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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7 추천 수 0 2023.05.28 09: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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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8:1-6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81-6: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1-3: 항상 기도하며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심은 모두 자기가 죽기 전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더디지만 꼭 구원을 이루라는 주님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이다. 죽기 전에 꼭 이루라.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된 사람도 있는데, 예수 믿으면서 말씀 깨달음에서 , 이건 내가 죽기 전에 고쳐야 되겠다하는 게 있느냐? 예수 믿은 후에 고쳐놓은 게 있느냐, 아니면 아직까지 못 고쳤느냐? 예수 믿은 후에도 여전히 예수 믿기 전과 같은 세상과 똑같은 수준으로 믿어가고 있느냐?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한 것은 예수 당신의 수준으로 올려주고자 하심이다. 예수님은 도성인신으로 오셔서 하나님과 잘 통한다. 예수님은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실 때는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이 인간되어 오심은 큰 기적이요 표적이요 이적이고 기사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고 조그만 것 하나 고치면 그게 그렇게 좋다고 날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말씀의 이치로 자기를 주님처럼 만들어지라는 것인데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은 부자 되는 것보다 훨씬 낫고, 병 고침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다. 딴 걸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예수님을 속성적으로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닮았다는 것은 지상 최고의 사람이다. 이게 기독교다. 또 변화 부활을 입어서 신령천국에 올라가서 그 천국에서도 최고란다면 무엇이 부럽겠느냐? 무엇이 아쉽겠느냐? 이러면 모든 만물은 다 따라가는 것이다. 모든 만물이 자기의 사용권 아래 들어있다.

 

자기가 죽기 전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꼭 이루라는 주님의 간곡한 부탁은 인간입장에서 뭘 목표로 세워놓고 이걸 이뤄야겠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차원을 내가 이뤄야겠다이렇게 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이상의 최고의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거고, 그래서 성경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과, 지칠 줄 모르는 과부의 간청. 본문의 내용에 대해 과부가 그 면에 대해 악착같이 안 한다면 과부가 된 보람이 없다. 자기가 남자냐? 남자의 보람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자기가 여자로 지음을 받았느냐? 성경에서 여자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과, 지칠 줄 모르는 악착같은 과부가 싸움이 붙었다. 누가 이기느냐?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본문의 과부의 끈질긴 근성만 뽑아다가 자기가 세상의 것을 소원 목적하고 그것을 줄 때까지,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긴 기도를 하라고 강조를 한다. 이건 정말 못쓴다. 이건 정말 패역적이고 강퍅한 것이다.

 

그러면서 의례히 히스기야의 기도를 예를 잘 든다. ‘히스기야가 기도의 응답을 받았으니 히스기야처럼 기도하라.’ 이건 뭔가가 사람의 골을 빼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 사람의 골을 빼는 것이다. 신앙의 골을 빼는 거다. 사단 마귀의 짓이다. 거짓 종들로 통해서 그렇게 들어간다.

 

예수를 믿어갈수록 편해지고 쉬워지고 기뻐지고 행복해지는 건데 예수를 믿어갈수록 고집만 자꾸 세진다. 이건 잘못됐다. 고집도 옳음의 고집이어야지. 옳음의 고집은 진리본질을 따라 생명을 내대고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 심통에 때국물이 흐른다.

 

사람은 마음에 있는 대로 얼굴에 나타나게 된다. 예언 방언하는 사람들, 밤낮을 모르고 날을 새는 사람들을 보면 얼굴이 제 색깔이 아니다. 눈동자가 바로 박힌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온 몸에 진통이 온다. 사람이 늙어서 그렇다면 이건 자연스런 것인데 자기가 몸을 그렇게 만든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신28:에도 있듯이 규례대로 살아봐라. 정신 튼튼, 몸 튼튼, 마음 튼튼, 축복의 사람으로 된다. 그런데 규례를 어기고 자기 성격 성질대로 밥도 먹고, 자기 성격 성질대로 자고 일어나고, 자기 성격 성질대로 사니 몸은 하나님의 법칙에서 건강체를 이루게 돼 있는데 자기가 자기를 망가뜨린다.

 

앞으로 목회할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서 골 빼는 거 주의해야 한다. 부자로 살고 병 하나 낫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신부터 바로 들어가야 한다. 정신이 바로 못 되고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믿으니 평생 고통이다. 그러면서 혹 신앙사상은 고쳐서 나간다 할지라도 골 빼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망가진 몸의 회복은 참 느리다.

 

인간은 날 때부터 공동묘지를 향해 가는구나. 날 때 아이가 우는 건 왜 우느냐? 아무리 성장하고 크고 일이 잘 되고 행복하게 살아도 그게 전부가 공동묘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니 우는 거다.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긴 기도를 하는 그 근성. 지금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거의가 그럴 거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마귀가 꾀이는 내용의 기도는 성도의 원수가 되는 것이다. 교인이 불타지고 썩어질 세상과 세상의 것을 구하고 있을 때 목사님은 그래서는 안 된다하고 바로 가르쳐 주어야 한다. ‘히스기야처럼 부르짖어야 응답을 받는다하면 믿음에 더 불이 붙게 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교인을 죽이는구나.

