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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부르는 5대 말의 원리

잠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479 추천 수 0 2013.02.14 23: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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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잠25:9-15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www.john316.or.kr 

복을 부르는 5대 말의 원리 (잠 25:9-15)

 

<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말 >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왜 똑같이 사람인데 보수는 진보보다 더 부패할까요? 보수가 힘과 기득권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에 부패 확률은 확실히 큽니다. 반면에 왜 똑같은 사람인데 진보는 보수보다 더 분열할까요? 진보주의자가 속된 말로 말을 싸가지 없게 할 때가 많기에 분열 확률이 확실히 큽니다. 옳은 말도 싸가지 없게 하면 생각이 같아도 마음은 동조가 안 됩니다.

 지난 대선의 여당 승리에는 이정희 후보의 막말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한 사람은 그 막말에 너무 열 받아 도중에 TV를 끄고 식구들을 총동원해서 박 후보를 찍었습니다. 한 50대 여성은 입원 중이라 투표를 못할 형편이었는데 그 막말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콜택시를 타고 박 후보에게 투표했습니다. 그처럼 그 막말로 피가 거꾸로 치솟아 투표 안했을 사람도 투표장으로 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막말이 지지자에게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주었어도 전체 민심은 날렸고 보수층의 엄청난 결집효과를 낸 것입니다.

 비판할 때 갖춰야 할 기본 태도는 ‘옳고 그름’만큼 중요합니다. 보통 조직체에서는 어떤 사람도 그런 막말 스타일의 인성을 원치 않습니다. 하물며 TV토론에서 그렇게 막말을 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결국 야당의 대선 패배가 이 후보 탓만은 아니지만 패배의 분수령이 된 건 사실입니다. 그 방송을 본 진보파도 “위험하다! 득보다 실이 많겠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하물며 중도층 유권자는 어떻겠습니까? 아름다운 진보가 진짜 진보입니다.

 대선 후 한 보수주의자는 비꼬아 말했습니다. “이 후보야! 고맙다. 위선적인 웃음, 오만한 주둥이질, 싸가지 없는 손가락질이 정말 고맙구나! 4시간의 역겨움이 5년의 기쁨으로 보상되었구나! 계좌번호 하나 알려다오! 감사 표시로 특별송금을 하고 싶구나! 다음 대선 TV토론에서는 4시간이 아닌 6시간쯤 힘찬 활약을 부탁한다. 절대 정계 은퇴하지 말거라. 사랑한다. 주둥이는 절대 다치면 안 된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 먼저 인간이 되길 바란다!”

 또 누군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토론의 기본을 상실한 무례와 오만과 독선과 아집! 기본적인 인성과 품행의 함량미달! 저잣거리의 사람보다 못한 언행! 6.25전쟁, 보릿고개 등 수많은 인생도발로 고통당한 세대에게 퍼부은 멍청한 언어적 도발은 보수층 집결에 최대공헌을 했다.” 인생은 함부로 말을 해댈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51.6대 48.0>란 근소한 득표율 차이를 보면 그 막말은 치명적이었습니다. 결국 진보의 최대 안티는 보수도 아니고, 재벌도 아니고, 이정희와 김용민 등의 입에서 나오는 막말입니다. 보통 사회에서는 막말로 성공한 인생이 없습니다. ‘논리적이고 통쾌한 막말’이 기본 예의도 없다는 부정적인 정서를 못 이겨냅니다. 적어도 이 후보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공개토론에서 보인 경솔함과 무례의 극치를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연배 상으로 박 후보와 이 후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정도인데 결국 며느리가 두 눈 부릅뜨고 시어머니에 대든 모양새와 실실 웃어가며 비꼬는 모양새가 되어 어른들에게 고통스런 간접경험을 준 것입니다. 그래서 한 보수주의자는 이렇게 비꼬며 말했습니다. “리정희 동무를 표창하라! 큰 공을 세우고 홀연히 사라진 도깨비 같은 여장부! 모습은 불도그 같고 이빨은 악어 같아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투쟁심으로 뭉친 허깨비 같은 여자! 그녀는 전쟁과 굶주림을 겪은 세대에게 애국이 무엇인지 다시 일깨워주었다! 오! 대한민국의 위대한 잔 다르크여!”

 그처럼 막말로 진보진영의 최대의 안티가 되고 보수진영의 최고의 잔 다르크가 되는 어리석은 진보주의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목회자들을 보면 80%이상이 어렵게 살기에 진보파가 더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한 진보주의자가 막말을 합니다. “수구꼴통 목사들!” 그러면 진보파 목사님들조차 진보파에 대한 환멸을 느낍니다. 결국 그 진보주의자는 진보파의 최대 안티이자 보수진영의 위대한 잔 다르크가 된 셈입니다.

