하면 하는 말이 ‘거기는 너무 멀어서 싫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나도 예수를 잘 믿어야 할 텐데’ 라고 해서 ‘잘 믿으렵니까? 그러면 성경을 잘 가르쳐주는 교회로 나 따라 갑시다’ 하면 ‘거기는 건물이 없어서 가기 싫습니다.’

 

어쨌든 ‘교회 못 가는 일이 자주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자기가 병원침대 위에 누워있어도 교회를 안 나가니까 그 마음이 편하지. 안 그럴까요? 교회 나가는 것보다 병원침대 위에 누워 있으면 좋지. 밥 갖다 주지 얼마나 편해.

 

또 이런 사람이 있지요? ‘너희 병원은 크기는 큰데 비싸기만 하고 병도 낫지를 않는다’ 라고 해서 ‘그러면 저기 부산 아무데 병원인데 그렇게 큰 병원은 아니고 조그만 병원인데 거기에 의술이 능통한 사람이 있다더라’ 하면 돈을 꾸어서라도, 집을 팔아서라도, 잠도 안 자고 시간이 늦을 새라 새벽같이 비행기로, 아니면 차로 가든지, 그곳으로 약도를 그려서 물어서라도 찾아간다 그 말이요. 지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어요?

 

마귀 대목장날, 불신세상 명절날 서너 시간이면 갈 것을 열 시간이 넘도록 길에서 지체하고 고생을 하며 고생스럽게 가도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 그 말이요. 주일날이고 뭐고 간에 바닷가나 계곡에 물놀이 가는 것이 그렇게 즐겁다 그 말이요. 그런 날은 마음이 먼저 가서 있어.

 

사고 난다고 그렇게 타일러도 자기는 그런 사고가 안 나는 거지. 딴 사람이 나는 거지. 알고 보면 딴 사람도 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간 사람들이지요. 사고 난 사람들이! ‘나는 사고 안 당한다’. 하나님 앞에 죄행이 되는 생각, 교회 앞에 덕이 되지 못하는 행동.

 

구약시대 말라기 때나, 신약시대 마지막 때나 그 신앙상태가 별로 다른 것이 없어지는 겁니다. 구약의 말라기 때가 그랬단 말이요. 신약시대도 마찬가지.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식으로 믿어간다 그 말이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건 마음이 급하지를 않아요.

 

마음이 급하다고 하는 것은 거기에 전 신경, 전 물질, 전 마음이 먼저 가서 있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온다는 것은 마음이 먼저 가는 것이 아니고 ‘귀찮다, 안 가련다’ 하며 어쨌든 변명거리를 찾게 되니 이런 저런 핑계, 일거리나 사고라든지 생기면 ‘얼씨구나 좋다’ 그렇게 된다 그 말이요. 그런 사람들 많이 있지요?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이방민족이 깨끗한 제물을 드리고, 이방민족 중에서 크게 되리라’ 그랬단 말이요.

 

이걸 시대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스라엘 중 유대민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렸기 때문에 이방민족들에게 주신바 되었고 믿은바 되어서 이방민족이 영적 이스라엘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말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러나 영적 계시적 신앙사상으로 보면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라 했으니 이것은 전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 ‘이방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했으니 아무리 육적 이스라엘 제도에 들지 않는 이방민족이라도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주님의 이름을 높이 받든다는 뜻입니다.

 

또 11절의 이 말씀을 이제는 사건적으로 보면 이방민족들의 군대들이 이스라엘로 정복해 들어와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 불사르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이방민족들 중에 세계적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이제 여기서 바른 회개를 갖고 바른 신앙심을 갖게 돼서 육적 이스라엘 민족이었는데 이제는 영적 이스라엘로 되어 가지고 세계 각국에서 이방민족들 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는 그런 신앙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있다 그 말이요.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왜 당신만 거룩하게, 영광스럽게 높이라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아주 이기주의적인 하나님 같단 말이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귀찮게 여기고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자들이 상당히 많은데 왜 당신만 특별히 높이라고 하느냐? 왜 당신 말만 들으라고 하느냐?

 

사람들을 보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각자 사람마다 높이는 게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높이던 어쨌든 높이는 게 있어요. 높인다는 말은 귀하게 여기는 것, 중하게 여기는 것,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 기쁘게 여기는 것. 이런 게 다 있어요.

 

중고등학생들이나 청년들을 보면 가수나 영화배우들 탤런트들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지요? 그런 것처럼 각 사람마다 높이는 게 있단 말이요. 특별히 여기고, 밥도 안 먹고 따라가고 하는 그런 게 있지요? 다 있기 마련입니다.

