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가장 귀중한 만남

김필곤 목사 | 2010.02.06 22:15:5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1:35-42
설교자
김필곤 목사
참고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지난 3월 29일 한국일보 사회면에 "한 여자 10년 등친 거머리"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어느 간호사의 이야기였습니다. 간호사로 병원에서 근무를 했는데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든 어느날 근무를 하는데 한 청년이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왔습니다. 준수하게 생긴 이 청년은 간호사에게 접근하였습니다. 자신은 서울대학교 법대 나와 1차 시험에 합격한 고시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의 타고난 외모와 달변에 끌린 그녀는 그때부터 그 청년과 꿈 같은 연인생활을 시작했습니다.“고시만 붙으면 이까짓 돈이 문제냐, 판검사가 되면 결혼해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아보자”는 맹세를 믿고 박봉을 쪼개 꼬박 꼬박 생활비를 대었습니다. 좋은 혼처 다 뿌리치고 10년동안 뒷바라지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사기꾼이었습니다. 다른 여자와 결혼해 살림까지 차리고, 고시 준비하라 준 돈을 생활비와 유흥비로 탕진하였습니다. 여대생 두 명에게도 똑같은 수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녀는 6000만원을 보상하라고 고소했지만 이미 마음도 몸도 인생도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젊은날 잘못된 만남은 인생은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배우자 뿐 아닙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모를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 따라 대통령의 아들도 될 수 있고, 죄수의 딸도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 어떤 스승, 어떤 책, 어떤 직업, 어떤 지도자, 어떤 교회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행복해 질 수도,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보다 좋은 인생살이를 할 수도 있고 힘겨운 인생살이도 할 수 있습니다. 어둠의 자식이 될 수도 있고 빛의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만남이 어떻했든지 일시에 불행한 만남을 반전시키는 만남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귀한 만남입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어떤 만남을 통하여 지옥같은 인생을 살던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 천국같은 삶으로 변화됩니다. 아무리 괴로운 만남도, 아무리 슬픈 만남도, 아무리 풀리지 않는 만남도 예수님을 만나면 괴로움이 변하여 기쁨이되고 슬픔이 변하여 환호가 되고 절망이 변하여 소망이 되고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면 죽음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습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면 용서받고 용서하면서 살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진정 만나기만 하면 모든 불행한 만남을 일거에 변화시켜 버립니다. 아무리 부모를 잘못 만나 가난하게 산다고 하여도 예수님 만나면 일시에 천국의 부자 됩니다. 천국을 기업으로 받는 영적 부자가 됩니다. 아무리 좋지 못한 친구를 만나 방황한다하여도 예수님 만나면 희망찬 인생길이 펼쳐집니다. 아무리 좋지 못한 배우자를 만났다해도 예수님 만나면 배우자를 사랑하게 되고 가정이 천국으로 변화됩니다. 진정 예수님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고귀한 만남은 우리 예수님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가난이 인생을 파멸로 이끌지 못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질병이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가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 만나면 어떤 악조건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행복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의 모든 만남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찬미 예수 946장 예수 보다 더 좋은 친구 없네, 예수 보다 더좋은 친구없네 괴로울 때 다가와서 마음에 평화주는 신실하신 나의 참 친구 외로울 때 찾아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사랑많은 나의 참 친구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주 예수 사랑하리라 나의 생명 다할 때까지)
우리나사 선교 초기 교인인 서상륜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13살 때 부모님을 여위었습니다. 좋은 부모 만나지 못했습니다. 가난합니다. 고아가 된 이 사람은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성에서 나는 고려인삼을 사 가지고 만주에 가서 팔았습니다. 인삼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다 31살에 장티푸스에 걸렸습니다. 열이 오르고 쓰러지고, 헛소리를 했습니다. 아무도 그를 돌보아 주지 않았습니다. 돈있을 때 그 좋아하던 사람들 다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코트랜드에서 파송 된 메킨타이어 선교사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정성을 다해 치료해 주었습니다. 죽어가는 그를 살렸습니다. 서상륜에게는 메킨타이어가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선교사는 그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는 가장 고귀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일년만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인생이 변했습니다. 이제 가난이 문제가 아닙니다. 질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번역인 로스 성경을 로스 선교사님과 함께 번역을 합니다. 황해도 장면에 있는 송천(솔내, 소래)에 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합니다. 최초의 교회인 '송천교회'가 세워집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를 만나 서울에 새문안 교회를 새웁니다. 처음 14명이 세례를 받습니다. 모두 서상륜이 전도한 사람들입니다. 황해도, 평안도 할 것 없이 부산까지라도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평생 평신도로 살며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집을 헌납하여 교회를 지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언더우드 선교사님께서 그가 헌납한 집과 똑같은 기와집을 노년에 사주었다고도 합니다. 예수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가정이 바뀝니다. 사회가 바뀝니다.