 충청도 사람들 중에도 진보파와 보수파가 대략 절반씩 있습니다. 그런데 한 진보주의자가 막말을 합니다. “멍청도 핫바지들아! 평생 경상도 노예나 되라!” 그러면 충청도 출신의 의로운 진보파들조차 진보파에 환멸을 느낍니다. 결국 그 진보주의자도 진보파의 최대 안티이자 보수주진영의 위대한 잔 다르크가 된 셈입니다.

 나이가 들면 보통 보수화되는 편이지만 어른들 중에도 개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들은 얼마든지 진보진영의 우군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진보주의자가 막말을 합니다. “50대 이상의 폐물들아! 다 빨리 뒈져라!” 그러면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언사에 환멸을 느낍니다. 결국 그 진보주의자도 진보파의 최대 안티이자 보수진영의 위대한 잔 다르크가 된 셈입니다.

 그처럼 진보진영은 막말로 인한 자체분열로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고 막말을 쏟아내니 얼마나 안타깝고 미숙한 모습입니까? 사회이론은 배웠어도 삶의 기본을 못 배운 모습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합니다. 본인은 막말로 자극해서 생각의 전향을 이루려는 의도로 해댔겠지만 그런 막말로 생각을 바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론만 배우지 말고 ‘사람’을 배우고 ‘삶과 말’을 배워야 이상실현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 복을 부르는 말의 5대 원리 >

 인생은 말로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합니다. 말을 복을 부르는 말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이웃과 논쟁이 생기면 주제에 대한 변론만 하고 그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갈등 대상의 은밀한 일도 누설하지 말아야 한다면 친구나 동료나 가족의 은밀한 일은 더욱 누설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거운 입으로 남의 비밀을 지켜줄 줄 아는 사람이 사람과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결국 복도 받습니다.

 남의 은밀한 일을 누설하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남의 비밀을 누설하면 2가지 결과가 생깁니다. 첫째, 듣는 자가 꾸짖습니다. 성격이 강한 사람은 대놓고 “집사님! 그런 비밀을 감춰주세요.”라고 꾸짖습니다. 둘째, 악평을 듣습니다. 인격자들은 누설하는 말을 그냥 들어주더라도 속으로는 저 사람은 가까이 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남의 단점을 내게 누설하는 사람은 내 단점을 누군가에게 또 누설하기 때문입니다.

 외경 집회서 27장 16-18절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신용을 잃고 진정한 친구를 얻을 수 없다/ 친구를 사랑하고 신의를 지켜라. 그러나 만일 그의 비밀을 누설했거든 그를 따라다니지 말아라/ 마치 원수를 죽인 사람같이 너는 네 친구의 우정을 죽인 것이다.” 그처럼 남의 비밀을 누설하는 자는 입이 가볍고 신실하지 못한 자로 소문나면서 결국 좋은 인맥과 친구를 잃게 됩니다.

2. 합당하게 말하십시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아로새긴 은쟁반의 금 사과’란 가치 있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시의적절한 말은 무엇보다 가치 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남과 조화를 이루는 말의 능력을 키우십시오. 윗사람이라도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으로 통일하자!”고 강요하지 말고 차이를 존중하며 온유하고 친절하게 말해야 영향력을 얻습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친절한 것입니다. 요즘 여자들은 남자다운 남자보다 얼굴이 귀여운 여성스런 남자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 남자들이 친절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친절한 남자를 무턱대고 좋아하면 제비족에게 넘어갑니다. 제비족들은 매너가 끝내줍니다. 왜 남편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면서도 좋은 남편 소리를 못 듣습니까? 매너가 빵점이기 때문입니다. 제비족이나 족제비족들을 보십시오. 인생은 개판인데 매너 하나로 멀쩡한 여자들을 사로잡습니다. 사람은 친절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친절은 천성이 아니라 노력과 습관입니다. 일본 사람들 개개인은 대개 친절합니다. 길을 한번 물으면 얼마나 잘 안내해줍니까? 식당에서도 얼마나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섬겨줍니까? 친절이 몸에 밴 것입니다. 상점에서 싼 물건에 대해 물어도 친절하게 대답해주고 흥정하다가 그냥 나와도 뒤에서 감사하다고 인사합니다. 옛날의 평화시장에서처럼 옷가게에서 옷 한 번 만져보고 그냥 나온다고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해대면 누가 그 가게에 가겠습니까?

