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누가복음 › 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

최용우 | 2009.05.23 14:57:0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눅18:1~8
설교자
조용기 목사
참고
2004년 8월 29일 주일2부설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기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대게 기도는 세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예배를 드리는 교통의 기도가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서로 교통해야 친밀해지고 서로 가까워질수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교통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길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중보기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중보기도는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역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목적을 갖고 집중적으로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 기도는 확실한 응답을 바라고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통하는 기도는 즉시 응답을 받는 기도는 아닙니다. 중보기도도 우리는 중보하고 기도하지만 내 눈에 현실적으로 즉각 나타나는 결과를 기대하지 않지만 사역의 기도는 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에 해답이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확실한 응답을 바라고 기도드리는 사역의 기도에 관해서 말씀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예전에 위궤양에 걸린 자매님 한분이 여러 병원에 다니면서 온갖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다가 저희 교회에 찾아왔어요. 그래서 안수기도를 받기 원했습니다. 저는 자매님께 물었습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기도를 해왔습니까?” 그러니 “보통하는 기도를 하지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장차 오실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긍휼히 보시사 나를 치료해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자매님! 지금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너무 수사가 많습니다. 병고쳐 달라는 것은 조금밖에 안하고 앞에 하나님께 대한 수사가 너무 많습니다. 다급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지금 물에빠져 죽는 사람이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영광의 대주재시오, 아름답고 높으신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이여 나를 물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하면 꼬르륵하고 죽어 버리고 맙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그렇게 할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 사람 살려 주세요. 사람 살려 주세요. 사람 살려 주세요. 그렇게 해야지 무슨 수사를 그렇게 많이 합니까? 그러므로 자매님은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데로 하십시오. 하나님! 내 위궤양을 고쳐 주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고쳐 주옵소서. 다른말하지 말고 이렇게 집중적으로 하루에 세시간씩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보냈습니다. 얼마있다가 이 자매님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가지고 저를 찾아왔어요. “목사님 시키시는데로 하루 세시간씩 하나님 날 고쳐 주세요. 예수 이름으로 고쳐 주세요. 예수 이름으로 고쳐 주세요. 세시간씩 이렇게 반복기도를 한 결과에 아픔이 사라져서 병원에 가서 내시경 조사를 해보니까 위궤양이 깨끗이 나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사역의 기도를 할 때는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고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응답이 와야 문제가 해결될수 있는 것입니다. 사역의 기도를 할 때 우리가 언제나 취해야 될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본론]
1. 하나님과 정상적 관계라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적인지 아닌지를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확실히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용서받은 상황에서 기도를 해야지 죄가 있으면 우리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이사야 59장 1절로 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55장 6절로 7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시편 32편 5절로 6절에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찌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찌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꾸 감추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감추면 하나님 앞에 긍휼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가서 무릎을 꿇고 우리 마음을 열어 놓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다 제켜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역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이 응답을 꼭 받아야 할 때는 마음에 아무 거친 것이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기르는 사람들은 자녀 때문에 많은 눈물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 애들이 어릴 때 하루 늦게 심방을 하고 들어오니 둘째애가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학교에서 애들과 같이 놀다가 나가서 번데기를 사먹었습니다. 