왜 예수 만나는 것이 그렇게 가장 고귀한 만남입니까?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이고 메시아이시기 때문입니다(36,41)
대통령만 만나도 좋아하고 대통령 아들이 되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사장 아버지만 만나도, 대기업 아들 만나면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과의 만남은 보통 만남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의 고백을 보십시오. 그분을 만났을 때 그가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안드레의 고백을 보십시오(41). 메시야이십니다. 예언된 메시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 전부를 맡기고 말씀을 듣고 좇을 만한 분입니다(35-37). 스승 요한의 말을 듣은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 37절을 보십시오. 여기서 "듣고(에쿠산)"라는 말은 단순한 들음이 아니라 듣는 말씀에 대한 순종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동의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좇았습니다. 듣고 좇아간 결과가 무엇입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메시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세주, 그리스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듣고 좇아가면 메시아로 고백할 수밖에 없는 분이시고 진정 메시야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바뀝니다. 38년 동안 절망하면 병이 든자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질병에서 벗어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떨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면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됩니다. 장례 행렬이 멈춥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용서를 받습니다. 도끼로 인간을 죽인 살인만도 예수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절망과 실패 가운데 자살을 결심한 사람도 예수님 만나면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한센씨병 환자가, 혈루증 앓는 여인이, 앉은 뱅이가, 나인성 과부가 예수님 만나 새롭게 됩니다. 행복해집니다. 병든 아들, 죽은 아들 만나 지옥같은 인생살이었는데 천국으로 화하였습니다. 세상에 누구를 만난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주는 나의 구세주. 예수 예수)
인생의 모든 풍랑를 단번에 잠재울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교회만 다니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설교만 듣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성경공부만 하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봉사만 전도만 친교만 하지 말고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 만나지 못하면 헛된 것입니다. 예수 만나 봉사하고 전도하고 친교하여야 샘솟는 기쁨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구역 예배를 드리러 갔다고 합니다. 구역예배를 마치고 난 후에 목사님께 가지 않고 있으니까 구역원들이 "목사님, 바쁘실 텐데 가보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더랍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구역예배를 마치고 고스톱 판이 벌이기 위해서라고 했답니다. 이유는 처음 나온 교인들에게 취미를 붙여 주려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 글을 보니까 저녁에 부부가 함께 모여 구역예배를 드리게 했다고 합니다. 잘 모이더니 어느날 부터인가 여자들은 나오지 말고 남자들끼리만 모이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부 예배 드리고 이부에는 술판을 벌이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야 합니다. 나를 치료하시는 예수님, 나를 도우시는 예수님, 나를 위로하시는 예수님, 부활하셔서 지금도 말씀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로 교육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어떤 경우든 우리를 받아 주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38-39)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좇아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랍비여라고 합니다. 아람어로 선생님이라는 말입니다. 이말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사장인데 과장님이라고 불르면, 대통령인데 아저씨라고 부르면, 집에 갔는데 자식이 아저씨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몇 년전 우리 교회 어린이 중에서 저를 보면 아저씨 하였습니다. 감정이 어떻겠습니까? 아줌마는 아니니까 아저씨라고 불러도 별 무리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성도님이 저를 교회에서 목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저씨라고 부르면 그것 듣기에 거북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십니다. 메시아이십니다. 그런데 선생님 합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은 그들을 받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어떤 경우든 우리를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 대하여 무관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좇아오는 제자들을 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다(데아오마이)"라는 말은 특별이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물어봅니까? "무엇을 구하느냐?" 이미 그들의 소원을 파악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만족 시켜 줄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의 신분도 몰랐고 행하고자 하는 일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들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어디 계시냐고 묻는 그들에게 와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나를 따라 오면 장차 그들이 찾는 궁극적인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명확한 약속을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시몬 베드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4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아십니다. 요한의 아들인 것을 아십니다. 시몬이라고 말합니다. 시므온 말의 본래의 뜻은 듣는다는 뜻입니다. 좋게 말하면 잘 듣는 사람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귀가 얇은 사람입니다. 이했다 저랬다하는 사람 쉽게 바꾸는 사람, 변덕이 심한 사람,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베드로가 그런 사람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 우리도 귀가 얇습니다. 누가 한약 좋다하면 한약 먹고 양약 좋다하면 양약 먹는 사람들입니다. 가치관도, 세계관도, 인생관도, 내세관도 뚜렷하지 못합니다. 쉽게 흔들립니다. 우리 주님은 베드로의 연한점 다 아시면서도 받아 줍니다. 그리고 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십니다. 배신합니다. 저주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베드로 버리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사용하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 첫날부터 밤새 같이 있었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10시는 유대 시간법에 따르면 오후 4시이지만 로마 시간 법에 따르면 오전 10시입니다. 