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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거짓과 이단,대선과 소선./(외)

베드로후 궁극이............... 조회 수 2 추천 수 0 2022.05.15 10: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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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벧후2: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용어가 같다고 해서 같은 뜻이냐? 아닐 수도 있다. 어떤 말을 할 때는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그 말을 하는 거다. 그런데 사람이 말을 할 때 자기 마음에서 염두에 둔 그 무언가는 말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말을 할 때는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바로 이 무언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라서 우리는 이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거짓 선지자나 거짓 종이나 거짓 선생은 다 성경을 들고 말을 하지만 그 속의 뜻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질이 다르다.

 

우리가 대선(大善)과 소선(小善)을 찾을 때는 동 종류 안에서 구분을 해야지 동 종류가 아닌 별개의 종류로 따지면 안 된다. 그래서 진리 안에서, 기독교 안에서, 예수 믿는 안에서 보는 대선과 소선이 있고, 기독교 밖에서, 세상에서, 선악과 따먹은 세계에서 말을 하는 대선과 소선이 있는 거다. 이렇게 구분을 해서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선은 소선이고, 하나님의 진리는 대선이라고 하면 안 된다. 왜냐? 선과 악을 말하는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이걸 빨리 구별을 하고 즉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래야 혼돈이 안 된다.

 

영적인 일은 대선이고 세상의 일은 소선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던 세상의 일이던 성화구원을 위해 하는 것은 궁극적인 선이다. 그런데 예를 들면 예배가 시작되어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있는데 뒤늦게 온 사람이 중얼중얼하면서 기도를 해서 다른 사람이 설교 듣는 것을 방해한다면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는 게 대선이고, 아무리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고 해도 기도로 인해 사람들이 설교를 듣는 게 방해가 된다면 기도를 하는 게 소선이 된다. 그리고 비교상 기도하는 것을 소선이라고 하는 거지만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라서 이 면으로 보면 이 소선은 악이 된다. 대선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소선의 자리에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악이 되는 거다.

 

이단이라고 할 때는 성문적 교리적 이단이 있고, 성분적 질적인 면의 이단이 있는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성분적 질적인 면의 이단은 모른 채 성문적 교리적 이단만을 이단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 면을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그러면 기독교 간판을 달지 않고 성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면 이단이냐, 사교냐? 사교다. 그러면 기독교 간판을 달았는데 성경을 가지지 않으면 이단이냐, 사교냐, 옳은 기독교냐? 사교다. 그 다음에 기독교 간판은 안 달았지만 성경을 옳게 바로 가르치고 바로 나간다면 이단이냐, 사교냐, 옳은 기독교냐? 옳은 기독교다. 그러면 기독교 간판을 달고 성경을 들고 가르치는데 세상을 가르친다면 이단이냐, 사교냐, 거짓 기독교냐? 거짓 기독교다. 그 다음에 기독교 간판을 달고 성경구절을 도덕적인 운동에 이용한다면 이단이냐, 사교냐, 거짓이냐, 복음운동이냐? 거짓이다. 우리는 하나님 기준에서 이단을 봐야 한다.

 