그때는 별로 먹을것이 없기 때문에 번데기 장사가 학교 주위를 다니면서 “뻔! 뻔!”하고 돌아 다닙니다. 그러면 애들이 와 모여서 번데기를 사먹는데 우리 애들도 친구들과 같이 나가서 번데기를 사먹었는데 그 번데기가 농약이 섞인 번데기였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번데기를 사먹고 그 자리에 쓰러졌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우리 애를 자전거에 싣고서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집에 눕혀 놓았는데 목숨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병원에 데려갈수도 없고 의사를 청해 오니까 의사 선생님은 독이 온몸에 퍼졌으니 별 손델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와보니 애를 잃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나와야 말을 하죠. 급한데 이것은 응답을 받아야만 할 기도인데 내가 주여!해도 기도가 입천장에만 딱붙고 가슴이 답답해서 통되지 않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답답해서 내 가슴을 찢었습니다. 하나님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기도가 안나오고 하나님 얘를 데려갈 바에는 나를 데려가 주십시오. 나는 오래 살았으니 지금가도 괜찮지만은 이제 살기 시작은 애 무슨죄가 있어서 이 애가 가야 됩니까? 나를 데려가 주십시오. 그런 기도해도 무슨 소용있습니까? 할수없이 제가 서재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어서 죄를 회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의 어릴 때 기억한 죄부터 시작해서 살아오면서 있는 모든죄를 하나도없이 주님 앞에 부르짖어 회개했습니다. 주님이여 나의 모든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죄 때문에 이 얘가 이렇게 되는 것이니 나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어 몸부림치며 기도하니까 마음이 시원해지며 주의 보혈로 내 마음이 정결함을 받고 하나님과 내 사이에 막힌담이 다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확신이 오자 애에게 가서 안수하고 간절히 기도하니까 걔가 일어나더니 입을 열고 토하는데 번데기가 함께 시꺼먼 독을 다 토해내고 난 다음 살아났어요. 이게 사역의 기도인 것입니다. 사역의 기도를 할 때는 하나님 앞에 막힌담이 없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죄악의 담이 가리워 있으면 하나님 앞에 미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고 살아 일으키는 기적이 일어난 것을 제가 체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기도할때는 죄를 회개할뿐 아니라 성도의 의무를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날도 지키지 아니하고 주일날 내 개인적 할 일 다하고 돌아다니다가 답답한일 생기면 “주님이여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 고함치면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주일날은 주님이 부활한 날이요, 주께서 교회에서 우리를 만나주는 날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 꼭 주일날 제자들이 모인곳에 찾아오셔서 만나 주셨습니다. 그날이후로 제자들은 주일날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대하고 모였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와같이 성일에 모이면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이 자리에 찾아와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만나러 기다리고 계시는데 주님을 만나지 않고 주님을 박대하고 난 다음에 내가 문제가 생겼을 때 주님 나를 만나 주십시오.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출애굽기 20장 8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했는데 유대인의 안식일은 오늘 우리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주일인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내 물질이 있는곳에 내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섬기면 내 물질이 주님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하나님보다 더 섬긴다면 내가 하나님 필요할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물질찾아 가거라. 물질을 네가 나보다 더 섬기지 않았느냐. 물질을 너희 하나님이고 너희 우상이니 너희 하나님인 물질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물질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십일조를 떼먹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물질로 정성스럽게 사업에 협조한다면 어려움 당할 때 “하나님 내가 고난중에 처했으니 나를 도와 주소서.” 하나님이 “오냐. 네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잠언서 28장 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법에 등을 돌리면 그러한 사람의 기도는 하나님이 가증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때도 의롭게 살아야 되고 참되고 진실하게 살아야 되고 그리고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의롭게 삽니까? 의롭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의롭게 살고 어떻게 진실하게 삽니까? 거짓이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뱀을 미워합니다. 왜 뱀을 미워합니까? 뱀은 진실하지 못하고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말씀에 보면 꼬불꼬불하는 뱀을 야단을 주님께서 죽일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꼬불꼬불꼬불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바른 마음을 가지고 진실하게 사는 것을 원하고 그리고 세상과 짝하지 아니하고 거룩하게 사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때는 온유하고 겸손하게 용서와 사랑을 가지고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적으로 대하고 비평하고 평론하고 사람을 해하는 그런 삶을 살고는 하나님 앞에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장하고 하나님 앞에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삶을 살면은 우리의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럴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늘 은혜 받은 것을 감사하고 살아야 기도가 응답되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영화로움을 느낀다 했습니다. 