 

사람이 몸의 동작으로 행동으로 남을 죽이는 것만 알지 말을 가지고 그 사람의 인격을 죽이는 것은 모르느냐? 힘 대 힘의 싸움만 있느냐? 입으로 싸우는 말싸움, 정신을 가지고 싸우는 정신싸움 등도 있다. 기독교인 같으면 싸웠다 하면 하나님의 본질인 진리를 가지고 공격을 해서 비진리의 정신 사상과 거짓과 이단자들에게 넘어지지 않고 이겨야 한다. 그런데 그게 없으니 그들의 정신에 잡아먹히고 포로가 된 줄을 모른다. 먼저 정신이 먹혀 들어간다.

 

목사님들의 세계에 과거에 예수를 믿었어도 진리본질의 이치를 정신 사상을 몰랐기 때문에 단순히 행동 활동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게 신앙인 줄 알고 있는데 신:에 보면 네가 자식을 나았지만 자식이 네 품에서 떠났다고 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한 집에 살아도 정신 사상이 하나가 아니다. 이건 네 자식이 아니다. 그 다음에 오는 사건을 봐라. 그러니까 그 자식도 못 깨달았으니까 또 모른다. 부모도 모르고 목사도 모르고.

 

세상 마지막 날에는 세상 것은 다 불에 타지는 건데 정신 사상이 세상 밑으로 제물로 돼 있는 것은 우상 앞에 바쳐진 것이요 세상에 속한 것이니 그 날에 다 같이 불에 타는 건데 오늘날 교인들이 그걸 모른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 거짓 된 교회 목회자들이 교인을 세상이라는 우상 앞에 집어넣고 있다.

 

세상 것을 자꾸 이루라는 거, 돋보라는 거. 목숨우상, 아파트를 처다 보고 그거 달라고 하는 이런 게 다 세상이요 우상이다. 정신이 세상에 잡혀가면 그런 걸 섬긴다. 이 해석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 정신 사상적 신앙 인격적으로 들어가면 그 이상은 더 파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 이상의 해석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행동 활동을 말하면 이유가 자꾸 붙고, 그러면 중심이 안 나오기 때문에 성경이 해석이 안 된다.

 

신앙이라는 게 뭐냐? 행동 활동을 지적하는 것도 어린애들은 정신을 모르기 때문에 그 행동을 지적하고 고치라는 것이다. 더 크면 나이가 들어서 매질도 못한다. 나이가 들면 정신 마음을 사람이 컨트롤하는 것이다. 신앙이란 정신 지식을 바로 고치는 것이고, 차원이 올라가는 것이다. 안 믿는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복 받았네하는 건 틀린 것이요 거짓말이다.

 

마귀가 꾀이는 기도와 그 소원 목적은 성도의 원수가 된다. 이건 말하자면 주님 오심을 헛되이 만드는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예수 믿는 효력도 없어진다. 전부는 신앙정신을 무너지게 하는 마귀의 역사다.

 

마귀가 있긴 있느냐? 귀신이 있긴 있느냐? 귀신이 제일 잘 나타나는 곳이 어디냐? 도깨비는 어디에 제일 잘 나타나느냐? 어디가 제일 무섭냐? 공동묘지? 왜 무섭느냐? 거기에서 도깨비가 잘 나타나니 무서운 거냐? 도깨비를 본 사람이 있느냐?

 

그러면 귀신이 어디서 잘 나타나느냐? 귀신이 잘 나타나는 장소도, 집도 있다. 귀신이 어디로 잘 돌아다니느냐? 물 없는 곳. 다시 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생수가 없는 곳. 하나님의 본질적인 생수가 없는 교회, 가정, 그런 모임, 그런 단체 그런 데서 잘 논다.

 

물이 영생수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으면 거룩하고 깨끗하다. 귀신은 그런 걸 싫어한다. ? 자기가 탄로가 나기 때문에. 그래서 성경에 보면 더러운 귀신, 악한 귀신을 말을 하고 있는 거다. 이게 다 사람 속에 든 정신의 질을 말하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깨달아야지 왜 귀신들린 짓을 하고 돌아다니느냐? 구별되고 거룩하고 이치적이고 한 걸 귀신들은 되게 싫어한다. 거짓된 목사도 그렇다. 강의시간(-매 주 정례적으로 김경형목사님이 진행하는 교역자 대상의 신학 및 성경공부 모임)에 오는 목사님들 중에 나오다가 안 나올 때 도망가면서 하는 말이 말은 옳은데 그렇게 하면 교회가 안 된다고 한다. 이건 더러운 귀신들린 것이다. 세상 물을 가득 품고 있으면 귀신이 알을 까기가 좋은 거다.