다섯 종류를 말을 했는데 사단 마귀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어느 거냐? 기독교 간판은 없더라도 성경을 바로 가르치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 무서워하기 때문에 무엇을 들고 이것을 없애려고 하느냐 하면 기독교 제도적인 껍데기를 들고 무리를 선동해서 없애려고 한다. 그러면 진리의 교회를 없애려는 단체들이 성경도 전혀 모르고 예수도 안 믿는 불신자들이냐, 제도적으로 기독교인들이냐? 제도적인 기독교인들이다. 이것을 거짓된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이런 자들이 진리의 교회를 없애려고 할 때는 어느 교단에 소속이 되었느냐? 어느 노회에 속했느냐? 어느 총회에 속했느냐? 목사는 어느 신학을 나왔느냐? 정부에 등록이 되었느냐?’ 하는 제도적이고 세상의 법적인 것을 들어서 정죄할 거리를 찾는다. 이게 계:에 나오는 거짓 것들의 정신이다. 예수 믿는 자기가 정확한 것을 잡지 않으면 은연중에 진리의 교회를 없이 하는 편에 서게 된다. 이단이나 사교나 거짓자들이 극명하게 잘못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언행만을 보아서는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성문적 교리적인 면만 아니라 성분적 질적인 면으로도 보아야 이단이나 사교나 거짓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기 전에도 미리 그들의 정체를 알고 속지 않게 된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정확한 척도를 가지려고 애를 써야 하고, 질적인 면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런 자들의 수법이 워낙 교묘하기 때문에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진리본질로 예리해야 하고, 잘못된 자들에게 정확한 것을 제시하려니 머리를 써야 하고, 나가는 말이 딱딱할 수밖에 없는 거다. 물고기를 손질할 때 무조건 칼을 들고 대들면 되느냐? 날이 날렵한 칼로 손질을 해야지 무딘 칼로 손질을 하다가는 쓸개가 터져서 고기가 쓴맛이 난다. 우리가 일반 이치적으로 이런 걸 보고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볼 때 박사증을 가진 목사가 장자리를 여러 개 달고 세상운동을 한다면 어떻게 보여지느냐? 교회 지도자가 성경을 들고 천국 절반, 세상 절반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느껴지느냐? 목사가 아닌 평신도가 성경을 바로 가르친다면 어떻게 느껴지느냐? 물론 목사가 성경을 바로 가르친다면 좋은 거고 당연한 거다. 누가 가르치던 성경을 바르게 가르친다면 이 사람은 누구의 종이냐? 하나님의 종이다. 그런데 아무리 박사증을 가진 목사라고 해도 성경을 잘못 가르치면 누구의 종이냐? 마귀의 종이다. ‘활동을 많이 한다. 안 한다가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바탕이 문제다.

 

우리는 성문적인 면의 이단만 알고 있으면 안 된다. 왜냐? 자기가 성문적 교리적인 면에서는 이단이 아닐지라도 성분적 질적인 면에서 이단노릇을 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볼 줄 안다면 이 사람은 바른 신앙으로 갈 수 있다. 주님이 우리를 심판할 때 성문적 교리적인 면에 이단이기 때문에 심판을 하느냐, 질적 성분적인 면에 이단성이기 때문에, 즉 질적으로 주님의 성품으로 닮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하느냐?

 

과거로 보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느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이었느냐? 하나님을 믿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선민이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자들이요, 지금으로 말을 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인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았다. 그러니 이단인지 아닌지 하는 것을 기독교 안에서 찾아야 하느냐, 세상에서 찾아야 하느냐? 기독교 안에서 찾는 거다. 그것도 질적인 면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명확히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로 나가게는 게 아니면 전부가 이단성적인 성분으로 봐야 한다.

 

진리본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을 입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닮는 일을 안 하면 무슨 일을 하겠느냐?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먹고 사는 것은 사회에서 하는 일이고, 교회에서는 설교를 듣고 깨우침을 받아야 하는데 교인들이 교회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그러니 우리가 신앙의 방향을 심사하고, 성분을 심사하고, 질을 심사할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하고 진리를 가까이 할수록 주님을 닮아가고,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주님의 성품이 옮아져 온다. 이게 분명한 사실이요 이치다. 성격적으로도, 성질적으로도, 성분적으로도, 분량적으로도 주님의 것으로 만들어지는 만큼 주님의 척도의 사람이 되고 기준의 사람이 된다. 이건 당연한 거지 이상한 게 아니다.

 