마음이 영화로워집니다. 여러분 우리도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난 다음 감사한 편지를 받든지 감사하다는 전화를 받든지 직접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영화로워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감사를 받을 때 영화로워지는데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가 감사를 들일 때 영화로워하는지 말할수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냥 기도하지 말고 감사로 소금을 쳐서 아뢰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흐뭇하게 하니까 감사를 더불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
에베소서 5장 20절에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도 입싹 닦아 버리고 감사 안할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정말 감사를 너무 안합니다. 우리 가족들도 한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부모가 자식, 자식이 부모에게, 이웃에게 서로 감사한다면 삶을 행복하게 하는 기름을 치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하여 옷한벌, 꽃 한다발이라도 사다주면 마음을 다하여 비록 좋지 않은 것이라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고마움을 표시할 때 좀 호들갑을 떠십시오. 남편이 선물이나 꽃한다발이라도 갖다 주면 “아이고 고마워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갖다 주셨다. 내가 이것을 가지기를 원했는데.” 그러면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 “야~ 진짜로 기뻐하고 감사하는구나. 앞으로 종종 더 잘해줘야 되겠다.” 그런 생각날 것 아닙니까? 어떠한 남편은 부인에게 모처럼 돈을 모아서 옷한벌을 사다 주니까 부인이 받아 가지고서 아무말도 안하고 농장에 넣더랍니다. 그래서 “좀 입어봐라.” 그러니까 “나중에 시간있으면 입어 보지요.” 그래서 그 남편이 제게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옷 안사주기로 결심을 했다.”고 했습니다. 옷을 사주면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하고 그 자리에서 입어보고 거울앞에 서보고 남편 앞에도 좋으냐 안 좋으냐 그렇게 해주면 자기가 사준 보람이 있어 더 사주겠는데 그냥 아무말도 안하고 받아 가지고서 농장에 넣어 버리고 한번 입어 보라니까 나중에 시간나면 입어 보겠다니 사준 보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감사할 때 더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할 필요없이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큰 영화로움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적고 큰일에 꼭 감사할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감사하 하늘문을 엽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교회 자매님 한분이 내게 와서 이런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회사의 자매님인데 청훈의 꿈을 가지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첫날부터 남편이 알콜중독자라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서 잠에 골아 떨어졌습니다. 그로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돈만 생기면 술을 마시기 때문에 가정경제가 엉망입니다. 그래서 생활을 꾸려 나가기 위해서 이 자매님을 직장에 나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하루가 아닌 10년을 계속해서 술 주정뱅이로 행동을 합니다. 하루는 이 자매님이 우리 교회 나오는 친구 자매에게 “이제 나는 이혼해야 되겠다. 도저히 살수가 없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 그 사람하고 살아서 무슨 희망이 있느냐. 돈만 생기면 술을 마신다. 그래서 이혼하겠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나오는 자매님이 말하기를 “그렇게 쉽게 이혼하지 말아라. 우리교회 목사님이 설교할 때 말하기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께 영화를 돌리고 그런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여 주겠다 하시니 우리 점심시간에 나하고 합쳐서 당신의 남편을 위해서 감사예배를 드리자.” “술주정뱅이를 보고 뭘 감사를 하느냐?” “글세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했으니까 무조건 감사하자. 좋은일은 좋아서 좋고 안된일은 좋게 만들어 줄것이니까 무조건하고 믿음으로 우리 감사예배를 드리자.” 그래서 그날부터 점심시간에 우리교회 자매님이 이혼하겠다는 그 자매님과 더불어서 예배를 가졌습니다. 둘이 손을 잡고 “하나님 이 술주정뱅이 된 남편 때문에 감사합니다. 10년을 하루같이 술만 마시는 남편을 위하여 감사합니다. 이런 술주정뱅이를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제일 처음에는 그 감사하는 기도가 너무나 마음에 거역되고 좋지 않더랍니다. 그러나 자꾸 감사하니까 나중에 미운 생각이 사라지면서 불쌍한 생각이 생기더랍니다. 자기도 술에 노예가 되어서 곤두레 만두레 저렇게 사니 무슨 인생이냐. 불쌍한 생각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미워한 생각을 그치고 계속해서 술주정뱅이 남편을 위해서 감사를 했는데 하루 주일아침에 교회에 나가려고 옷을 이렇게 입으니까 남편이 “어디가?” 그러더랍니다. “교회가.” “나도 따라가도 돼?” 그래서 농담하는줄 알고 “웃기는 소리하지 마세요. 사람을 그렇게 놀리면 못써요.” “아니야 진짜야. 나 따라갈래.” 그러더니 부실부실 일어나서 옷을 입고 우리 여의도순복음교회로 따라왔어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회개할 사람 일어나라니까 일어나서 회개하는 기도를 따라하고 난 다음 막 그사람이 눈물, 콧물을 흘리고 손수건으로 범벅이 되도록 눈물을 닦고 콧물을 닦고 난 다음 변화되어서 그 다음에는 성령세례받고 올바른 직장을 얻고 술도 끊고 10년 만에 신혼생활을 시작했다는 간증을 들었었습니다.
