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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5:17-2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517-22: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17-19: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물질세상이 시작된 이유, 즉 천지창조의 이유, 그리고 물질세상이 끝나는 이유가 있는 건데, 물질세상이 시작이 되어서 끝날 때까지의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거다. 우리를 이 세상 가운데 살게 하는 것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우리의 구원을 위한 목적 때문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만드신 이유와 세상을 끝내시는 이유는 인간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건물을 지으려면 설계가 있어야 하고, 집을 지을 터가 있어야 설계대로 집을 지을 수 있듯이 인간구원을 위해서는 세상이 필요했고, 인간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대로 살면서 구원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모든 인간의 구원의 일이 끝나면 이제는 세상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세상을 없애버린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는 것은 아들은 아버지가 하신 일을 보고 그 일을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아들, 아버지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알아들으라고 인간들의 용어를 사용한 건데, 예수님을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것을, 즉 천국의 것을 유업으로 받아서 다스리고 누린다는 의미에서의 말로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믿는 우리의 대표자이시니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안에 들어가는 것이니 우리에게도 천국을 통째로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우리로 알게 하려고 아들이라고 하는 거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면 아버지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아야 하고, 아버지처럼 만능의 능력자가 되어야 하고, 영능의 실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존재적으로 하나님이 될 수는 없으나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은 입을 수 있다는 의미이니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 인격과 성품이 하나님의 본질로 닮아가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하는데, 이 일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닌 바로 본인의 일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다 이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을 사는 일은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는데 아버지의 일, 아들의 일, 곧 나의 일인 하나님의 닮는 일을 자기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것을 알고 모르는 것에 따라 믿음이 있고 없고가 되는 거다.

 

이런 일은 하지 않으면서 눈으로 보이는 유형교회에서 충성봉사를 열심히 하고 세상을 위해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것은 예수를 바르게 믿는 게 아니요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이 아니라 마귀가 유혹하고 미혹하는 대로 따라가는 거다. 사단 마귀의 유혹을 따라가면 사람이 마음부터 정함이 없고 세상이 잡아 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죽는 길로 가게 된다.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은 인간의 구원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이 일을 본 거다. 우리도 아들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이 일을 본 자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일을 못 본 자는 이 일을 못 한다. 목사라고 해서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표적을 행하시는 속에는 무슨 일을 하시는 건지 이 속성을 본 자라야 아버지의 일을 하게 된다.

 

세상사람들이 다 아버지의 일을 봤다면 아들이 이 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인간들 중에 이 일을 본 자가 희귀하기 때문에 아들이 이 일을 하는 거고, 그러니 아들을 통해 아버지의 일을 본 자 역시 이 일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도 학교에서 어느 과목을 전공했으면 사회에서 그 일을 해야 옳지 그 일을 안 할 바에야 왜 전공을 하느냐?

 

우리교회의 가르침은 부족하지만 희귀하다. 그래서 내 욕심 같으면 우리교인들은 아버지가 하신 일, 주님이 하신 일, 즉 구원이치를 잘 깨달아서 세계 어디를 가든 구원의 일을 하면 좋겠다. 이 일을 한다고 해서 굶어죽는 게 아니다. 세상의 직업을 보면 발가락의 무좀을 고치는 의사보다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대는 의사가 받는 돈이 더 비싸다. 하물며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굶기시겠느냐?

 