학생이 수학공부를 하면 자기 속에 수학이 자꾸 들어가고, 음악공부를 하면 자기 속에 음악의 실력이 자꾸 쌓이고, 영어선생을 좋아하면 자기 속에 영어실력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 교회에서 왜 이런 이치를 무시하고 열심을 강조하고, 충성봉사를 강조하고, 세상에 욕심을 품게 하느냐? 예수 믿으면서 예수 닮는 이치를 무시하니 예수 믿는 사람이 무슨 짓을 하겠느냐?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했듯이 예수 믿으면서 예수 닮는 일을 안 한다면 이로 인해 정죄를 받고 심판을 받기 이전에 네 스스로가 이단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거다. 이건 못 속인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닮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사람에게 믿음이 좋다고 하겠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인격과 성품을 닮은 성도를 찾으신다. 세상이 다 알아준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안 알아준다면 이 사람은 헛믿은 거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을 성분 면으로 보면 이건 없이 세상이 알아주길 바라며 면으로 나가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닮는다는 것은 주님의 인격과 속성을 가진다는 것인데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주님의 속성에는 지혜지식에 속하는 지혜와 지식이 있고, 도덕성에 속하는 선 사랑 거룩 진실이 있고, 능력성에 속하는 의와 주권이 있다. 이것은 이론적 논리적 학적으로 구분을 하는 거고 실질적으로는 이 모든 속성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고, 역사를 하고, 활동을 한다. 그래서 진실 속에는 거룩도 들어있고, 사랑도 들어있고 선도 들어있다. 물론 거룩 속에도 다른 속성들이 들어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주님의 속성이 아닌 가짜도 있기 때문에 가짜 사랑도 있고, 거룩하고 진실된 사랑도 있다, 선도 마찬가지고, 거룩도 마찬가지고, 진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구별하고 또 구별하고, 쪼개고 또 쪼개야 한다. 아브라함이 작은 새를 안 쪼개서 네 자손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한다는 선언을 받았다. 세상사람들은 작은 것은 안 쪼깨겠지만 우리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쪼개야 한다. 과학계에서 아주 작은 원자를 발견했는데 이것을 또 쪼개고 들어가서 원자보다 더 작은 핵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 이런 것을 우리에게 왜 보여주는 거냐? ‘기독자들아, 쪼개라. 분석해라. 구별해라. 분별해라하는 거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구별 분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교훈이나 모든 면에서 분석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남을 정죄하는 자리에만 있으면 안 된다. 구별함과 동시에 정복도 들어가야 한다. 정복을 하려면 활동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몸을 움직일 때 몸만 움직이느냐? 몸은 이 사람의 마음을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해서 움직일 때는 이 사람의 속에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발동이 되어서 몸을 움직이는 거다. 어떤 사람을 미워할 때도 자기 속에서 그 사람을 미워하는 미움이 발동이 되어서 미워하는 거다. 이처럼 활동에는 무엇 때문에, 무슨 생각으로 움직인다하는 게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이걸 분석 구별 분별해야 한다.

 

예수님은 매력이 있는 분인데, 예수님의 매력은 어떤 거냐? 이방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가견적인 것에서 매력을 찾는다. 그러나 이런 건 다 썩어질 거다. 믿는 사람은 썩어질 것으로부터 오는 매력을 찾으면 안 된다. :에 보면 예수님이 매력이 있다고 하늘에서 천군 천사들이 예수님을 찬양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 주님을 닮아가면 영원히 매력 있는 사람이 된다. 이 매력을 우리가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주님의 속성 중에 능력성이 있는데, 주님의 능력성은 수동적 능력이 아니라 자체적 능력이다. 인간은 자체적인 능력은 없고 수동적인 능력이다. 주님으로부터 받아 가져야 한다. ‘능력성이란 어떤 일을 수행하고 처리할 수 있는 재간을 말한다. 인간은 다 잘 할 수 없으나 주님은 무엇이든 다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만능의 능력자다.

 

회사에서 남이 못하는 것을 잘 하면 이 사람은 그 면에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능력이 있으면 돈도 많이 번다. 특별대우가 있다. 이건 당연한 거다. 이걸 무시하면 안 된다. 신앙도 우리가 주님처럼 닮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특별대우를 하신다. 특별대우를 존귀 영광의 자리에 올려서 호화찬란한 대우를 받게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다른 사람은 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이길 수 없는 혹독한 사건을 주는 것도 특별대우다. 남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만사람 앞에서 이기고 나오면 이 사람에게 큰 존귀와 영광이 주어진다. 그래서 특별대우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들어갔는데, 일반적으로 보면 이게 특별대우로 보이느냐? 죽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다니엘의 세 친구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을 했느냐?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 믿으면 하나님께서 살리신다하는 믿음으로 풀무불 속에 들어간 거냐? 그렇지 않다. 이들은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오로지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는 변질 되지 않는 믿음을 붙잡고 그 사건을 통과한 거다.