감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담을 무너뜨립니다. 감사가 하나님의 귀를 귀울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영화롭게 여기고 기분좋게 여겼던지 이 자매님의 감사기도에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2.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사역의 기도를 할 때는 목표가 분명해야 됩니다.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기도제목을 여러 수십가지를 해서 나열하고 중언부언하면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무엇을 응답하실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7절로 8절에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명쾌하게 목표를 분명히 해서 기도를 해야지요. 목표가 희미하게 해서 중언부언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요한1서 5장 14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8절로 9절에 예수님이 이런 예를 들으셨습니다. 밤중에 친구가 왔는데 먹일떡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집은 부자라 떡이 많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위해서 이웃집에 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내 친구가 밤중에 왔는데 떡 세덩이만 빌려달라고 두드렸습니다. 아무 소리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니까 나는 이미 애들과 다 일을 끝마치고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서 줄수가 없다. 내일 날밝거든 오거라. 그러나 이 사람은 지금 친구가 배가 고파 있으니 먹여야 되겠습니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면서 “떡 세덩어리만 빌려달라. 떡 세덩어리만 빌려달라.” 소리가 없습니다. 그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고 “떡 세덩어리, 떡 세덩어리, 떡 세덩어리.” 계속해서 고함을 쳤습니다. 나중에는 방에서 대답이 나왔습니다. “내가 너가 친구기 때문에 떡 세덩어리 주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잘수가 없기 때문에 시끄러워 견딜수가 없다. 그래서 일어나서 떡 세덩어리를 주었다.”고 주님 말씀하시면서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막연하게 기도하지 말고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간결하게 부르짖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언제나 목표가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면서 막연하게 그냥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기도하면 힘이 없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기도할 때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봅니다. 성경에는 주께서 말씀하기를 “누구든지 이 산들에게 명하여 저 바다에 던지라 하고 그 마른 것이 이룰줄 마음에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거기에 보십시오. 분명히 이 산을 저 바다로 던지라고 마음에 바라보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막연한 기도가 아닙니다. 이 산이고 저 바다입니다. 분명히 마음속에 그를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이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한 대표적인 믿음의 조상인 것입니다.
창세기 13장 14절로 15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냥 준 것이 아니라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가나안 땅을 주장하라. 그리하면 이것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85세가 되고 그의 아내가 75세가 되어 자녀를 얻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 내어서 밤중에 별들을 헤아리게 했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로 6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하나님이 자손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헤아려 보라. 별들을 하나, 둘, 셋, 넷 헤아리니까 하나님이 너희 자손이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별들을 통하여 자손들의 얼굴과 숫자를 아브라함은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의 마음속에 신앙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우리가 이루어진 모습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바라봅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씀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는 늘 마음속에 하나 잊어 버리지 않는 것은 옛날에 제가 독일에서 집회를 하고 공항에 나가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하는데 독일 목사님들이 몇 명이 찾아왔습니다. 저보고 한 목사님이 떠나기 전에 ”요청할 것이 있습니다.“ ”뭐냐.“ ”우리가 선교사업을 하는데 자동차가 꼭 필요한데 목사님 자동차 한 대 사주십시오.“ 그래서 ”독일사람 우리보다 잘 사는데 당신들이 자동차 사지 왜 내게 자동차를 구하느냐” 하니까 “독일사람은 잘 살지만은 독일목사는 잘 못삽니다. 목사님은 세계 최대의 교회를 가지고 있고 기도의 용사니까 우리에게 요번 자동차 한 대 사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나는 자동차 사줄수 있는 돈이 지금 없거니와 자동차를 하나님께로부터 구할수 있는 길을 예비해 주겠다. 수첩을 내라.” 수첩을 내요. 그래서 “자동차 몇대를 원하느냐?” “한대입니다.” 한 대를. “어떤 차를 원하느냐. 트럭을 원하느냐. 봉고차를 원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승용차를 원하느냐?” “봉고차를 원합니다.” “봉고차라고 적으라. 그러면 그다음 어떤 색깔을 원하느냐? 회색깔? 검정색깔? 파랑색깔?” “파랑색깔.” “그러면 파랑색깔 적으라.” “그러면 이 시간에 눈을 한번 감아 보아라.” 눈을 감아요. “당신 자동차가 보이느냐.” “아~ 파랑색깔의 봉고차가 보입니다.” “그렇지. 그것을 바라보고 기도하라. 끊임없이 그 차가 이미 하나님이 주신 것을 마음속에 바라보고 기도하라.” 그리고 난 다음 기도해 주고 떠나는데 그 다음에 제가 프랑크 프르트에 가니까 그 목사님들이 비행장에 나를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그리고 내 짐을 봉고차에 실으면서 “이 차의 이름이 뭔지 압니까?” 그래서 “무슨 차입니까?” 하니까 조용기라고 합디다. 차에다 내 이름을 붙였어요. 