우리교인들은 이 교훈을 듣고 깨달으면서 일반교회에서 예수 믿는 것처럼 믿지 말아라. 우리교회에서는 그렇게 믿다가는 얼마 안 가서 스스로 떨어져 버린다. 다른 사람들은 앞서서 뛰고 있는데 자기만 어떤 환경에 잡혀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결국은 스스로 떨어져 버린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다. 마귀도 하나님의 명령 하에 움직인다. 그런데도 마귀는 세상이 자기 것도 아니면서 자기 것인 양 세상 것을 가지고 성도들을 유혹을 한다. 어리석은 자는 거기에 꾀임을 받아서 자기의 삶의 목적을 세상에 두고 산다. 우리는 삶의 방편 상 일을 하고, 농사를 짓고, 회사에 다니고 할지라도 삶의 목적을 세상에 두면 안 된다. 목적을 세상에 두게 되면 얼마 안 가서 세상적인 방편을 쓰게 되고, 세상의 여러 가지 방편을 쓰다보면 사기꾼에게 떼이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잃어버리기도 하다가 스스로 멸망이 된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본 자는 그 일을 소원적으로 자원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거짓 종들과 이단자들은 이 일을 못하는 거고, 안 되는 거고, 할 수 없는 거다. 왜냐? 하나님 일, 아들의 일은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라야, 하나님의 신으로라야 되는 건데 성령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는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버지 안에서 하는 아들의 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표적과, 이적과, 또는 말씀이 아버지 안에서 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일을 모르기 때문에 못하는 거다. 보지 못하고 말을 하게 되면 세상 것을 소원하여 이뤄진 것을 자랑하게 되어 있다. 이건 마귀에게 넘어간 거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38병자를 포함해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신 후에 디베랴 바다를 건너오시니 갈릴리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언제 바다를 건너왔는지 도착한 예수님을 따랐고, 또한 이곳에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자 유월절을 위해 이곳에 왔다가 이것을 본 많은 사람들까지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게 할 일도 없는 모양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너희들이 나를 찾는 것은 표적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본 게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깨닭이라고 했다. 이 말은 안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세상의 소원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배가 부르다는 것은 만족하다는 것이니 이들은 예수를 자기의 세상 소원 목적을 채워주는 분으로 알고 따른다는 거다. 오늘날 이런 교회가 얼마나 많으냐? 기도할 적마다 세상 것을 달라고 하지 않느냐? 이런 자들은 이 무리들과 똑같은 거다. 우리는 예수를 바로 믿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자로 살아라. 안 그러면 자기만 손해다.

 

아들로 통해 아버지의 일을 본 자가 아버지의 일을 버리고 세상성으로 흘러 들어간다면 형벌이다. 왜 형벌이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관에서 이탈이 된 채로 사는 것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것을 포기한 것이니 이런 자는 짐승취급이다. 형벌이요 멸망이다. 우리가 할 일은 자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죽지 않을 사람으로 살리는 일이요, 누가 이 일을 하는 것을 발견했으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서 같이 해야지 방관하거나 뒤로 빼고 있다면 저주의 대상이다. 우리교회의 교훈은 살리는 일이니 이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지 뒤로 빠지거나 방관은 안 된다.

 

자기가 이때까지 교회에 다녔어도 이렇게 살지 못했다면 목사의 입장에서는 목사 자기가 깨닫지 못하게 한 것으로 알고 회개를 해야 한다. 목사는 한 마디 설교를 해도 100% 본질의 과녁에 맞는 적중성의 교훈이어야 한다. 진리본질의 교훈을 인격적으로 적중성으로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는 거다. 말세에 거짓 종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진리본질의 교훈이 아닌 세상정신을 심어주는 자들이 많다는 거다. 아버지의 일을 보지 않고는 절대로 아버지의 일을 못한다.

 

하나님의 본질에 세상 것을 붙이면 하나님의 신의 감화 감동도 안 되고, 마귀가 좋아한다. :에서 마귀가 예수님께 그랬듯이 마귀는 세상을 가르치면서 얼마든지 성경구절을 붙일 수 있다. 목사가 성경구절을 붙여서 세상을 자랑하고 구하게 하면 이건 마귀의 소리다. 여기에는 성령님께서 역사를 안 한다.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아들에게 보이시고.’ 아들이 아버지의 의사단일에 맞춰지니 아들에게 아버지의 일을 보여주시는 거다. 따라서 우리도 그 아들의 의사단일에 맞으면 아버지의 일이 보이고 아버지의 일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마지막 시대에 아버지의 일을 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아버지는 아들로 통해 아버지의 일을 나타내시는데, 아들이 병든 자를 온전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죽어가는 것도 살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체를 보여주셨다. 이 부활체는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신으로 된 신령적인 성격과 성질과 성분으로 되었다. 이게 신의 인격이요, 몸은 죽어도 이건 죽지 않는다. 예수 믿는 속에는 이런 게 들어 있으니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자기 속에 안 죽는 것, 영생할 수 있는 것, 썩지 않는 성분을 키워야 한다. 영과 육의 결합체로 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영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은 그냥 먹고 마시는 것이니 그 일생은 전부가 죽는 거요 썩는 거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가 살리는 것과 아들이 살리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괄적으로 통일이 되어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살리심은 기본구원이 첫째로 깔려 있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도다.’ 그런데 왜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실까? 이 말은 아버지가 원하는 것과 아들이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 아들을 통해 아들이 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살기를 원한다. 어떤 식으로 건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살기를 원하느냐?’가 문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어떤 식으로 살기를 원하시느냐? 세상사람들은 세상에서 부귀 영광으로 살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도 인간이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느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도 세상의 소원 목적으로 사는 자들을 살려주시기를 원하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살려주기를 원하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자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자로 되기를 원하는 자요, 세 번째는 사단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기를 원하는 자요, 네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자요, 다섯 번째는 하나님과의 의사단일을 찾는 자요, 여섯 번째는 영인성장 면에서 자기 속의 이질성을 하나님의 본질의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자를 살려주기를 원하신다.