 

이들이 사건적으로 불과 같은 혹독한 현실에 부딪혔을 때 놀라서 왕에게 굴복을 했느냐? 안 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안 살려줘도 왕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죽으면 죽으리다하고 불 속에 들어간 거다. 이들이 불 속에 던져지자 풀무불 안에 주님이 나타나서 이들과 함께 거닐었는데, 이 때 이들의 입에서 힘찬 찬송이 나왔을 거다. 그리고 불 밖에 있는 사람들과 왕에게 뭐라고 했을까? ‘불가마가 참 좋다. 너희는 여기에 못 들어오지?’ 하며 놀렸을 거다. 이들이 불에서 나왔어도 불에 그을린 곳도 없었다. 이게 믿어지느냐?

 

이들이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속에서 살아나온 것도 굉장한 거지만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특별대우를 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봐라. 얼마나 멋있느냐? 이들은 이렇게 될 정도로의 하나님 아버지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이게 능력이다. 불 속에서 안 타지고 살아나온 능력이 돋보이느냐, 안 타질 사람으로 주님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는 신앙 자체가 돋보이느냐?

 

점쟁이가 작두 위를 걸어도 발이 베이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 그러면 이게 성령님의 능력이냐? 귀신의 역사다. 작두 위로 걷는 게 신앙과 상관이 있느냐? 작두 위를 걷는 게 예수로 닮아지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작두 위를 걷는 능력이 천국에 가도 있느냐? 차력사가 시장판에서 머리로 큰 돌을 깨는 것도 능력이다. 남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게 능력이다. 그러면 이 사람이 천국에 가서도 머리로 돌을 깨고 있느냐? 다른 사람은 다 금은보석 집에서 사는데 이 사람은 돌집에서 사느냐?

 

세상에는 일인자들이 많다. 남보다 높이 뛰는 것도 능력이고, 멀리 뛰는 것도 능력이다. 남보다 잘하는 것은 능력이다. 그러나 이런 능력은 천국에서는 필요가 없다. 사람에게 안수를 해서 병을 고치는 것도 능력이고, 입으로 휙 휙소리를 내서 사람의 혼을 빼는 것도 능력이다. 남의 주머니 속의 돈을 잘 짜내는 것도 능력이다. 공갈 협박을 해서 돈을 뜯어내는 것도 능력이다. 남이 못하는 짓을 잘하니까 능력이다. 불신세상에는 다양한 능력자들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능력자라고 해도 천국에서는 이런 능력을 써먹을 일이 없다. 그러니 믿는 우리는 천국에서 못 써먹는 능력을 돋보아서는 안 된다.

 

성령을 받았네하며 휙휙해서 사람을 이리 저리 넘어뜨리고, 병을 고쳐도 이런 능력은 천국에서 써먹지 못한다. 왜 못 써먹느냐? 천국에는 병자가 없기 때문이다. 천국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예수 믿고 말씀으로 만들어진 실력을 써먹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천국에서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입혀주려고 애를 쓰신다. 그런데 믿는 자기가 안 입으려고 하면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만들어지면 언제 써먹어도 써먹는다. 써먹으면 써먹는 대로 자기 것이 되고, 쓰면 쓰느니만큼 숙달이 된다.

 

우리가 육신이 살아서 밥을 먹고 소화가 되고 하는 것은 그만큼 정력이 소모되는 거고, 정력이 소모가 되느니 만큼 이게 자기의 육신의 힘이 된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이 자기 지식화 실력화 되면 이것이 지기의 영능이 된다. 이 능력은 천국을 다스리고 누릴 수 있는 영원한 능력이다. 능력 속에는 가치판단 평가가 들어있고, ‘어떤 성질의 능력이냐?’ 하는 게 들어있으니 우리는 이것을 세밀하게 분석을 하고 최고의 좋은 능력, 변치 않는 능력, 영원히 내 것이 될 능력을 가저야 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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