 

성도들의 신앙정신이 무너지게 하는 마귀의 역사, 그런 신앙이 마지막 때의 신앙이다. 마지막 때의 교회라고 하는 정신들이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신앙이 안 되게 하시려고 본문의 비유를 하신 거다.

 

2-6: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관,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 상상을 하면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고,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고, 인간의 양심도 없는 이기적이고 무법한 재판관처럼 보인다.

 

이 재판관이 끈질긴 과부와 싸움이 붙으면 누가 이기겠느냐? 낮잠을 자려는 사람에게 파리가 눈으로 콧구멍으로 입가로 붙어서 빨면 참 귀찮다. 파리가 자기와 입을 맞추자고 와서 빨고 하면 근질거리고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 우리가 이 재판관을 다른 각도로 한 번 보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까는 못된 쪽으로 봤고, 이제 다른 각도로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 거짓 없이 살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를 않은 거다. 또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죄만 짓고 사는, 저질적인 죄만 짓고 사는 사람들을 무시했다고 할 수도 있으니 그런 사람들보다는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으로도 보인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돋보이느냐, 저질적으로 보이느냐? 돋보인다. ? 운동시간에 내놓고 운동시키고, 아침 점심 저녁 따뜻한 밥 세 끼 주고, 큰 집(감옥) 속에 살지, 또 담벼락에 철조망을 딱 쳐놨으니까 보호를 받고 사는 거다. 자유로 내놓으면 그 이상 좋은 게 없을 텐데 막아놨으니 자유가 없다. 그러니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감옥 밖이 좋다. 자유가 그렇게 좋다.

 

그러니까 재판관이 이렇게 보면 대단히 나쁜 사람이고, 죄 지은 사람을 일반 사람들이 무시하듯그런 사람을 무시하고 알았으니 저렇게 보면 대단히 옳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부에게 원수가 있고 그 마음속에 원한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사랑에 울고 돈에 속고 한 게 아닌가? 자기 일생이 다 가도록 피해가 많은 불쌍하고 가련한 과부로 보인다. 하루아침에 가난해지고 과부가 되고 한 것으로 보이지를 않는다.

 

평생 사람들에게 속고 살았고, 남편이 돈도 안 갖다 주고, 여자가 나가서 번 돈도 남편이 다 노름에 날리고, 그렇게 하다가 남편이 아파서 드러누우면 자기 남편이라고 병수발하고. 이러면 하나님 보시기에도, 사람의 눈으로 봐도 인간으로 산 보람도 없는 기구한 운명이다.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다. 6. 25때 어린 아이가 부모와 헤어져서 다른 사람이 데려다가 키우는데 그 집에서 실컷 일 다 하고, 그 집에서 시집을 보냈는데 주인이 돈 욕심이 나서 시집 아닌 팔려가서 죽자 사자 일만 하고 얻어맞고. 이건 생각하면 참 기구한 운명이다. 이럴 때 심지가 약한 사람은 약을 먹든지 해서 죽어버린다. 그런데 심지가 강한 사람은 그래도 살면서 이를 악물고 끝끝내 살아나오는 사람도 있다.

 

기구한 운명의 가련한 과부로 보인다. 도대체 누가 그에게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일을 저질러 놓았을까? 과부는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피해를 입고 살았을까? 이 원수를 갚는 것은 재판관에게 가서 법으로 판정을 받고 이겨야 되는 거다. 자기가 가서 죽이면 법이 와서 잡아간다. 법이 와서 판결을 해야 한다. 개인감정으로 원수를 갚을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 하면 사람이 망한다. 그래서 사람 앞에 죄인으로 몰리고 감옥행이 된다.

 

과부는 또 원수를 바로 알았다. 재판을 통해서 자기의 원통함을 풀고 갔다. 참 똑똑한 과부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재판을 하면 오라. 가라해서 시간 다 들어가지, 이길 게 빤하지만 손해가 참 많다. 사람 망가지지, 돈 날아가지. 어쨌든 재판은 할 게 못 된다.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빼앗기는 한이 있어도 신앙 믿음에는 손해를 보지 말아라. 주님의 역사가 있다. 알고 보면 자자손손 악영향이 미친다. 그런데 미련한 인간은 그걸 모른다. 돈 때문에 사람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돈을 잃는 한이 있어도 사람을 잃으면 안 된다. 돈 있고 사람 있지 사람 있고 돈이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피해를 입었든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무식 무지 무능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과부가 재판관에게 간 것을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과부 자기가 무식 무지 무능이 있음을 깨달았음이 나타난다. 그래서 이 과부는 그 원수를 갚는 것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물질적 개념으로 생각을 해서 과부가 재판을 해서 이겼다하게 되면 이건 성경의 뜻이 아니다. 그 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자기가 물질적인 어떤 피해를 입었느냐? 그 원수보다도 자기의 무식과 무지와 무능을 먼저 깨달아라. 그래야 자기가 올라간다. 다시 말하면 그래야 또 속는 사람이 안 된다. 피해를 안 받는 사람이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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