 왜 경상도 남자들이 무뚝뚝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까? 무뚝뚝한 말 때문입니다. 경상도 말을 보면 말의 압축파일 같습니다. “뭐꼬?(무엇입니까?) 할뱅교?(할아버지 오셨습니까?) 자는 누꼬?(저 아이는 누구입니까?) 멍교(무엇 때문에 그러시는가요?) 니끼가?(당신의 것입니까?)” 그런 무뚝뚝한 말이 밴 사람에게 예의 바른 서울말은 오히려 느끼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랑도 없이 말만 친절하면 느끼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담아 자상하고 부드럽게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면 상대의 마음을 얻습니다.

3. 슬기롭게 책망하십시오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책망할 때 슬기롭게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책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청종하는 귀’입니다. ‘슬기로운 입’과 ‘청종하는 귀’가 연합될 때 최고 작품 인생이 펼쳐집니다. 충성이 무엇입니까? ‘청종하는 귀’를 가진 것입니다. 그처럼 청종하는 충성된 사람은 추수하는 날의 얼음냉수처럼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13절).

 요새 삶이 각박해지면서 부드럽고 따뜻한 표정을 한 사람들을 만나기가 점차 어렵습니다. 이런 때에 상처 입은 마음을 만져주는 따뜻한 한 마디의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책망할 때도 책망 말미에는 항상 희망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깨진 그릇’도 희망은 있습니다. 자신이 깨진 그릇임을 겸손히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하면 됩니다.

 삶이 얼마나 신비합니까? 정상인이 장애인이 되면 그때부터 이전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던 재능이 발견되면서 신명난 새로운 삶을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처럼 상처입고, 힘들고, 절망의 어둠이 짙을 때가 오히려 영적인 성장의 기회입니다. 믿음으로 수용된 고통은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울면서라도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듯이 깨진 그릇 같은 마음에도 희망의 말로 씨를 심으면 거기서부터 축복의 혁명은 시작됩니다.

 요즘은 사회도 깨진 그릇 신세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권력의 오만을 경계하고 약자들의 보호에 관심이 많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십시오. 그처럼 비천한 사람들이 처한 자리에 함께 서려고 할 때 그의 머리와 입에서는 말인 아닌 말씀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기준음 삼아 삶을 조율하고 힘써 말씀대로 살면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가장 복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4. 거짓 자랑하지 마십시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 무엇인가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안 지키면 비 없는 구름과 바람처럼 허무한 인생이 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현재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되면 어떻게 하겠다.”는 화려한 약속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약속을 주의하는 것보다 더 주의해야 할 것은 자랑을 주의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싫어했습니까? 의롭게 살려는 태도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의를 자랑하는 태도를 싫어한 것입니다. 사실 ‘술 담배 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랑을 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것은 마치 포클레인 앞에서 삽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무슨 자랑할 것이 있겠습니까? 결국 자랑은 하나님 밖에 있을 때 나타나는 믿음 없는 행동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하는 것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 흉보는 것’과 또 하나는 ‘나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 2가지는 결국 같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랑을 하다가 자랑할 본전이 떨어지면 남을 흉보면서 자신을 올리려는 것입니다. 또한 자랑은 필연적으로 거짓말도 늘게 만듭니다. 그처럼 하나 한 것을 둘 했다고 하면서 허풍과 거짓말이 늘기에 자랑을 주의해야 합니다.

 인생을 사는 2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열매 맺기 위해 사는 삶’과 ‘꽃 피우기 위해 사는 삶’입니다. 자랑의 꽃을 피우는 삶에만 관심이 많으면 화류계 인생이 됩니다. 또한 자랑은 갈등을 낳고 당파를 만듭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몇 십 년을 봉사하면서도 “무익한 종입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해야 은혜가 넘치게 됩니다. 그처럼 남이 잘하는 것은 최대한 칭찬해주고 자기 자랑은 최대한 절제하는 사람이 주님 중심적으로 사는 복된 성도입니다.

5. 오래 참고 말하십시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오래 참았다가 적절한 때에 진지하게 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는다.”는 말은 온유한 말은 마음의 장벽을 헐어서 결국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도 가능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할 말을 오래 참았다가 가장 적절한 때에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이 진짜 의인입니다.

 마리아가 처녀로서 잉태했을 때 남편 요셉은 의인이라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고 했습니다. 흔히 의인은 불의를 지적하고 정의를 크게 외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짜 의인은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바른 말을 온유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없는 바른 말은 먼저 남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에 자신을 무너뜨리고 결국은 전체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결국 사랑하는 자의 온유하고 바른 말이 진짜 바른 말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를 누설하지 않고 가만히 끊으려고 한 것은 배우자의 실수를 조용히 처리하고 혹시 헤어져도 상대의 파멸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습니다. 얼마나 침착하고 신중합니까? 그처럼 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도 어떤 소중한 의미가 있다고 여기십시오.

