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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밭이 문제냐, 씨가 문제냐?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30 추천 수 0 2022.05.23 09: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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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3:3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산천초목이나 어류나 공중에 나는 새가 죽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이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냐? 죄를 묻는 것은 인격과 자유를 가진 인간에게 해당이 되는 거지 동물이나 새가 죽는 게 그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원칙을 놓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는 원칙을 말하는 거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신 후에 인간에게 모든 만물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했으니 이 말에는 산천초목의 모든 생물이 죽는 것은 생물 탓이 아닌 인간 탓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이 원칙을 거스르면 안 된다.

 

발람이 탄 나귀가 말을 했는데, 나귀가 발람보다 믿음이 좋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서 사람의 말을 한 거냐? 사도바울이 쓰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 위에 올리면 병이 나았고 악귀도 떠났는데, 이것은 손수건이나 앞치마에 하나님의 능력이 붙어있기 때문이냐, 아니면 누구의 손수건이 아닌 사도바울의 손수건이라야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기 때문이냐?

 

하나님께서는 손수건이 없어도 얼마든지 병자를 낫게 할 수 있는 분인데 왜 사도바울의 손수건을 얹으면 병이 낫게 하셨을까? 손수건을 본받으라는 거냐, 사도바울을 본받으라는 거냐? 즉 그 손수건을 가져다가 사용하라는 거냐, 손수건 주인의 신앙정신이 있으니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으라는 거냐? 후자다. 손수건의 주인인 사도바울의 신앙정신을 가지라는 거다.

 

사도바울의 손수건을 병자에게 얹으면 병이 나았다는 것은 사도바울이 평소에 무슨 일을 했다는 거냐?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니 우리도 이 정신을 가지라는 거다. 이 정신을 가지면 영적인 면에 온전이 아닌 정신이 낫는다는 거다. 이걸 잡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해당이 되는 영원한 것을 찾아야지 먹고 마시고 금방 없어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성경을 깨달으려고 하면 우리로 온전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없어진다. 이러면 성경을 사건적으로만 보게 되고, 존재적으로만 보게 되고, 사람도 안 바뀌고, 속의 정신도 안 고쳐진다.

 

수십 년 예수를 믿어도 온전치 않은 것을 고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그 면에 병이 들었다는 것을 모르는 거다. 예를 들어서 어두움과 광명중에 어느 게 좋은지 판단을 못 하면 이 사람은 지식 면에 병이 든 거다. 우리는 가치판단 평가가 명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절대적인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구별 분별력이 있고, 사는 면도 목표가 확실하다. 안 그러면 흐릿해서 무 재미로 살게 된다.

 

하나님께서 모세든 사도바울이든 누구든 잡고 쓰시면 이 사람은 그 면이 숙달되고 자꾸 올라간다. 그런데 올라가는 데는 절차와 순서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잡고 쓰시려면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라서야 한다. 모세가 주먹으로 애굽인을 때려눕힌 것은 육성이다. 옛사람 부패성에서 나온 거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이렇게 해서 해방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이 일이 들통나게 해서 모세로 미디안으로 도망가게 했고, 이곳에서 장가를 들고 살면서 애굽에서 가지고 있던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앉게 하신 거다. 사람의 마음속에 부글거리는 게 있으면 악한 마음이 올라오게 된다.

 

믿는 사람은 자기를 해하려 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을 원수 삼으려 하지 말고 자기를 생각해야 한다. 이게 하나님의 백성이다. 모세는 애굽에 있을 때는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노릇 하는 것에 대해 애굽에 원망을 돌렸다. 그래서 혈기로 애굽인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미디안에 살면서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노예생활을 하는 동족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신앙이 올라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성장이 되니 자기 백성을 인도할 수 있게 된 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함을 받으며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고쳐지면서 자꾸 커지는 거다.

 

일반적으로도 못된 사람에게 마음을 고치라고 충고를 하는데, 세상은 사람이 옳게 사는 게 무엇인지 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자기를 고치려고 해도 못 고친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육 결합체로 지음을 받았으니 영을 주격으로 하고 하나님 기준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영생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들어가서 머리에 박히면 자기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뀌게 되고, 이 지식을 자기의 주격적 지식으로 삼고 하나님의 가치판단 평가성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성품을 덧입게 된다. 이게 없이 예수 믿어서 복 받아라. 성령을 받아라라고 하면 수십 년 예수를 믿어도, 어떤 직분을 가지고 충성봉사를 해도 안 고쳐진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은 없이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세상의 노예로 들어가는 거다. 죄 아래로 들어간 거다. 이것은 창조의 목적관으로 보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 밑에 들어가서 노예생활을 하는 거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세상의 일꾼이다.

 

성경은 깨닫는 거다. 깨달으면 깨달음의 사람이 되고, 사는 차원이 고상해지고, 어디를 가던 리더가 되고 머리가 된다. 머리는 앞서서 나가는 거다. ‘나 잘났소가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하나님을 우선으로 하고 자타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에 놓고 움직이기 때문에 언행심사를 통해 이게 드러나니 어느 곳에서건 모범이 되고 물망에 오르게 된다. 이런 사람을 깎아내린다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치울 수 있다. 이게 성경이다.

 

구약 때 사울의 아버지가 암나귀들을 잃어버려서 사울에게 찾아오라고 했는데, 사울이 나가서 찾지 못하다가 사무엘을 만나 사무엘의 말에 순종을 하니 잃었던 암나귀들을 찾고 사무엘로부터 하나님께서 사울을 기업의 지도자를 삼으실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이것을 보면서 나귀는 뭐고, 염소는 뭐고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니 하나님께서 미래를 열어주시는구나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의 말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없는 말은 사람에게 역사가 안 된다. 열매도 맺히지 않는다. 또한 생명의 말씀을 주는데도 안 받는 사람도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라고 했는데, 이렇게 된 게 씨를 뿌린 사람이 문제냐, 씨가 문제냐, 밭이 문제냐?

 

밭은 성도를 말하는 거고, 좋은 밭에서는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었는데, 자기에게 씨가 떨어졌으면 밭의 주인인 자기가 자기의 밭을 잘 가꾸어야 많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니 밭인 자기가 문제다. 그래서 밭인 자기는 먼저 참 씨를 받았는지 분별해야 하고, 또한 자기가 좋은 밭인지를 심사하고, 또한 자기에게서 좋은 열매가 맺지 않았으면 왜 좋은 열매가 안 열리는지 자기를 심사해야 한다.

 

사람이 일반적인 면에서 선하고 좋으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성경말씀대로 보면 아무리 좋은 밭이라고 해도 이 안에 가시도 들어있고, 돌도 들어있고, 사람들이 밟아서 딱딱해진 흙도 들어있기 때문에 다 갈아엎어야 한다. 우리는 누가 어떤 사람이 좋다. 나쁘다라고 할 때 먼저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인지 알아야 한다. 성경은 영적인 면이다. 모든 말씀은 우리의 영인성장에 두고 하는 말씀이고, 예수님의 사역도, 인간창조의 목적도 이것에 두었다.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에 두고 훈련과 연단을 받으면서 영능의 실력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거다. 믿는 우리를 당장에 천국에 데리고 가지 않고 이 땅에 살게 하는 것은 먹고 마시고 일을 하며 인인 간에 연관관계를 가지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라는 거다. 이렇게 사는 게 이룰구원의 삶이요, 자기의 존재목적 출생목적에 맞게 사는 거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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