 

그걸 귀하게 여기고 특별히 여기니까 그쪽 면으로 시간을 쓰고, 그쪽 면으로 마음을 쓰고, 노력을 기울이고, 정성을 기울이고, 지혜를 짜고.  한꺼번에 그런 사람도 있지만 시간만 쓰는 사람은 그 면만 귀하게 여기는 것,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도 그 면만, 노력하고 투자하는 사람도 그 면만. 각자가 다 있어요.

 

그러나 그 결과는 ‘신령한 인격적이냐, 아니면 세상적인 임시적인 것이냐’에 따라서 영원한 기쁨이 되거나, 또는 영원한 후회로 갈라지게 돼 있다 그 말이요.

 

대부분 보면 세상적이며 물질적이며 임시적인 것에다 제일 첫째로 여기고, 좇아가고,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굉장히 많아요. 우리가 과거적으로도 있어왔고 그랬으니까, 현재적으로도 그걸 또 보고 있고, 안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미래적으로도 확실합니다.

 

결국 그로인해 고민을 하는 사람이 생기고, 후회를 하는 사람이 생기고, 고통을 겪는 사람이 생기고, 고독을 느끼는 사람이 생기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생기고 가슴을 치는 사람이 생기고, 미쳐버리는 사람이 생기고, 자살하고 죽는 사람이 생기게 된다 그 말이요.

 

한꺼번에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분적으로 죽을 때까지 고민을 계속하고 사는 사람이 있고, 고통도 그렇고, 역시 눈물도 죽을 때까지 흘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고 자살을 하고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분명히 어느 하나를 겪게 되는 겁니다. 안 겪는 자가 없어요. 반드시 겪게 돼 있단 말이요.

 

그렇게 살지 말고 물질의 것, 세상목적적인 것은 임시성에 불과한 것이니 이용 활용물로 여기고, 목적물로 삼지 말고, 인간은 둘째로 여기고 하나님을 첫째로 여기고.

 

하나님을 첫째로 여기는 데서 인간을 인간만큼 사랑하게 되고, 인간을 자기 몸만큼 사랑하게 되지 하나님을 첫째로 여기지 못하면 인간 자기가 인간을 위한다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인간을 죽이고 들어가는 부정적으로 건설하게 된다 그 말이요.

 

인간을 살리고 싶으냐? 그러면 하나님을 첫째로 여겨라! 인간을 귀하게 여기고 싶으냐? 하나님을 첫째로 여겨라! 그 비결이 거기 다 들어있다 그 말이요. 물질은 이용물이니 인간의 행복의 목적물로 여기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자기를 죽이는 말로 여기고 원수같이 들리더라 그 말이요.

 

왜 주 하나님만 첫째로 영광스럽게 섬기라고 하느냐? 그것은 천하 못쓸 인간 죄인 나를 성질이나 좋나, 성격이나 좋나, 그렇다고 인격이나 고상한가, 죄인 나를 하나님 당신처럼 존귀 영광자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 하나님 당신을 첫째로 여기고 영광을 돌리라고 하는 거지요.

 

가수와 친하면 노래 배우기 쉽지요? 술꾼과 친하면 술 먹는 거 배우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친하면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 듣게 되고, 지혜가 오게 되고, 진리이치를 깨닫게 되고 사람이 이렇게 인격적으로 영광스럽게 되는 겁니다. 진리이치를 깨닫게 되고, 사람이 이렇게 인격적으로 영광스럽게 되는 겁니다. 이런 사람은 죽음의 선 넘어가서도 존영자입니다.

 

사람들은 이걸 믿지를 않고 사람이 살다가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하는 뚱딴지같은 소리나 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단 말이요. 사람이 죽으면 무슨 귀신이 되요. 그걸 사단 마귀의 장난인줄 모르고 있다 그 말이요. 하나님을 못 믿게 하는, 교회 못 나가게 하는 장난이란 말이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하면 그 귀신 다 우리 집에 보내요. 세상에 무슨 할 짓이 없어서 부모가 죽어서 귀신이 돼서 아들 손자 집에 찾아와서 못된 짓을 해. 그것부터 엉터리지. 이유도 안 되는 소리지. 사람들은 사단 마귀의 그런 소리에 잘 속아 넘어가요.