그렇게 기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셔서 그 차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이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스트리아에 제가 신앙세미나를 갔을 때 그곳에 있는 목사들이 와서 “오스트리아에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부흥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일어나지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도박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일 교회에 나오지 않고 부흥이 안됩니다.”라고 합니다. 아무리 제가 믿음에 대한 설교를 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후에 제가 말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이 앞으로 3년에서 5년간 여러분의 교회가 자라기 원하는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종이에 적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이 종이를 내어서 기도하고 3년에서 5년 사이에 3백명, 혹은 5백명, 천명 많이 적은 사람은 오천명까지 적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가지고 사무실에 갔다 붙여놓고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올때도 그것을 바라보고 저녁에 집에 돌아가기 전에 그것을 바라보고 항상 바라보고 그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에 간직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내 말대로 그대로 했습니다. 2년후에 내가 오스트리아에 가니까 오스트리아 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에 제게 와서 말하기를 “목사님이 그말씀을 하시기 전에 10년 동안 우리 하나님의 성회는 교회 하나 생겼다가 하나가 문닫으므로 0% 성장했는데 목사님의 그 설교를 듣고 2년만에 우리 하나님의 성회는 모든 교회가 100% 성장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라봄의 법칙이 중요하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늘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라고 했습니까? 어떠한 사람들은 제가 이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라고 한다고 비난하는 말을 하는것도 제가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이 이룬 것을 바라보고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십시오.

3. 확실히 이룰 줄 믿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가 기도할 때 확실히 이룰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속에 될까? 안될까? 자꾸 의심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꾸 의심이 생기는데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믿음이라는 것은 선택에 있습니다. 내가 믿겠다고 선택을 하면 믿는 것입니다. 내가 의심하겠다고 생각을 하면 자꾸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사나 죽으나 믿겠다. 나는 의심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마음에 결정을 내리면 의심은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 버리고 믿음으로 설수가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6절로 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여기에 의심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의심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의심을 받아 들이지 않을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 보십시오.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실 때 “주시면 나를 물위로 걷게 하소서.” 예수님이 오라고 하니까 그가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심하지 않고 걸어갈 때 물위로 베드로가 걸었습니다. 사람으로써 물위로 걸은 것은 처음입니다. 그런데 일진광풍이 불어오고 물보라가 얼굴을 치니 그만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을 돌이켜 파도를 바라보고 두려워 했습니다. 의심을 했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물에 빠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의심하는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의심을 내팽개치고 굳세게 주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강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마음에 작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끝까지 믿겠다. 사나 죽으나 나는 믿는다.눈에는 아무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나는 믿겠다.“ 믿음을 결심하는 것입니다. 이것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중립적인 마음에 서서 믿을만하면 믿고, 의심이 생기면 의심을 받아 들이겠다. 그러한 상황속에서는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아서 아무것도 하나님께 구하여 얻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부여 잡아야 됩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일점일획도 변치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부여잡을것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칠 때 내가 붙잡고 매달릴 것이 있어야 되는데 하나님 말씀은 요동치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20절에 보면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옛날 태평양을 횡단하던 중에 배가 파선되어 20일 이상 댓목을 타고 표류하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리건 베이커라는 선장과 젊은 두 선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댓목을 타고 20일 동안 바다에 떠돌아 다녔습니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으로 온몸이 다 타는 것 같고 목이 마르고 그리고 밤에는 너무나 얼어 죽을 듯이 춥고 상어떼의 습격을 받고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상황속에서 절대적인 적막과 고독속에 20일 동안 댓목에 타고 바다를 표류했던 것입니다. 