 속단은 금물입니다. 삶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이해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 일을 마음껏 처리하도록 기회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보다 더 놀라운 계획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 이루십니다. 결국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 처녀 잉태의 실상을 알려주고 낳을 아들의 이름까지 알려주었습니다. 그처럼 어려움을 묵묵히 참아내고 자기가 할 일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 미래의 모습으로 말해주십시오 >

 그처럼 부정적인 말을 참는 것도 잘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아예 침묵하든지 아니면 찬란한 미래를 말해주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하십시오. 지상 최고의 예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부족해보여도 계속 믿어주고 계속 축복의 말을 해주면 신기하게 그 말대로 이뤄집니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성은 있었지만 산만해서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어느 날,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출 전날까지 놀다가 밤에 숙제를 하려고 했지만 산만해서 책을 거의 못 읽었고 결국 독후감도 못 썼습니다. 대신에 책과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써서 다음 날 독후감 대신 그 얘기를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가 그 얘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좋은 성적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적을 받아보자 A 플러스였고 성적 밑에 이런 선생님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책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했지만 너는 놀라운 스토리텔러의 재질이 있구나! 계속 힘써봐라.” 그 성적을 보고 그 아이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기 재능을 개발해 나중에 유명한 영화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의 방법이 바로 예수님의 인물 만드는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실수도 많았고 약점도 많았습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했고 소리가 컸습니다. 도마는 비꼬는 말이 많은 의심쟁이였습니다. 마태는 교활한 매국노의 대명사였던 세리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까?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빛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현재 모습으로 부르지 않고 미래 모습으로 부르며 찬란한 비전을 통해 그들의 미래를 조각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정말로 찬란한 인생을 조각해내며 마침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지금 자녀나 교우들이 부족하게 보여도 그들을 현재의 부족한 모습으로 부르지 말고 미래의 찬란한 모습으로 부르십시오. 사람들은 인생풍파에 의해 이미 많이 얻어맞으며 사는 상태입니다. 또한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스스로 실망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우리까지 나서서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형제를 참소하는 것은 사탄의 편에 서는 행위가 됩니다. 이제 사탄 편에 서지 말고 하나님 편에 서서 가족과 교우와 친구의 장점과 재능을 격려하며 그들 속에 잠재된 위대함을 씨를 불러내십시오.

 미국의 한 목사님이 목회하는 곳에는 마약 소지자와 거리의 처녀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형제! 형제는 우리 교회 청년부 전도사가 될 거야. 자매! 자매는 우리 교회 워십팀의 핵심 멤버가 될 거야.” 그렇게 계속 꿈과 비전을 도전하자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로 목사님의 말대로 되면서 그 교회는 과거에 마약 딜러나 갱 출신들이 회개해서 주축을 이루며 훌륭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 목사님의 성공 비결입니까? 현재 모습으로 그들을 부르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의 모습은 다 알기에 그렇게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믿음으로 그들의 미래를 조각하며 미래의 모습으로 불렀습니다. 그처럼 사람을 선하게 바꾸고 싶으면 그를 수치스런 말로 모욕을 줘서 바꾸려는 전략을 바꾸십시오. 예수님처럼 현재의 부족한 모습 너머를 보고 미래의 찬란한 모습으로 부르고 그 모습대로 조각될 때까지 계속 그렇게 불러주십시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믿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탈선은 대개 천성이 나빠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의 위대성의 씨앗이 발아하지 않아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찬란한 비전을 도전하는 한 마디의 말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 가슴에 찬란한 꿈을 불어넣지 않으면 찬란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가족과 교우에게 좋은 말로 그가 사명적인 존재임을 일깨우고 그로부터 위대함의 씨가 발아되게 하십시오.

 이제 비난과 정죄를 그치고 이렇게 말하십시오. “집사님! 하나님은 당신 편입니다. 당신은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제 당신 때가 올 것입니다.” 그처럼 남을 높여주고 비전을 도전하며 자신의 말을 사용해서 찬란한 미래로 나가도록 그를 밀어주십시오. 그렇게 남을 높여주는 말의 씨앗을 심으면 결국은 그 씨앗이 되돌아와 자신도 높여질 것입니다. 항상 축복을 부르는 말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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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2 요한일서 자녀, 아비, 청년 요일2:12-14  신윤식 목사  2013-02-07 1918
8321 요한일서 아들을 부인하는 자 요일2:22-25  신윤식 목사  2013-02-07 1599
8320 요한일서 기름 부음 요일2:20-21  신윤식 목사  2013-02-07 1965
8319 요한일서 예수께 속한 자 요일2:18-19  신윤식 목사  2013-02-07 1674
8318 요한일서 적그리스도 요일2:18  신윤식 목사  2013-02-07 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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