 

그리고 세상은 자기가 뜻을 세운대로 되지를 않는 곳입니다. 설령 되었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가겠느냐 그 말이요. 결국은 허무와 후회만 남게 되는데도 날마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도 안 믿으니 안 믿어지는 게 참 신기해요. 믿어지는 게 신기한 게 아니라 안 믿어지는 게 신기하다. 부정적으로 신기하다 그 말이요.

 

어째 그럴까? 눈으로 다 보여주고, 제시해 주고, 과거도 경험케 했고, 현재도 경험케 했는데 그게 안 믿어진단 말이요. 그러니 그게 참 신기하다 그 말이요. 어째 그러냐?

 

어쨌든 우리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제일 첫째로 귀중하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존귀와 영광 면이 결정이 됩니다. 또는 후회와 심판이 결정이 됩니다. 그 둘 중에 하나밖에 없다. 그래도 보면 후회할 자는 안 믿거든요.

 

왜 당신을 첫째로 여기고 영광을 돌리라고 하느냐?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은 하나님의 본질을 닮은 최고의 인격자로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고, 둘째는 그래야 만이 신령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가서 느끼고 누릴 수가 있는 겁니다.

 
천국에서만이 아니고 사실 이 세상에서도 그런 것은 어느 정도 맛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인격의 수준이 높으면 기의 수준도 그만큼 높아요. 생각하는 수준도 높고, 지혜의 수준도 높고, 그리고 자기 속에 기쁨을 갖는 그 면에서도 다른 사람이 갖는 기쁨에 비할 것도 못 될 정도로 기쁨이 굉장히 진하고, 기쁨이 나오는 근원이 다르고. 이게 진짜 기쁨이지요.

 

돈 많고 배불러서 행복하다는 기쁨은 진짜 기쁨이요, 가짜 기쁨이요? 그건 가짜 기쁨이요. 어째서? 그게 없어지면 그만 또 눈물 흘리고, 한탄하고, 통곡하고, 원망 불평하거든. 그러니까 그건 가짜 기쁨이다.

진짜 기쁨은 환경의 바람을 타지를 않아요. 진짜 사랑은 환경의 바람 따라서 사랑이 갔다, 안 갔다 그건 아니지요. 세상사랑은 환경의 조건에 따라 사랑이 갔다, 안 갔다 하지요. 그건 가짜 사랑이지요.

 

청춘남녀들 중에 보면 가짜 사랑을 하고 있는데 뻔히 속는 게 다 보이는데 좋단다고 하는 거 보면 사람 속에 든 것이 얼마나 가짜냐?어쨌든 하나님의 본질을 닮은 최고의 인격자로 천국에 들어가서 느끼고 누릴 자로, 이런 계획과 목적으로 우리 인간 자기를 만들었다 그 말이요. 그런데 인간 자기는 이것이 싫다고 하는 겁니다. 잠깐 있는 이 땅인데, 천 년 만 년 살 것도 아닌 자기인데도 말이지요.

 

12절: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상 위의 실과: 열매란 말이요.


식물을 경멸히 여기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13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니까 번폐스럽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진리이치대로 하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고,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질적인 면에서 생각을 해 보십시다. ‘번폐스럽다, 귀찮다, 번거롭고 하기 싫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기 싫다’ 하는 것을 실질적인 면에서 보면 첫째로는 자기 주관대로 믿는 사람이 있어요. 주관대로 믿는 사람 중에는 1. 하나님의 말씀 속에 사건이 있고, 역사가 들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을 볼 수가 있어요. 모르니까! 그리고 자기 주관대로 믿는 사람은 구하는 것도 자기의 세상적 주관적인 것을 구합니다.

 
그리고 또 2. 종교적인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이 또 자기 주관대로 믿는 사람들이고, 3. 세 번째는 기복주의 자들이 자기 주관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게 귀찮다 그겁니다. 내 주관대로 믿는다 그 말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귀찮고, 번거롭고, 싫다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니 장사하는 사람들 중에 많이 볼 수가 있지요. 무슨 말인가 하니 주일날 장사가 더 잘 되니까 교회 나가면 장사가 안 되니 손해가 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장사하는 것이 더 이익이 많다는 겁니다. 교회 나가는 것이 이익이 없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것이 귀찮다 그 말이지요. 짐스럽다 그거지요.

 
세 번째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 하니 다른 사람에게 매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습니다. 귀찮다, 번거롭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기 싫다. 왜냐? 주일날 일하러 나가면 돈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공장이나 회사에 안 나갈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고, 교회는 가야 되겠는데 공장에 안 나가면 목 잘릴 것 같고. 주일날 교회 안 간다고 누가 목 자르나? 그러니 다음에 나가도 뭐 자기 생계문제에 직접적인 타격은 안 오지.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고통스럽다 그 말이요. 그런 경우는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굉장히 부러운 거지요.