그럴동안에 그 선장은 신앙이 좋아서 늘 시편 23편을 외웠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 31절로 34절은 암송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두 성경 구절을 늘 암송하면서 그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러다가 23일만에 구조 되었는데 신문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인간의 한계선을 뛰어넘어 23일동안 바다에서 살아넘을수 있었느냐”고 하니까 그 선장은 말하기를 “나는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대로 나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고 하루하루 이겨나갈수 있었고 결국에는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을수가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말씀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말씀을 부여잡고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 인간적인 이성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내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것은 불가능하다. 경험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내 상상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처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길을 하나님은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 모든길을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비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예비하신 크고 비밀한 일이 나타날 것을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으나 하나님이 신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5편 19절에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기도응답을 많이 받기로 유명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가서 손을 내밀지 아니하고 오직 성경가지고 기도실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만 하므로 3천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낸 것입니다. 그는 일평생에 5만번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그 기록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기도응답받는 비결을 묻자 그는 말하기를 “나는 성경 마가복음 11장 24절에 기록한 말씀대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기도할 때 반드시 받은줄로 믿고 기도를 합니다. 한번은 한파가 몰아쳤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 병동에 고아동에 아주 갓난아기로부터 시작해서 이제 겨우 걸어 다니는 어린애들을 수용한 그 고아동에 보일러가 고장이 났습니다. 추운 한파가 불어오는 한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이 났으니 애들다 얼어죽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어린 아이들을 다른데 어디 수용할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비상이 걸려서 큰일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죠지 뮬러 목사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는 성경책 하나 가지고 기도실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는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변호자가 되시며 나는 아버지의 명령을 쫓아 돌보는 총무에 불과합니다. 이제 애들 유아동에 보일러가 고장이 나서 불을 땔 수가 없습니다. 이 한파에 애들 다 얼어죽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자녀들을 안돌보겠습니까? 하나님 크고 비밀한 기적을 나타내사 어떻게 하든지 어린아이들 얼어죽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보일러가 꺼지는 그 시간부터 동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면서 영국 전역에 봄이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이 한겨울에 갑자기 이렇게 봄날같이 따뜻할수 있냐고 겨울옷을 농장에 넣고 봄옷을 끄집어 내어서 갈아 입었습니다. 그럴 동안에 보일러를 수선했는데 보일러가 다 수선되어서 불을 때기 시작하지 마자 혹한 겨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기적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서 오늘날도 하나님은 부르짖는 성도들을 위해서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생각할수 있고 경험할수 있는 것만 한다면 우리는 절망할 때 어디를 바라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4. 간절히 집중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가 사역의 기도를 할 때는 간절한 마음과 집중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 한서린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냥 중언부언하고 마음에 냉랭한 마음으로 기도해서는 하나님이 응답받지 않습니다. 마음이 끌어올라야 되는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 한서린 마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6절로 8절에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러분 사람이 마음에 원한을 품으면 밤낮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원한이 마음에 있으면 자나깨나 밥을 먹으나 일을 하나 마음속에 그 원한으로 사무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고자 하면은 뜨거운 마음, 한서림 마음으로 자나깨나 그것을 잊어버리지 말고 먹으나 일하나 잊어 버리지 말고 집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과부가 있는데 그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서 재판관에게 가서 내 원한을 갚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분인데 더구나 과부가 와서 부탁을 하니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는 뜨거운 마음, 원한에 서린 마음으로 자나깨나 그 재판관의 집앞에 기다리면서 내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갚아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한동안 무시했으나 너무나 계속하므로 나중에 재판관의 마음이 번뇌스럽고 고통스러워 견딜수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밤낮와서 나를 번거롭게 하므로 내가 응답해 주겠다고 해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뜨거운 마음과 원한서린 마음으로 밤낮 부르짖는 과부의 기도를 응답했는데 하물며 천부께서 그 택하신 자가 밤낮으로 한서린 마음으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응답해 주지 않겠느냐고 주님께서 말씀한 것입니다.