 

이질성이란 하나님의 본질과 다른 건데, 자기가 믿음 믿음하는 것도, 충성봉사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본질과 단일이 아니면 이는 곧 이질적인 믿음이 되니 이건 신념적 신앙이다. 우리의 신앙은 신념적 신앙이 아닌 신의적 신앙이다. 신의적 신앙은 먼저 그 분의 뜻을 알고, 그 다음에 그 뜻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거다. 하나님의 뜻을 모른 채 신앙을 하게 되면 자기 주관으로 하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신념적 신앙이 아주 강해진다. 이건 불순종이요 교만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믿음이 참 많다. 이런 자는 언제고 세상바람에 불려간다.

 

앞에서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살려주시고자 하는 자들을 말을 했는데, 믿는 사람이 만일 세상에 속한 소원성에 빠져서 세상 것을 구하고 있고 이런 목적으로 살고 있다면 주님은 이런 자를 살려주기를 원치 않으니까 아들의 일을 하는 우리도 역시 이런 자를 살려주면 안 된다. 이런 자를 도와주다가는 그 사람도 망하고 나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심판을 아들에게 맡겼기 때문에 아버지는 심판을 안 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구약 때는 예수님께서 도성인신을 안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을 했나? 구약의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이 아닌가?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는 것은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심판의 기준이 그리스도라는 거다. 그래서 구약 때는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하셨다. 그래야 똑같은 심판이 되는 거다.

 

구약 때나 신약 때나 모든 산 자, 그리고 모든 죽은 자, 또는 모든 미 신자(택자지만 아직 구원의 때가 되지 않아서 믿지 않고 있는 자), 그리고 이방인들의 심판의 기준은 주님이시다. 주님을 재판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절대적인 공의의 기준에 의해 정확하게 심판을 하신다는 의미다.

 

세상은 죄를 지었어도 법이 없으면 형벌을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는 구약 때나 신약 때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이나 이후나 그 기준은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기준이 변해지면 하나님도 변해지는 거고, 하나님이 변해진다면 하나님은 시간에 속한다는 말이 되니 시간 속에 있는 것은 모든 게 늙고 썩고 없어지기 때문에 하나님도 늙고 변한다. 하나님의 뜻은, 소원 목적은 구약 때의 성도에게나, 신약 때의 성도에게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나, 우리에게나 변치 않는다고 하는 것은 당신이 변치 않는다는 거다.

 

죽지 않는 영생적 생명적으로 산 것을 누가 많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아들의 것을 기준 삼아서 나눈다. 아들의 것이 아니라면 산 것과 죽은 것을 구별 분별할 수가 없다. 아들의 것이라야 구별 분별이 되는 거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 죽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주님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되는 거다. 주님이 기준이다. 주님의 속성으로 되지 않은 것은 심판이다.

 

심판이라고 할 때, 첫째는 존재적 심판이 있는데, 이 심판은 신불신의 심판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거고, 성도들에게는 개체적인 심판이 있는데, 이는 이룰구원 성화구원에 관한 심판인데 믿는 사람 각자가 하나님의 성품으로 얼마나 만들어졌느냐?’에 따른 상급의 심판이다. 그러니 우리는 죽을 자, 심판 받을 자로 믿으면 안 되고 살 자로 믿고 가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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