 
네 번째는 어떤 사람이 있는가 하니 주일날 면허시험 치러가는 사람들. 주일날 면허시험 쳐서 붙어야, 합격을 해야 자기의 장래가, 미래가 보장이 되는데 주일날 시험을 치자면 믿는 사람으로서 교회는 가야 되겠고 치를까, 말까? 그러니 교회 가는 게, 예수 믿는 게 큰 짐 덩어리더라!

 
다섯 번째는 어떤 사람이 귀찮고, 번거롭고,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게 싫다고 하는 사람인가 하니 공부하는 사람. 학교공부 안 하면 남보다 더 떨어질 것 같고, 떨어지면 세상에서 자기가 거지될 것 같고, 다 산 것 같고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교회 가고 예수 믿는 것이 자기에게는 자기 앞길을 가로막는 것처럼 보여지고 느껴진다 그 말이요. 번거롭다, 번폐스럽다.

 
여섯 번째는 주일날 모처럼 쉬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됩니다. 모처럼 쉬는 날이니 누구도 만나고, 빨래도 해야 되고, 청소도 해야 되고, 극장도 가야 되고, 쉬기도 해야 되겠는데 교회 갖다 오면 시간 다 뺏기니까, 그런 것을 다 못하니까 주일날 교회 가는 게 고통스럽고, 예수 믿는 게 짐스럽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주일날 교회 와서 앉아 있으려니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요. 예수 믿고 교회 가는 게 어떻게 그렇게 고통스럽고, 귀찮고, 번거롭고, 왜 그렇게 걸그작 거리는지?

 
너희들이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이것은 그 때 당시에 희생의 제물들을 그렇게 가져온 것이지만 짐승들만 그렇게 볼 게 아니고 그런 것을 가져오는 마음이 그렇다는 겁니다.

 
세상적이고, 자기만 알고, 성도의 교제도 없고, 인색하고, 짜고, 사랑이 풍부하지 못하고. 이것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하자니 골치 덩어리라 그 말이요.

 
그러니 예배를 올린다고 하는 것이 신성성도 없습니다. ‘신자인지 불신자인지, 내가 예배를 드리고 왔나 안 드리고 왔나?’ 주일날은 무척 피곤하단 말이요. 생기가 도는 게 아니고 더 피곤해. 신성한 맛이 자기에게는 없어. 번폐스럽단 말이요.


14절: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수컷은 힘이 있는 희생제물입니다.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 사기꾼을 말함인데 남에게 다른 사람의 계산의 착오를 일으키게 하여 자기가 송두리째 가져가는 겁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산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거. 사기꾼은 전부다 그래요. 계산착오를 일으켜 놓으면 다 속아 넘어가요.

 
‘수컷이 있거늘’ 그랬거든요. 수컷은 제일 좋은 것, 제일 힘 있는 것. 그러니까 제일 좋은 마음, 제일 기쁜 마음 그런 것은 다 숨겨놓고, 그 마음을 다 내버려두고.

 
그 서원하는 일에: 하나님 앞에 무엇을 서원하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하겠다고 하는 마음이 서원인데 그 마음이 사기하여 드린다 그 말이지요. 즉 ‘내가 얼만큼 내면 몇 배로 나에게로 돌아오리라’ 하는 거 있지요? ‘십일조 얼마 내면 나에게 몇 배로 돌아오리라’ 하는 그거. 이것은 곧 사기꾼이 계산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것처럼 네가 네 사기에 속는 일인데도, 신앙의 아무런 유익이 없는데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내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그 말이요.

 
신앙을 위해서도 아니고, 살아가는데 건설적인 일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위해서는 남의 돈을 빌려서라도 펑펑 쓰면서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은 사기꾼이 하는 짓과 같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저주를 받는다. 신앙양심이 바로된 것이 아니고 구원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기꾼이다 그 말이요.

 
오늘날 교회 안에 사기꾼인줄도 모르고 사기꾼의 신앙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굉장히 많아요. 세상주의로 나가는 자들이 그렇고, 기복주의 자들이 그렇고, 신비주의자들이 그렇고, 하는 짓만 달랐지 뿐이지 복관을 가만 보면 전부는 세상복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건 사기꾼이란 말이요. 신앙 사기꾼!


세상복관을 가진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여러분들은 신앙사기 당합니다. 저주를 받는다 그 말이요.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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