요엘서 2장 12절로 13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와같이 아에 죽으면 죽으리다하는 마음으로써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뜨거운 마음, 원한서린 마음. 제가 한번 수요예배를 마치고 내 사무실에 내려가니까 어떠한 한 사람을 들것에 들고 왔습니다. 보니 얼굴이 완전히 시꺼먼 흑색이에요. 간암 말기였습니다. 그리고 링거를 팔목에 꼽고 왔습니다. 도저히 보니까 사람힘으로는 살수가 없어요. 병원에서도 버림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보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이판 저판 사판이다. 병원에 가도 죽고, 집에 가도 죽는데 살길은 한길밖에 없다. 하나님을 찾는 길밖에 없으니 오늘 이시간에 온가족이 최자실금식기도원에 가서 사흘동안 금식기도를 하라.” 그러니까 그를 데리고온 분이 하는말이 “이 가족들이 아무도 예수믿지 않는데요? 여의도순복음교회 오면 병낫는다해서 우리는 예수도 모르면서 왔는데요?” 그러다라고요. 그래서 “자식이 죽게 되었는데 믿고 안믿고가 무슨 상관이냐? 좌우간 기도원에 올라가서 안믿는 부모는 형제들 다 모여서 굶어라.” 금식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굶어라. 곡끼를 끊고 하늘의 하나님께 자식살려 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라.” 그러니까 그 가족들이 올라갔어요. 그 아버지 어머님도 예수를 모르면서도 올라가서 곡끼를 끊고 형님도 직장 그만두고 그 형수도 만삭이 되어 애기를 낳을 날짜가 가까웠는데도 불구하고 금식하면서 부르짖고 예배에 참석하고 하니까 설교를 듣고 자동적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들은 간절히 간절히 주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사람을 살려 달라고 금식하고 몸부림을 치면서 부르짖어 기도했는데 그만 이 사람이 혼수상태에 빠졌어요. 이젠 의식이 다 없어지고 숨도 잘 못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부르짖어 기도하니까 사흘이 지나고 난 다음에 혼수에서 깨어나더니만 물한컵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 물한컵을 주니까 물을 마시고 난 다음 화장실에 데려 달라고 해서 화장실에 가니까 시커먼 피를 계속해서 쏟더니만 그다음부터 깨끗하게 나아 버렸어요. 그 가족들이 제게 인사하러 왔는데 내가 그 사람을 모르니까 물었습니다. “그때 들것이 눕혀서 온사람 어떻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옆에 선 사람이 “나입니다.” 그러더라구. “당신이 이렇게 살아났어요?” “예. 그때 이후로 살아나서 지금은 모든 것 다 먹고 마시고 편안하고 병원에 가서 조사해 보아도 간암이 온데간데 없이 다 사라졌다고 건강하다고 말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한서린 기도를 온식구들이 금식하면서 외치니까 마귀가 떠나가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냉랭한 마음으로 기도해서는 안돼지요. 그리고 기도하면은 여러분 쉽게 물러가는 사람있습니다. 조금 기도하고 난 다음 응답 안온다고 그냥 집어 치우고 물러가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 기도는 싸움입니다. 싸움이 그렇게 쉬운 것 아니잖아요. 전쟁을 할 때 일진 일퇴하면서 끝까지 싸우지 않습니까? 쉽게 물러가면 전쟁에지지 않아요?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사탄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 사탄이 쉽게 안물러 가지요. 이미 사탄은 권리를 잃어 버린 놈이라도 물러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칩니다. 계속해서 침노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세례요한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노니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전력을 기울여서 뜨거운 마음과 열정적인 심정으로 기도하되 끝까지 인내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로 38절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물러가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잘 훈련된 사냥개와 같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잘 훈련된 사냥개는 짐승의 목을 물면은 죽을때까지 흔들고서 안놓습니다.