아마 오전 열시였을 것입니다. "그날 함께 거하니" 볼 때 밤을 같이 세웟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함께 한 후 메시야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저 듣고 좇아감으로 되어지는 일도 있지만 우리의 성숙이나 능력있는 사역, 인격과 습관의 변화 등은 함께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찬송가 449장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세상에서 이런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분이 어디있겠습니까? 우리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도둑과 함께 하면 잘해도 도둑입니다. 우리 주님과 함께 하면 우리는 주님의 위대한 작품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쓸모 없는 돌같아도 예술가의 손에 들어가면 위대한 작품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헐값인 악기도 위대한 음악가가 붙들면 최고급의 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이 보잘 것 없는 것같지만 태양과 만나면 7곱 색깔 무지개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도. 래. 미. 파. 솔. 라. 시. 도가 하나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위대한 음악가의 손에 들어가면 감미로운 음악이 출산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인격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를 받아 주시고 함께하시는 예수님 만나면 안드레가 한시대 쓰임받았듯이 요한이, 베드로가 한시대 쓰임받았듯이 우리 인생에도 그런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3. 예수님은 누군가에게 소개해 주고 싶고 맡기고 싶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40-42).
그분들이 인생의 주인이시고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소개해 주시십니다. 어쩌면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나를 따르더니 좀 좋은 사람 나타났다고 예수님을 따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소개하면 내가 데리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기 때문에 훨씬 더 값진 인생이 펼쳐지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그의 제자들에게 과감하게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안드레를 보십시오. 다음날 오전 10시가 되어 그는 바로 누구에게 갔습니까? 형제 베드로에게 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분입니다. 나와 가장 이해관계가 밀접한 분에게 소개하고 싶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만난 메시야는 금광이나 다이아 몬드가 아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위대한 것을 만난 것입니다. 성격 급한 베드로는 즉각 예수님을 찾아 갑니다. 우리가 사람을 예수님께 소개하면 예수님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시몬 흔들리는 그의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몬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현재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잠재력, 그의 가능성을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름을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장차 베드로가 될 것을 말씀합니다.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이끄는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충동적인 시몬이 요지 부동한 게바(아람어) 베드로(헬라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베드로를 훈련시켜 시대를 변화시키는 사람으로 사용하십니다. 어부입니다. 그저 어부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 세상에 참 행복의 길을 만들어 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누구든지 우리가 예수를 소개하여 예수를 만나기만 하면 그의 인생이 변화됩니다. 이 얼마나 소중한 만남입니까?
구 소련의 의사 콘필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범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의사를 치료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앞에 한 중환자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죽음이 인생의 종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영생의 소망을 품고 있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지십시오" 그는 죽어가는 사람의 간곡한 전도를 받고 신앙인이 되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후 닥터 콘필드는 어느 한 암환자를 수술해주면서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콘필드는 교도소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콘필드에게 수술을 받은 암환자는 극적으로 회생하여 독실한 크리스쳔이 되었습니다. 이 암환자의 이름이 바로 알렉산드르 이사비치 솔제니친입니다. 세계인이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만나면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계가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가정이, 세상이 직장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행복한 세상,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자 소아시아와 유럽이 복음화되었고, 이레니우스가 예수님을 만나자 프랑스가 복음화되었습니다. 영국에서 건너온 보니페이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독일이 기독교 나라가 되었고 패트릭이라는 16살 난 포로 소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아일랜드가 복음화되었고, 언더우드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한국이 복음화되고, 아도니람 저드슨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미얀마가, 허드슨 테일러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자 중국이 복음화되었던 것입니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했는데 그것은 그 어머니 헬레나의 신앙적 감화력 때문이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자기 집에서 일하는 예수님을 만나 이름 모를 한 하녀로부터 예수님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독실한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이름 모를 하인도 예수님을 만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만나는 인생이야 말로 가장 값진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 중에 가장 귀중한 만남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예수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그랬듯이 안드레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우리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6:22)"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만나고 내가 만난 예수님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귀중한 만남 /요한복음1:35-42/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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