옛날에 우리 고향에서 우리 아랫집에 똥개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진짜 똥개닙니다. 아주 못나고 또 잘 먹지도 못해서 비리비리하고 주인에게 발길로 채이고 그러는데 그 사냥개가 주인이 나무하러 갔는데 산에 따라갔다가 노루 한 마리를 발견해서 노루의 목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잘 먹지도 못하고 비리비리한 개가 힘도 없으면서 목을 꽉 물었는데 눈에 불을 켜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뭐 노루가 아무리 도망치려해도 물고 늘어지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노루가 가만히 서있으니까 주인들이 가서 노루를 때려 잡았습니다. 그래서 노루를 지게에 지고 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 똥개값이 하늘같이 솟아 올라 가지고서 서로 그 똥개를 사겠다고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똥개팔자 시간문제였습니다. 그게 노루의 목을 물고 난 다음에 노루가 흔들면 놓아 버리고 도망을 쳤으면 자기는 여전히 영원히 똥개로 남았을 것인데 물고서 끝까지 매달려 절대로 놓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마귀와 싸울 때 마귀의 목을 물었으면 놓지 말아야 됩니다. 끝까지 물고 흔들어야 됩니다. 끝까지 기도로. 끝까지 흔들면은 마귀는 물러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7절로 28절.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사가 있습니다. 자기딸이 귀신들려서 고통을 당하는데 예수께 나와서 내 딸이 귀신들렸으니 고쳐 달라고. 예수님께서 대번에 부인했습니다. 제자들에게 부탁해도 제자들이 “주님 저 여인이 부르짖으니 고쳐 주시죠.”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왔지 저 여자에게 오지 않았다.” 어지간하면 물러갈 것인데 여자는 예수님 가는 길을 막고서 “주여 내딸이 귀신들렸아오니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이 “자식에게 주는 떡을 취해서 개에게는 안준다. 너 개다.” 그쯤되었으면 여러분 뒤로 물러갈 만합니다. 안고쳐줬으면 안고쳐주지 사람을 개라구요? 반항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옳소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아닌 이방인 개입니다. 그러나 개도 자식들이 먹는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는데 나에게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 주님이 하신 말씀이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내가 그렇게 말했으므로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느니라” 집에 가보니 그 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스로보니게 여인이 아직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아서 주님의 은총을 받을수 있는 처지에 없을지라도 끝까지 주님께 부르짖고 따라 붙은 결과에 그는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인 죠지 뮬러에 대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말하고 싶은 것은 죠지 뮬러가 어릴때부터 자란 다섯친구가 있었어요. 그가 이 친구들을 주께로 인도해서 천국으로 데려가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다섯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그가 기도한지 18개월만에 한 사람이 구원을 받고 또 기도한지 5년이 지나서 두 번째 사람이 응답을 받아 구원을 받고 그리고 기도한지 12년후에 세 번째 사람이 응답을 받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다섯 번째 친구를 위해서는 52년 동안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죠지 뮬러가 이제 병이 들어 죽게 되었는데 하루 몸이 몹시 아픔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설교를 하겠다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힘을 얻어 강단에 나가서 마지막 설교를 할 때에 그 설교를 듣고 네 번째 친구가 구원을 받고 그 다음에는 다섯째 친구가 구원 받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죠지 뮬러는 세상을 떴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죠지 뮬러가 52년동안 기도해도 완전한 응답은 받지 못했다.”고 했는데 죠지 뮬러 장례식에 이 마지막 다섯째 친구가 찾아 왔다가 관이 흙속에 내려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 회개하고 기도하고 변화받아 주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사람이 온 영국을 돌아 다니면서 하는말이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제가 그 최후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모든 기도도 반드시 응답될 것이다.”라고 전도하고 있었습니다.

[결론]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게 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은 응답하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 문제를 해결받고 우리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삶을 살아갈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를 정상화 하십시오. 막힌 죄의 담을 다 헐어 버리십시오. 다 고백하고 보혈로 씻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목표를 분명히 세우십시오. 우왕좌왕하지 말고 중언부언하지 마십시오.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바라봄의 법칙으로 이룬 모습을 마음에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확실히 이룰줄 믿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길로 한결같이 나가십시오. 간절한 마음, 원한서린 뜨거운 마음으로 집중적인 기도를 계속하면 여러분 응답받습니다. 심지어 죠지 뮬러같이 52년동안 기도해서 결과적으로 반석같이 굳은 친구의 마음이 무너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가 쉽게 낙심해서는 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기도를 응답해 주신 아버지가 계시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마음에 큰 위로와 평안을 얻습니다.
우리의 길이 칠흙같이 어둡고 우리의 삶이 사막같을지라도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며 우리의 부르짖음을 귀기울여 들으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 주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뒤로 물러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오늘 아침에도 주의 백성들이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왔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막연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말고 결단하고 기도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뒤로 물러가지 않고 뜨거운 마음과 한서린 마음과 집중적인 심정으로 계속 전진하고
마귀의 목을 물고 흔들게 도와 주시옵소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역사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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